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빠? 아빠 맨날 집에서 TV 봐. 놀아."
내 친한 지인들은 나에게 전화를 걸면, 아버지와 뭐 하는지 한 번쯤 물어본다. 내가 아버지랑 자주 데이트를 하기도 하고, 당시에는 아버지와 함께 살던 시절이었기에 더 그랬던 것 같다. 우리 아버지는 본인도 자랑스러워하던 큰 회사에서 나온 뒤로 오랜 실직상태를 경험하셨다. 가끔씩 작은 회사에서 짧은 직장 생활을 하였으나 그 기간이 길지 않았다. 이때에도 1년간 회사를 다니다가 다시 실직한 상태였고, 내가 퇴근해서 집에 오면 아버지는 불을 끈 채로 가만히 누워 TV를 보고 계셨다. 처음에는 아버지가 집에서 너무 쓸쓸하겠다 싶다가도 집에 오면 마주하는 아버지의 동일한 모습을 볼 때면, 내 마음이 답답하게 느껴졌다. 무엇보다 불이 죄다 꺼진 방들의 무거운 공기가 나를 더 지치게 만들었다.
"우리 아빠? 아빠 맨날 집에서 TV 봐 놀아."
그래서 나도 모르게 친한 지인의 전화에 아빠가 논다고 얘기를 했던 것 같다.
"아들 언제 오니?"
퇴근 시간이 다가오면 아버지의 문자가 미리 와있었다. 아버지도 집에서 많이 외로우셨는지 늘 나만 찾았다. 처음에는 몇 번 저녁에 같이 술도 마시고, 얘기도 나누곤 했는데 다음날 출근할 때 피곤함도 배가 되고, 무엇보다 자기 관리가 잘 되지 않았다. 당시 나는 첫회사를 다닌지 2년 차 사원으로 업무를 더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도 있었다. 나도 퇴근 후 내 자기 계발 시간도 있어야 하고, 지인들과 얘기 나눌 시간도 필요한데 아버지가 매일 찾으니 조금은 부담이 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아버지가 늘 집에 계시니 지치고 힘든 날에는 나도 혼자 쉬고 싶다는 생각도 자주 했다.
'그런 마음이 작은 행동으로 조금씩 비쳤던 것일까."
하루는 퇴근하고 집에 왔는데 캐리어에 짐이 가득 담겨 있었다.
"갑자기 무슨 캐리어야?"
나는 불안한 마음에 아버지에게 다가가 얼른 얘기를 꺼냈다.
"아빠, 거제도로 일하러 내려가."
"거제도까지?"
"응. 거제도에 좋은 일자리가 있대. 아들 배고프지? 아빠랑 밥 먹으러 나가자."
"응..."
나는 찝찝한 기분으로 아버지와 저녁을 먹으러 나갔다. 그날따라 아버지의 발걸음 또한 많이 무거워 보였다. 우리는 평소 가던 김치찌개 집에 들어갔다.
아버지와 밥을 먹으며 술을 한잔 하는데, 아버지의 표정에 꺼내지 않은 얘기가 있는 것처럼 살짝은 무거운 것이 담겨 있었다. 근심인지, 슬픔인지 알 수 없었다. 나는 그런 표정을 바라보며 한참을 술을 마셨다. 내 기억으로 아버지와 함께 한 술자리 중 그날이 꽤 고독했다. 다음 날, 출근을 하는 나를 아버지가 오랜만에 배웅해주셨다.
그리고, 그 모습 뒤로 아버지는 한참을 집에 오지 않으셨다.
나는 아버지가 거제도까지 잘 내려갔는지 궁금해 몇 번이고 전화도 해보고, 문자도 해봤다. 그러나 아버지는 아무 답이 없으셨다. 어머니에게 전화를 해봤는데, "네 아빠 가출한 것 같아. 이제 혼자 살겠다는 것 같아."라는 슬픈 말을 들어야 했다.
'아빠가 나랑 인연을 끊는다고?'
나는 아버지에게 무슨 잘못을 한 걸까. 남들보다 이른 나이에 직장생활도 시작했고, 삶에 지친 와중에도 아버지와의 저녁식사는 챙기려 노력했다. 물론 퇴근 후 지치면 집에 혼자 있고 싶은 마음도 컸다. 남들처럼 혼맥도 하고, 내 방에 누워 TV도 보는 일상도 즐기고 싶었다. 아버지가 집에 계시면, 그 생활은 할 수 없었다. TV는 줄곧 아버지가 보고 계시니, 나는 내 작은방에 들어가 책을 보다가 잠이 들었다. 그 답답한 마음이 아버지에게 보였을 수도 있다. 아버지와 함께 사는 집에 어머니까지 올라오면, 그 답답함은 배가 되었다. 사실 그 당시에 우리 부모님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가 내 집에 함께 있었어도 그 마음은 똑같았을 것이다. 나는 직장 생활 2년 차인 사회초년생이었고, 사람을 만나는 것을 업으로 하는 일을 했고, 그 일을 잘해야 했기에 사람에 지칠 때였다. 집에 오면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고, 내가 받는 스트레스를 누군가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 특히 부모님에게는 더욱 그랬다.
내가 문자를 한지 몇 개월이 지났는데도 아버지는 내게 문자 한 통 없었다. 나중에 칙척형을 통해 아버지의 사정을 들을 수 있었다. 그 사정은 이랬다. 어머니는 한 달에 몇 번씩 서울에 올라오시는데 아버지가 온종일 집에만 있으니 답답한 마음에 '너무 집에만 있지 말고 운동 좀 하고 시간 날 때 일거리 좀 찾아'라고 자주 얘기하셨다. 당시 내가 보기에도 아버지가 너무 활력 없이 집에만 계셨다. 나는 아버지가 밖에 나가서 좋은 바람도 쐬고 기분 전환도 하는 생활을 했으면 했다. 아버지는 그 말이 그렇게 들리지 않았나 보다. 아버지도 집에만 있고 싶어서 집에 있는 게 아닌데, 마치 본인이 '집에만 있는 사람'으로 정의된 것처럼 느껴졌을 수 있다.
