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생진 시인과 함께

서빳, 제주 4.3 사건 70주년 공연

by Lara 유현정


그리운 바다
동백꽃으로 물들다


토요일 저녁 7시 반, 이생진 시인은 서빳(서귀포 문화빳데리충전소)에 당당히 입성하셨다. 나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졸수의 나이 90에 하루 3건의 행사를 소화해낼 수 있을까 걱정했지만, 그건 가당치도 않은 기우였다. 그날 서빳에서 뿜어낸 노시인의 에너지는 젊은 사람도 혀를 내두를 정도였기 때문이다. 시인은 제주 4.3 사건 70주년 행사 낮에는 다랑쉬 굴과 성산포에서의 일정을 너끈히 소화하고, 녁에는 서빳에서의 피날레 공연을 화끈하게 마무리하, 밤늦게 뒤풀이까지 참석하시어 근래 드물게 빳 최고의 분위기를 선사하셨다. 학수고대하던 시인과의 만남으로 나는 오랜 꿈이 이루어지는 가슴 벅찬 날이기도 하였다.


이생진 시인은 해마다 4월이면 잊지 않고 제주를 방문하신다. 쉽게 드러낼 수 없어 속으로만 삭오던 제주의 한을 어루만지며 진한 아픔을 함께 나누신다. 시인에게 제주는 어떤 의미길래 이토록 다정하고 다감하신 걸까? 시인은 6.25 전쟁 당시 제주도 모슬포에서 군 복무를 하며 난생처음 제주와 인연을 맺었다고 한다. 그때의 제주가 청년 이생진의 감성을 뜨겁게 구었 것일까? 1978년에 발간한 시집 <그리운 바다 성산포>가 많은 이들에게 제주 앓이를 전염시키며 명예 제주도민이 된 인연도 남다르다 하겠다.


나는 푸릇한 스무 살에 우연히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그리운 바다 성산포>의 연작시 낭송으로 시인을 처음 만났다. 그때의 렁거림은 뭐랄까, 그야말로 고독의 완전체를 만난 것만 같았다. 시인은 실로 고독의 화신이었다. 가슴 밑바닥을 헤집는 절절한 감성의 쓰나미가 심연을 훑고 지나가며, 사랑 앞에 놓인 그리움을 조금씩 쌓아가고 있던 나의 을 한없이 작 들었다. 시 속에 녹아든 외로움은 끝간데를 모르게 깊어서 누가 아무리 무거운 돌을 던진다 해도 그 바닥에 가 닿지를 못할 것만 같았다. 시인의 시는 모든 것을 수용하는 바다의 도량과 용기 전하며 절망하는 이들에게 따스한 온기로 눈물을 닦아주었다.




서빳으로 내려가는 지하 계단엔 제 목숨을 다한 동백꽃들이 흩뿌려져 있었다. 제주 4.3 사건의 희생자를 상징하는 동백꽃은 모가지가 똑 꺾이며 통으로 떨어진 탓에 더욱 처연하고 비감하였다. 서빳은 이미 설치미술가 표구철 작가가 다녀간 후였다. 전시 오프닝 무대는 놓쳤지만, 늦게나마 작품을 감상할 수 있어 다행스러웠다. 작가의 설치작품 `구름물고기’는 가장 낮은 곳에 있는 물고기가 가장 높이 있는 구름과 만나 꿈을 전하며 하늘을 날고 있었다. 공중에 매단 70개의 한지 등불이 제주 4.3 사건 70주년을 맞아 70년의 칠흑 같은 어두운 세월에 불을 밝히고 있었다. 오랜 세월 차갑고 시커먼 바닷속에 갇혀있던 영혼들이 밝은 세상으로 건져 올려졌고, 이승에서 못다 핀 꿈들은 은하계의 별이 되어 반짝거렸다.


전시를 둘러보기 위해 공연장에 미리 도착한 언니와 나는 김백기 감독의 지도를 받으며 붉은색 한지로 동백꽃을 고이 접어 한쪽 벽에 마련된 추모 공간에 두 손을 모아 꽂았다. 지난 한 주 동안 제주 4.3을 기억하는 이들이 서빳을 방문하여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며 동백꽃을 바쳐오고 있었다. 기둥 옆에는 웅크리고 앉은 묵직한 돌조각이 살아남은 자의 비애를 표현하고 있었다. 그 곁에 나뭇가지에서 떨어져 구른 활짝 핀 절정의 동백꽃 한 송이가 실로 통탄스러웠다.


새봄을 여는 서빳 공연으로 평소 이생진 시인을 흠모하던 이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서울서부터 시인과 함께 동행한 팬클럽까지 우르르 장하 서빳은 평소보다 북적거며 크게 활기를 띠었다. 인은 한쪽에서 빡빡한 여정을 소화하시느라 잠시 숨을 고르 후, 오프닝 멘트와 함께 무대 위로 등장하셨다. 삼베 두건을 머리에 쓰고 제주에 바치는 긴긴 시 `다랑쉬 오름의 비가’를 비장하게 낭독하기 시작하였다. 주 4.3 사건으로 마을이 불타 없어지며 다랑쉬 굴에서 연명하다 희생된 11명의 이름을 하나하나 읽어 내렸다. 마지막으로 9살짜리 이재수의 이름이 낭독될 때는 피어보지도 못한 꽃봉오리가 누군가의 거친 손에 꺾어지며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의 애끓는 절규가 환청으로 들리는 하였다. 가슴 밑바닥에서 뜨거운 것이 울컥 치밀어 올랐다.


