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감각을 통해서 얻는 정보 중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당연히 시각이 첫 번째이고 청각은 두 번째가 될 것이다. 만일 둘 중에 하나만을 선택해야 한다면, 사람들은 모두 시각을 선택하겠지? 신변의 안전과 세상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즐거움을 포기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일 테니까. 그렇다면 청각은 어떨까? 감미로운 음악과 새들의 지저귐을 들을 수 없고 연인들이 사랑의 속삭임을 나눌 수 없다면, 그런 인생도 그리 달달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장애를 선택하는 사람은 없다. 여전히 정상인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세상에서 장애는 끝까지 피하고 싶고 거부하고 싶은 삶의 굴레가 되기 때문이다. 장애는 피조물인 인간 선택의 영역 밖에 존재하는 신의 영역이다. 그러니 내 의사와 관계없이 태어날 때부터 무작정 신께서 시련을 안겨준다면, 또는 탈없이 잘 살다가 어느 날 불쑥 청천벽력처럼 내 인생을 노크하고 들어온다 해도, 그것은 물릴 수도 되돌려 보낼 수도 도망칠 수도 없어 어쩔 수 없이 내 운명으로 받아들여야만 하는 숙명과도 같은 것이다.
제주 현대미술관에서 이루어진 실험예술제 3주 차에는 청각 장애를 가진 박주영 작가가 참여하였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청각 장애를 갖고 태어났다고 한다. 인공 고막은 성인이 되고 한참이 지나서야 달았단다. 20년을 넘게 소리가 없는 적막한 세상을 홀로 외롭게 걸어온 것이다. 신체에 장애가 없는 사람들은 보고 듣고 걷는 행위들이 얼마나 축복인지에 대한 자각이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태어날 때부터 주어진 조건이기에 늘 당연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수영장 물속에서 잠시 청각이 정지된 경험을 하곤 한다. 그곳은 귀가 먹먹해지며 소리 대신 물살의 느낌과 뻐끔거리는 기포만이 존재하는 세상이다. 내가 소리 없는 세상을 경험한 것은찰나지만, 그녀의 세월은 나에 비하면 억겁이라 할 수 있다. 내가 과연 그녀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
공연을 시작하기에 앞서김백기 감독은 먼저 그녀의장애를 소개하였다. 예술을 하는 작가가 장애를 가진 경우는 흔치 않기에, 나는자못 걱정이 되어 마음의 긴장을 하고 지켜보았다.그러나 그녀는 의연했다. 관객 중에서 남녀노소 고르게 자신의 작품을 함께 진행할 사람을 한 명씩 데리고 나가 무대 위에 세웠다. 그리고 그들에게 호루라기를 하나씩 나눠주었고, 각자의 위치에서 그것을 불도록 했다. 갑자기 관객에서 조연배우로 입장이 바뀌어버린 사람들은 아무 군소리 없이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그들의 다소곳한 자세와 머쓱해하면서도 진지한 표정을 바라보며 공연을 지켜보는 것은 흥미로웠다.
에 코
여기저기서 삑삑거리며 난무하는 소리가 나의 고막을 뚫고 들어와 뇌를 자극했다. 다양한 박자와 음정으로 쏟아지는 불협화음 속에서 박주영 작가는 땅바닥에 꿇어앉아 커다란 노란색 종이에 소리와 진동으로 전달된 감각을 그림으로 그리기 시작했다. 처음엔 크고 둥글게 나선을 그리다가 점차 작고 섬세한 진동을 더했다. 소리가 그림으로 변환되는 과정을 보는 것은 새로운 경험이었고, 감각의 놀라운 확장이었다. 어려서부터 듣고자 했던 갈망이 그녀로 하여금 소리를 끝없이 상상하게 만들고, 그렇게 작가는 다른 감각으로 청각을 대신하였을 터였다. 그러한 과정이 이번 공연의 작품으로 형상화된 것이다.
