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든 판에 서있느냐

주도성은 내가 만든 판에서 나온다.

by 김지훈

"오늘 뭐해? 나와."

"응? 오늘 할 일이 있어서 저녁 7시 이후에 밥 먹거나, 그때 안되면 다음에 약속 잡을까."

하루에 갑작스럽게 오는 전화에 대한 나의 반응은 저렇다. 얼굴을 보자고 하면 오늘 할 일이 언제 끝날지 일정을 확인하고, 일정이 끝난 이후에 시간을 잡거나, 오늘 할 일이 많으면 다음으로 시간을 미룬다. 지구가 멸망하지 않는 한 그 사람과 오늘 안 본다 그래서 나를 죽이는 일은 없다.


하루라는 시간에도 내가 만든 판이 있다. 그 판은 하루의 계획과 실행으로 이루어진다. 그런 하루들이 많아질수록 나라는 사람의 정체성은 내가 원하는 대로 형성이 된다. 그런데, 이 판이 무너지는 경우는 오늘 뭐 할지 모르겠는데 때마침 반갑게 전화가 와서 누군가와 밥을 먹거나, 다른 사람이 만들어준 판에만 서 있었던 경우에 해당한다. 오늘 뭐 할지 모른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 의존할 수 있는 확률이 크다. 이런 유형은 누군가와 만나서 수다를 떨어야만 하루에 의미가 있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물론, 사람은 누구나 외로운 존재이기에 자신의 인생을 함께 얘기 나눌 친구가 필요하다. 하지만, 가급적이면 내가 휴식이라고 정해놓은 시간에 친구와 만나서 얘기를 나누는 게 내 삶에도 훨씬 안정적이다. 갑작스럽게 친구와 만나 얘기를 나누다 보면, 오늘 뭐 할지 모르던 게 내일도 뭘 할지 모르게 되던가, 오늘 해야 할 일을 내일로 미루게 되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그것에 대한 책임은 본인이 지게 된다. 삶의 무게를 줄이려면 하루에 할 것들을 하면서 일이 끝난 후에 수다를 떠는 등의 휴식 시간을 갖는 게 필요하다.


내가 만든 하루의 판에 규칙적으로 서있어야 하는 이유는 좀 더 장기적으로 내 삶에 영향력을 내가 행사하기 위해서다. 초기에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여러 선배님들의 경험과 노하우를 얻는 일이 많아지는데 문제는 상황에 따라 일괄되게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선배님들의 노하우를 내뿜는 주체가 나로 바뀌었을 때는 주체가 바뀌었기 때문에 명확한 효과를 보기가 힘들다. 결국은 선배님들의 경험을 바탕 삼아 내 노하우를 만드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교육컨설턴트로 재직 당시 내게 늘 삼촌처럼 많은 조언을 아끼지 않으셨던 전무님에게 호되게 혼날 때가 있었다. 주로 실수가 나왔을 때 내 답변이 "아, 그 선배님이 이렇게 하라고 해서..."였기 때문이다. 그럼 전무님은 "맞든 틀리든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틀렸어도 너 의견이 있어야 될 거 아냐. 너 그 선배가 죽으라면 죽을 거야? 아니잖아. 앞으로 네가 하는 일이 못생긴 동그라미든 세모든 상관없으니까 너 의견으로 얘기해. 알았지?"라고 나를 따끔하게 혼내주셨다.


그때 이후로 내가 하는 일이 못생긴 세모가 되든, 못생긴 동그라미가 되든 주체가 내가 되어버리니 못생긴 것이 나온 이유에 대해서도 얘기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상황의 전후 맥락에 대한 배경을 내가 갖고 있으니 실수를 할 지라도 삶에 활력이 붙었다.


지금도 전무님의 저 말은 가슴속에 새기며 산다. 사업을 하면서도 여러 경우의 수가 생긴다. 초기 사업 때는 안정적인 월급이 없다. 사업가 DNA가 타고나서 엄청 세밀한 수익구조를 만들지 않는 이상 시행착오가 생길 수밖에 없다. 개인사업자 초기에 가장 피가 말리는 경우는 수익이 없는 상태에서 정기적으로 발생되는 지출이다. 그럴 경우 눈을 돌려 다른 사람들이 만든 판에 들어서기가 쉽다. 예를 들어 나의 경우, 기업교육컨설팅이 메인 사업이지만 실적이 잘 안 날 때는 교육업체를 통한 청소년 강의를 하는 식이다. 문제는 내 사업보다 교육업체를 통한 청소년 강의가 더 많아졌을 경우이다. 이 경우 강사 경력은 많아질 수 있으나 내 영업권을 통해 만든 강의가 아니기 때문에 내년에도 강의가 이어질지 알 수 없다. 또한, 업체의 사정이나 상황이 어려워질 경우 내가 업체만 쳐다본 경우라면 같이 무너질 수 있다.


하지만, 내가 하는 사업 또한 늘 잘 되리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업체와 돈독한 관계를 유지할 필요는 있다.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건강한 관계면 가장 좋다. 내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일의 비율은 7:3 정도의 비율로 내 사업의 영역이 더 많은 상태에서 업체에서 들어오는 강의를 수행하는 것이다. 실제 내가 직접 기획하고, 영업하고, 운영을 해봐야 업체의 사정과 상황에 대한 이해도 더 커지고, 업체의 어려운 점이 있으면 사전 맥락을 이해하고 그 어려운 점을 자연스럽게 해소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리고 그게 결국 돈독한 관계로 이어진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 생존권을 내가 쥐는 것이다. 생존권이 다른 사람이 만들어진 판에 있는 경우 힘의 균형을 맞추기가 힘들고 내 생존을 위해 다소 무리가 되는 요구도 지속적으로 들어주는 일이 생긴다. 내가 만든 판에 내가 서있을 때 일의 영역도 확장할 수 있고, 삶의 균형도 더 잘 이룰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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