Try Again Try

한국 퍼포먼스 아트 50주년 기념 특별전

by Lara 유현정

행위미술에서 실험예술까지


매년 가을 서귀포에서 열리던 제가 제17회 제주국제실험예술제(JIEAF) 여름에 저지리 예술인 마을 제주현대미술관에서 열린다는 소식이 들렸다. 7월 한 4주간 주말마다 8회에 걸쳐 제주의 뜨거운 열기와 어우러지며 그야말로 이열치열 한바탕 난장이 펼쳐질 예정이었다. 이미 홍보 포스터도 나왔다. 강렬한 붉은색 바탕에 행위예술 반세기의 역사를 상징하는 원로 성능경 작가와 막내 조은성 작가의 족적 남기며 한국의 실험예술을 향한 뜨거운 열정을 포스터에 담았다.


7월의 제주는 폭염과 함께 시작된 축제의 열기로 무척이나 뜨거웠다. 나는 첫날 달콤하고도 상큼한 행위예술의 맛을 보게 된 이후, 주말마다 퍼포먼스 아트와 라운드 테이블, 세미나 등이 진행되는 제주 현대미술관으로 달려갔다. 더위도 잊은 채 잘 차려진 실험예술제의 잔칫상을 받아 들고, 행위예술의 깊은 맛을 탐색해 나가는 행복한 여정을 즐겼다. 또한 이번는 한국의 행위예술 5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전 <Try Again Try>도 함께 열렸다. 전시 코너마다 작가별로 책과 사진, 기사와 영상 등 알차게 모아진 자료들은 아카이브 형식으로 전시되어 관객의 이해를 돕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나는 공연을 보는 틈틈이 전시장을 둘러보았다.




우리나라의 실험예술은 해프닝으로부터 시작하여 행위미술, 행위예술로 불리다가, 2000년 이후 그 경계가 예술 전반으로 확대되면서 퍼포먼스 아트 또는 실험예술로 명칭이 변화되어 왔다고 한다. 우리나라 실험예술의 뿌리는 화가 정강자로부터 시작된다. 1967년에 발표한 <비닐우산과 촛불>은 탈 회화로 상징되는 미술계의 새로운 움직임으로 해프닝이라고 불리며 우리나라 최초의 행위미술로 기록되었다. 그녀는 다양한 해프닝 쇼를 통해 현실을 고발하고 모순과 가식에 맞서며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다. 전시회의 사진만으로도 그 당시의 분위기가 전해졌고, 사회의 탄압과 몰이해 속에서도 무소의 뿔처럼 당당히 시대를 앞서가는 자의 범접할 수 없는 뚝심과 자유로움이 묻어났다.


장석원 작가의 작품 <결혼의 이벤트> 나의 눈길을 끌었다. 작가는 1980년 자신의 결혼식을 행위예술로 연결시켰다. 그의 이벤트는 삶과 예술이 분리되지 않고 하나로 만난 지점이어서 더욱 기발하고 신선하게 다가왔다. 삶 속에서 예술을 실현하고 예술이 삶이 되는 그의 전위성에 큰 박수를 보내고 싶어졌다. 결혼서약 대신에 그 당시로는 꽤 충격이었을 개키스를 기자와 관객 앞에서 3분간 나누었다니 뉴스거리가 되고도 남았을 것이다.


행위예술은 작품의 실체가 행위를 수행하는 시간 동안만 존재한다. 사진이나 영상 등은 작품을 기록한 흔적일 뿐이다. 이건용 작가는 행위예술을 하며 이러한 작품의 한시적인 특성을 담아 도발적인 선언을 하였다.


인생은 짧고 예술도 짧다


작가는 예술이 전시장 벽면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의 행위 하나하나에 존재한다고 강변하였다. 그의 전시코너에서는 1979년 발표된 의 대표작 <달팽이 걸음>이 tv화면으로 반복되고 있었다. 디지털 문명 시대의 속도를 가로지르며 삶과 자연과 예술과의 관계 맺음 속에서 달팽이처럼 느리면서도 꾸준하게 묵묵히 자기만의 궤적을 그리는 그를 따라가 보았다. 도대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면서 무조건 남보다 빠르게 가야 한다고 외치며 질주하는 현대인에게 시사하는 바가 컸다. 무척이나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이건용 작가의 <달팽이 걸음>