무대는 4.3 사건이라는 무거운 주제였지만, 음유시인 현승엽의 노래와 기타 반주에 한국 무용가 박연술의 진혼무가 가미되며 분위기가 점점 고조되었다. 끝이 보이지 않게 짓누르며 곪아가던 아픔과 한은 차츰차츰 구름물고기가 되어 훨훨 날아올랐고, 원한들의 그리운 제주 바다는 동백꽃으로 붉게 물들어가며 예술로 승화되었다.





디어 <그리운 바다 성산포>의 연작시가 이생진 시인과 낭송가 이혜정의 듀엣으로 낭송되었다. 제나 바다와 교감하는 시인, 이생진 시인은 한평생 바다만을 바라보는 고립의 섬을 떠돌았다. 세상사로 뻥 뚫리는 가슴을 부여안고 틈만 나면 바다를 찾아갔다. 바다는 혼자 살기 싫어서 퍽퍽 넘어지며 울다가도 시인이 슬픔과 절망의 넋두리를 풀어놓으면 그저 말없이 들어주었다. 시인은 죽일 놈의 고독을 떼어놓으려 해삼 한 토막에 소주 두 잔을 털어 넣으며 애를 쓰다가도, 국은 시의 원천인 고독을 와락 끌어안고 기꺼이 사랑하셨다.


시인은 가수 현승엽의 기타 반주에 맞춰 `서귀포 칠십리길’을 신나게 낭송하셨다. 작은 체구에서 활화산처럼 뿜어져 나오는 쩌렁쩌렁한 목청과 리듬을 타는 본새가 여느 아이돌 가수 못지않으셨다. 그 대단한 열정과 순수 에너지를 전해받으며 우리는 이생진이라는 시인에게 속수무책으로 흠뻑 빠져들었다.




됐어
바다가 보이면 됐어
서귀포 칠십리
어느 틈으로든
바다가 보이면 됐어
시가 밥처럼 씹히는 날
곁에 바다가 있다는 건
죽어서도 어머니 곁이라는 거
나는 쉽게 바다에 물들어서 좋아


됐어
바다가 보이면 됐어



시인에게 바다는 세상이고 전부이며 생과 사가 공존하는 절대적인 존재이다. 그러길래 시인은 "저 세상에 가서도/ 바다에 가자/ 바다가 없으면/ 이 세상에 다시 오자" 라며 죽음 뒤에도 바다를 갈망하시는 게 아닐까? 그러니 바다가 보이면 넓든 좁든 틈새이든 상관없이 "됐어" 라며 어린아이처럼 즐거워하신다. 시가 시인의 종교가 되어버린 지금, 이제 "바다가 보이면 됐어"는 시인의 철학이고 현수막이며 술자리의 구호가 되다.


스스로 섬이 되고 바다가 되어버린 시인은 평생을 외롭게 살다 간 예술가 김영갑과 이중섭, 고흐를 못내 그리워하며 또 한 편의 시를 읊었다. 말미에는 우리에게도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고. 노래를 하고, 춤을 추며 살라고 천진무구한 웅변을 쏟아내셨다. 나는 귀를 쫑긋 세웠다. 고독으로 자신을 단련하 평생을 시의 꽃으로 수놓으며 당당하게 걸어가고 있는 아름답고 순정한 이의 철학을 주워 담았다.





시낭송은 2시간 가까이 진행되었다. 밤잠을 설치고 제주로 날아온 시인의 렘이 고스란히 전지며 이되었다. 공연이 끝나고 함께 나눈 뒤풀이에서도 시인은 한라산의 너른 자락처럼 한없이 따뜻하고 다정하셨다. 밤늦은 시간, 내년에도 건강한 모습으로 만나 뵙기를 기대하며 는 두 손을 잡고 시인을 꼭 안아드렸다. 오로지 한 길을 묵묵히 걸어간 시인의 뒷모습은 큰 바위처럼 위대한 거인이었다.



“햇볕이 쨍쨍 쪼이는 날 어느 날이고 제주도 성산포에 가거든 이 시집을 가지고 가십시오. 이 시집의 고향은 성산포랍니다. 일출봉에서 우도 쪽을 바라보며 시집을 펴면 시집 속에 든 활자들이 모두 바다로 뛰어들 겁니다. 그리고 당신은 이 시집에서 시를 읽지 않고 바다에서 시를 읽을 것입니다. 그때 당신은 이 시집의 시를 읽는 것이 아니고 당신의 시를 읽는 것입니다. 성산포에 가거든 이 시집을 가지고 가십시오. 이 시집의 고향은 성산포랍니다."


- 시집 <그리운 바다 성산포> 머리말 전문 -



이생진 시인이 그리운 날, 나는 제주 바다처럼 시퍼런 시집 <그리운 바다 성산포>를 들고 제주도 동쪽 끝 성산일출봉을 찾아갈 테다. 그 아래 성산포 바다가 움푹 파인 오정개 해안 언덕, 시인의 시비가 널려 있는 그곳에서 그의 시를 읊조리며 시인을 다시 만날 것이다. 시집 속의 단어와 문장들이 바다로 뛰어들고, 그렇게 바다에서 시를 읽다가 무심코 건져 올린 나의 시를 안고 돌아오리라.






#이생진 #4.3사건 #그리운바다성산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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