"우리 아빠? 맨날 집에서 TV만 봐."
그래서 내가 지인과의 통화에서 한 저 말은 아버지의 심장을 찌르는 말이 되었다. 아버지 입장에서는 믿었던 아들까지 본인을 미워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내 입장에서는 나도 힘겹게 직장생활을 버티고 주변도 챙기는 와중에 아버지에게 잘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나 역시 나를 향해 강한 행동을 보인 아버지의 서운함에 속이 쓰렸다. 무엇보다 내 전화까지 안 받는 아버지가 많이 미웠다.
"아빠, 아빠의 선택이니 행복하고 건강 잘 챙기면서 살아."
나는 어느 날 답이 없는 아버지에게 문자를 보냈다. 아버지가 본인이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 수 있다면, 그 사실만으로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속이 쓰린 일상이었지만, 나는 예전처럼 내 일상을 이어나갔다.
"아들, 보고 싶다."
그렇게 몇 달쯤 지났을까.
아버지의 문자가 와있었다. 나는 문자를 애써 외면했다. 하지만, 나도 아버지가 많이 보고 싶었다.
"술 한잔 할까?"
종로에서 아버지를 만나 술을 한잔했다. 나를 쳐다보는 아버지의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다. 나는 솔직하게 사람이 아무것도 안 하고 집에만 있으면 무기력해지고, 보는 사람도 그렇게 된다고 말씀드렸다. 그래서 좋은 바람 쐬라는 의도였다고 아버지에게 얘기를 했다.
"나가면 돈 쓰니까..."
내 말에 아버지의 답은 '나가면 돈 쓰니까'였다. 사람을 만나도, 사람들과 운동을 해도 돈을 쓰니까 일부러 덜 나갔다는 것이다. 그래도 '산책이나 산이라도 탈 수 있지 않냐'는 나의 말에 아버지는 '아무래도 예전보다 돈이 없으니 밖에 나가는 게 꺼려졌다'라고 말씀하셨다.
마음이 아팠다.
'하루빨리 더 많은 돈을 벌고 싶다'는 생각을 그때 참 많이 했던 것 같다.
"그래서 거제도 가서 뭐했는데?"
"노동현장이었는데 시키는 거 다했지. 아빠 일하느라 떨어지면 아찔한 데까지 올라가 봤어."
"아빠, 많이 절박했구나. 다음부터는 그런 위험한데 올라가지 마. 아빠 그런 위험한 데 올라가라고 내가 돈 버는 거 아니잖아..."
"그럼 아빠도 알지... 아들도 힘들었을 텐데 아빠가 오해해서 미안하다... 우리 아들."
"아니야... 나도 잘못했지. 나도 미안해."
한번 내뱉은 말은 주워 담기가 힘들다. 아니, 다시는 주워 담을 수 없다. 소중한 사람의 마음속에 빙빙 돌다가 오해가 더 쌓이면 돌덩이처럼 굳어져 상처가 된다. 늘 조심해야지 하면서도 가까운 사이일수록 서운한 일이 생기고, 서로의 마음을 돌보지 않는 일이 생긴다. 때로는 내 마음만 보느라 상대방의 지친 상황은 볼 겨를이 없다. 이럴 때 말이라도 이쁘게 나오면 좋은데 그렇지 않을 때도 많다. 시집 <아버지도 나를 슬퍼했다>에는 '내뱉은 말'이라는 시가 있다. 당시 아버지를 생각하면서 쓴 시였고, 시집이 나왔을 때 아버지에게 보여드렸다.
내뱉은 말
나의 말은 너에게 머물러
더는 내 입가에 남아있지 않은데
걱정은 생각이 되고
생각은 아픔이 되어 하루를 채우네
아렸을까
쓰렸을까
더 이상 잡을 수도
무엇 하나 잡히지도 않을 말임에도
미치도록 잡고 싶네
끊임없이 뒤척이네
요즘은 말 한마디라도 듣기에 기분 좋은 말, 위로가 되는 말을 하려고 노력한다. 아버지와 나 사이에 이런 시간이 없다면, 더욱 좋았겠지만 어쩌면 이런 시간이 있어 서로를 볼 수록 더 미안해하고 더 애정 하는 사이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아들, 아빠가 책 읽는 것 별로 안 좋아하는데 우리 아들이 낸 책은 재밌게 다 본다. 우리 아들이 배려심이 많아서 그런가... 누가 읽어도 공감할 수 있게 글을 잘 쓰더라고."
"김명수님 아들인데 당연히 글도 잘 쓰고, 말도 잘해야지!"
"요즘 아빠 친구들이 우리 아들이랑 아빠 사이 엄청 부러워한다. 그런 부자지간 없다고..."
"그렇지? 나 밖에 없지 아빠? 나도 아빠밖에 없어."
한 번 내뱉은 말은 주워 담기 힘들다. 그런데 사람은 완벽하지 않은 동물이라 후회할 줄 알면서도 상처가 되는 말들을 내뱉곤 한다. 말을 주워 담을 수는 없지만, 다시 꺼내 미안하다고 할 수는 있다. 내가 더 성숙한 사람이 되어 미안한 말 위해 좋은 말을 올려놓을 수 있다. 좋지 않았던 기억을 서로를 더 애정 하는 기억으로 바꿀 수도 있다.
"나도 우리 아빠밖에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