시회는 퍼포먼스와 함께 진행되기도 하였다. 조은성 작가는 전시공간에서 우리나라 행위예술 50년의 발자취를 더듬는 <터치>를 공연하였다. 공연의 제목처럼 그녀는 관객의 얼굴을 한 명씩 촛불로 비추며 눈을 맞추고 안색을 살피면서 손으로 또는 꽃으로 부드럽게 어루만져 주었다. 무대 공간으로 구석구석 퍼져나가던 빛은 신비하게도 늘에서 은총이 내리듯 관객의 가슴으로 스며들며 따스한 위로가 되었고, 주변을 평화의 기운으로 가득 채웠다. 허리를 숙여 관객과 마주하던 그녀는 몸을 일으켜 전시장 안을 가득 채우고 있는 지난 50년 한국 실험 예술사를 하나씩 비추며 쓰다듬기 시작하였다.


녀는 전시 벽면을 고루 비춘 후 전시자료가 펼쳐진 커다란 책상 위로 올라섰다. 그 순간 촛불이 꺼질 듯 말 듯 위태로워지더니 결국 스러지고 말았다. 러나 다행스럽게도 곁에서 후배의 작품을 지켜보던 성능경 작가가 다가와 촛불을 번이나 주었다. 그럼에도 또 촛불이 흔들리자 성능경 작가는 쓰고 있던 중절모를 건네 풍전등화의 위기를 막아주었다. 그것은 절묘하였다. 든든한 지원군인 원로작가의 도움으로 사그라들던 생명의 불꽃이 막내작가 작품을 살려내며 행위예술의 명맥이 가까스로 이어하였다. 조마조마 하던 나는 안도였다.


그녀의 몸짓은 짐짓 성스럽기까지 하였다. 지난하고 고단했던 지난 시간들이, 외롭고 서글프고 때론 두렵기까지 했던 감정들이, 촛불로 모아진 염원 덕분에 하나씩 치유되는 마법을 일으켰다. 켜켜이 쌓인 한을 봄 햇살처럼 따사로운 사랑으로 눈 녹듯이 풀어내고, 그녀는 책상 위에 몸을 누이고 손에 들고 있던 모자로 얼굴을 덮고는 고요히 한국 실험예술 50년의 역사 속으로 스며들다.



조은성 작가의 <터치>


성백 작가는 외모만큼이나 묵직한 행위예술을 선보였다. 실험예술 50년 史의 산 증인으로서 실험예술제에 참가한 작가들의 족적을 남기는 기념비적인 퍼포먼스를 하였다. 관객으로 서 계신 선배 작가들을 한 분씩 모셔와 신발을 벗기고 두 손으로 발을 어루만질 때부터 분위기가 절로 숙연해졌다. 입 안 가득 먹물을 담아 그들의 발등에 뿜어내자 하얀 화선지 위로 뚜렷한 족적이 새겨졌다. 우리나라 행위예술 역사에 굵직한 발자취를 남긴 선배 작가들의 족적을 새기고 나서, 성백 작가는 자신도 그 뒤를 따르겠다고 선서하듯 먹물이 짙게 묻은 손닥을 선배인 심홍재 작가의 하얀 저고리에 새기며 공연을 마쳤다.


아무런 말이 필요 없었다. 이심전심으로 선·후배가 한 마음이 되어 만들어가는 공연은 관객들에 깊은 감동으로 다가왔다. 백 작가는 선배 작가와 관객들로부터 뜨거운 갈채를 받았다. 행위예술 50년 역사를 기념하고 또 미래를 향한 힘찬 발걸음이 되기를 바라는 응원의 박수였다.



성백 작가의 퍼포먼스



4주간 제주 현대미술관에서 공연한 결과물은 전시장 안팎 곳곳에 또 하나의 설치미술이 되어 관객들과 호흡하였다. 나는 이번 실험예술제 기간 전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위예술가를 분에 넘치게 만났고, 이렇게나 많은 이들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음에 저으기 놀라웠다. 더구나 이번에 처음으로 만나 뵌 작가들의 자료전도 함께 만날 수 있어서 더 기쁘고 흥미로웠다. 새롭게 누군가를 알게 된다는 것은 내 삶의 외연과 내면의 총체적인 확장이기도 하였다. 가들의 시간을 거슬러 발자취를 찾아가는 여정으로 그들과의 관계도 조금씩 깊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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