나는 이번 무대가 불완전한 언어를 대신하여 마음으로 소통한 공연이었다고 생각한다. 공연 내내 그녀를 위해 호루라기를 불어주던 관객들이 마음을 따뜻하게 나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작가는소리가 메아리 되어 자신의 피부로 전해지는 관객의 마음을 느꼈고, 그 마음을 받아 소리를 그림으로 표현하였다. 이보다 더 아름다운 소통이 있을까? 그녀가 소리를 그린 종이를 선 따라 오려서 나뭇가지에 매달자, 그것은 바람에 날리며 나선형으로 춤을 추었다. 종이가 춤을 추는 모습은 다시 소리로 메아리 되어 이번에는 시각이 청각화 되는 마법을 일으켰다. 여기저기서 제멋대로 불어대는 호루라기 소리도 마음이 다 같이 하나로 모아지면서 천상의 소리처럼 조화롭게 다듬어졌다. 무대와 객석의 경계가 사라지고 작가와 관객이 함께 만들어낸 멋진 앙상블이었다.
박주영 작가의 `에코’ 공연
다음 날박주영 작가는 두 번째 공연을 이어갔다. 나는 제주 현대미술관 전시장에 마련된 그녀의 전시 코너를 먼저 찾았다. 과거의 공연 사진과 함께 테이블 위에는 여러 권의 수첩이 전시되어 있었다. 잘 들리지 않을 때마다 소통을 위해 필담을 나눈 수첩에는 그녀의 행위예술 역사가 담겨 있었다. 눈물겨운 노력과 열정이 쌓이고 쌓여 오늘의 작가 박주영이 만들어진 것이다. 감동도 잠시, 나는 곧이어 시작되는 2층 공연을 위해 전시장 감상을 마무리하고 계단을 올랐다.
Do you hear?
이미 무대에 등장한 박주영 작가는 색색의 동그란 스티커를 관객에게 나눠주고 있었다. 나는 손을 뻗어 파란색 스티커를 받아 챙겼다. 그녀는 스케치북을 들고 돌며 둥글게 둘러앉은 관객에게 말 대신글로 쓴 메시지를 전했다.
소리가 들리면 제 몸에 스티커를 붙여주세요
녹음기에선 박주영 작가 어머니의 육성이 흘러나왔다. 단어와 짧은 문장으로 이어진 소리들이 낭랑하게 울려 퍼졌다. 스티커를 받은 관객들이 일어나 그녀의 몸에 스티커를 붙였다. 나는 그녀의 손을 잡고 손목에 스티커를 붙여 주었다. 그녀의 몸 곳곳에 알록달록한 동그란 무늬가 생겼다. 그것은 그녀의 소리에 대한 열망처럼 부풀며 온몸으로 번져 나갔다. 성인이 되어서야 인공 고막을 달게 된 그녀에게 소리는 실타래처럼 끊임없이 이어졌다. 언어는 홍수를 이루며 흘러넘쳤다.
빙그르 돌던 그녀의 몸에서 커다란 모형 귀가 툭 떨어져 내렸다. 고흐는 왜 자기 귀를 잘랐을까? 그녀도 차라리 몸에서 귀를 떼어내고 싶은 걸까? 그녀는 소리치듯 몸을 비틀었다. 꿈에도 그리던 소리는 인공 고막이라는 기계를 통해 찢어지며 하이톤으로 왜곡된다. 그녀는 어쩌면 끝없이 질주하는 물질 세상에서 거대한 소음에 지칠 때면 차라리 다시 과거로 돌아가고 싶을지도 모른다. 말은 때로 오해를 낳고, 소통의 노력은 오히려 상처가 되어 서로가 마음의 문을 닫기도 할 것이다. 어눌한 발음과 아직도 완전치 못한 청각 때문에 장애를 향한 차별의 소리가 날아와 뼈 속 깊이 박힐 때는 더욱 깊은 동굴 속으로 들어가고 싶기도 할 것이다.
그토록 간절했던 평생의 소원인 청각을 얻게 되었는데, 기쁨도 잠시 상처만 깊어진 건 아닌지 모르겠다. 들리기만 하면 행복해질 것이라 생각하던 믿음은 환상이 되어 산산이 부서지며 휘청거린다. 밤이 되면 차라리 인공 고막을 벗어던지고, 말이 차고 넘치는 시끄러운 세상에서 벗어나 고요하고 평화로운 나만의 세상으로 돌아가 온전한 휴식을 취하고 싶은 것이다. 소리에 대한 열망과 절망이 교차되면서 그녀의 세상엔 빛과 어둠이 공존하였다.
박주영 작가의 전시(위)와 공연(아래)
뒤풀이에서 다시 만난 박주영 작가는 야무지고 성격이 밝았다. 아직은 청각이 완전치 않아서 도우미가 그녀를 곁에서 도와주고 있었지만, 역시 신체의 장애가 마음의 장애를 뜻하는 건 아니었다. 그녀는 당당했다. 타인에게 자신의 약점을 온전히 드러낼 수 있다는 건, 자신을 객관화시킬 수 있는 힘이 생겼다는 증거이다. 정상인이라고 해서 다 그녀만큼 당당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녀는 행위예술로 자기 치유를 완성하고 자신의 인생을 승리로 이끌고 있었다.
나는 한동안 장애에 대한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우리나라 인구의 5%가 장애인이라고 한다. 그중 청각 장애는 지체장애 다음으로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청각 장애는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주변의 오해를 받기 쉬워 마음을 다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약자가 배려받지 못하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 주변엔 장애인에 대한 무관심과 그들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터무니없이 부족하다. 그저 내가 서 있는 위치에서 한 계단만 아래로 내려서서 그들의 손을 잡고 동등하게 눈을 맞추기만 하면 될 텐데 말이다.
물론 정상인이라도 완벽한 사람은 없다. 인간은 모두가 부족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왜 유독 신체적 장애에 대해서만 편견을 갖고 차별을 하는 것일까? 그것은 우리가 서로의 내면을 들여다 보지 못하고 외모에 집착하는 문화와 가치관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신체적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일상생활이 불편한 것이지, 마음까지 불행한 것은 아니다. 반면 마음의 장애를 가진 이들은 장애가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기에 이를 깊이 감추게 되고, 그럴수록 마음이 뒤틀리고 불행해지는 것이다.마음이 불행한 사람들이 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자신의 생을 비관하여 종종 자살로 마감하는 것을 보면, 영혼까지 갉아먹는 마음의 장애는 신체의 장애보다 더 심각할 때가 많다.
나는 날마다 노화로인한 몸의 변화와 마음의 장애를 겪는다. 아침저녁 명상으로 마음을 챙김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쓸데없이 걱정하고 집착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일상에선 게으름이 작렬하고, 결정장애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타인을 대할 때도 너그럽게 마음의 문을 활짝 열지 못하고, 옹졸한 편견과 선입견으로 창을 닫아걸며 서운함을 키우기도 한다. 심신을 비우고자 매일같이 걷고 또 걷지만 탐. 진. 치 삼독에 물들어 있는 자신을 마주한다. 공연을 보면서 잠시 그녀의 장애에 대해 선입견과 동정심을 품었던 나는 많이 부끄러웠다.
오늘(4월 20일)은 장애인의 날이다. 이 날을 계기로 우리 모두가 주변의 장애인을 보살피고, 잘 보이지 않아 놓치고 있는 마음의 장애는 없는지 자신과 가족의 건강을 세심하게 챙기는 날이 되었으면 좋겠다. 누구나 자신의 장애를 딛고 일어서면 박주영 작가처럼 자기만의 새로운 세상이 펼쳐진다. 장애뿐 아니라 질병과 죽음마저도 사로잡히지 않고더불어 물처럼 흘러간다면, 또 매사에 불행 대신 행복을 선택하고 날마다 즐겁게 살아간다면, 우리 모두는 승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