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다 보이지."

by 김지훈

"지훈이 사업 잘 안 돼."

교육사업을 시작하던 초창기에 정말 이 악물고 열심히 일 했던 내 모습과는 관계없이 어머니는 눈 앞의 결과만 보고 나를 두고 '잘 안 된다'라고 주변에 표현하셨다. 결과적으로는 맞는 얘기인데, 결과만 얘기하는 건 열심히 일한 과정을 동반하지 않는다. 마치 그 결과가 그 사람이 가진 능력인 듯 주변에 가십거리처럼 가볍게 표현된다. '잘 안된다'는 것은 부정어라 듣기 속상한 단어이다. 무엇보다 가장 가까운 가족이 내가 얼마나 치열하게 일을 하는지 모르는 것에 마음이 아팠다.

"그럴 거면 놀아."


1년에 한 번씩 명절이면 형네 가족이 올라오는데, 오랜만에 친척들과 함께 한 술자리에서 형은 농담인 듯 툭 나에게 '놀아'라고 얘기했다. 어린 나이에 사업에 뛰어들어 몸도 마음도 제대로 쉬어본 적 없는데, 나보고 놀라는 말이 어찌나 속상하던지 가까운 가족의 말이 내 심장을 더 찌르는 듯했다. 나는 어릴 때부터 힘든 것도 잘 참고 힘든 일이 있어도 혼자서 극복하고 얘기하는 성향이라 '나도 힘들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 가족도 모르는 듯했다. 말하지 않아도 알면 참 좋을 텐데 가끔은 이렇게 가까운 가족 중에도 내편은 아무도 없는 듯했다. 오히려 너무 가깝다는 이유로 내뱉는 말들이 더 잔인하게 느껴졌다.


"내가 놀 시간이 어딨어..."

나는 속상한 기분을 내비치지 않고 그저 웃어넘겼다. 나는 전혀 화기애애하지 않았지만, 여전히 아무 일도 없는 듯 화기애애하게 그날의 술자리는 잘 마무리되었다.


명절의 막바지에는 형의 생일이 다가온다고 다 같이 백화점을 갔다. 우리 부모님과 형수님, 조카도 함께 동행했다. 형이 정장을 고를 동안 조카는 신이 났는지 여기저기 뛰어다녔다. 나는 가만히 앉아 정장을 입은 형의 멋진 모습을 한참을 바라보았다. 형과 나는 동일한 정장 브랜드를 좋아한다. 그날도 화려한 정장에 눈길이 갔지만, 애써 외면했다. 정장을 탐낼 만한 여유도 없었고 그럴 기분도 아니었다.


어쩔 수 없이 아이쇼핑을 하면서 쉬어도 쉬는 기분이 들지 않았다. 그저 속상하기만 했다. 나는 그 마음을 들키기 싫어 "나 살 거 있어서 밑에 한 바퀴 돌고 올게."라며 자리를 떴다. 그리고 정처 없이 백화점 여기저기를 걷고 또 걷다가 이름 없는 빈 벤치에 그냥 앉았다. 공허했고, 이름 없는 벤치처럼 그날 나도 이름이 없는 것만 같았다. 한 시간쯤 멍 때리다가 다시 우리 가족이 있는 곳에 갔고, "정장 샀어?"라며 형에게 웃으며 말을 건넸다. 그날 점심을 먹고 형네 가족은 제주도로 다시 내려가고, 어머니는 외할머니 네로 갔다. 나와 아버지만 내 집에 와서 함께 저녁을 먹었다. 저녁으로 회를 먹으며 컵라면과 소주를 곁들였다.


나는 아버지와 회를 먹으며 한참을 많이 없었다.

"아들, 많이 속상했지?"

나는 그냥 눈물이 핑 돌았고, 아버지 앞에서 거의 처음으로 눈물을 쏟아냈다.

"어떻게 알았어?"

"아빠가 백화점에서 아들 표정 계속 지켜봤는데, 아들 표정 안 좋더라고... 자리 뜰 때 아들 뒷모습도 지켜봤는데, 우리 아들이 많이 속상할 것 같더라고..."

"응... 아빠 나 진짜 우리 가족 생각해서 열심히 사는데, 말이 너무 잔인하게 들어오니까 많이 속상하더라."

"그러게 말이야. 그런 의도가 아니었을 텐데 아빠도 많이 속상하더라. 왜 말을 그렇게 하는지 모르겠어. 그래도 아빠가 우리 아들 마음 알잖아."

"그러니까 말이야... 오늘 아빠 없었으면 내 마음이 더 외로울 뻔했다..."


이 날 아빠와 집에 있는 술이란 술은 다 마셨다. 원래 나는 속을 해치면서까지 술을 과하게 먹지는 않는데 이날은 몸도 마음도 다 취하고 싶었다. 아버지는 그 모든 걸 다 받아주셨다. 다음 날 아침 얼굴이 탱탱 부었고, 눈을 떴는데 눈이 떠지지 않았다. 아버지와 서로의 못난 얼굴을 바라보았다.

"속 좀 풀려?"

"응. 속이 아주 제대로 구멍 나서 잘 풀린다."

"너 어제 술 엄청 마셨어. 해장하러 가야지."

아빠와 함께 해장하러 가는 길이 나쁘지 않았다. 공기도 상쾌했고, 햇살도 넉넉하게 비추었다.

우리는 해장국집에 들어가 또 반주를 했다.

"아빠... 어제 고마워."

"자식... 아빠한테 뭘 고마워 인마... 당연한 거지. 엄마랑 형도 너 잘 되라고 하는 소리야. 알잖아 우리 아들."

"알지. 그냥 지금 내 상황이 힘드니까 의도가 좋은 말도 나쁘게 들리고 그러나 봐. 내가 더 잘해야지..."

"아빠는 우리 아들 믿는다."

"당연하지. 내가 누구 아들인데.."


삶이 참 다행인 건 내가 힘들 때 내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 한 명은 꼭 있다는 것이다. 나를 애정 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 삶의 전체를 애정 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내가 열심히 살아갈수록, 결국 내 주변도 나의 끈기 있는 모습을 인정하고 좋아하게 된다. 나도 좀 더 일찍 힘든 점을 주변에 얘기했으면 좋았을 텐데, 초반에 사업의 어려움에 직면하면서 좀 더 성숙하게 행동하지 못한 것도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해나가고 있는 일들을 우리 가족도 존중하고 응원하고 있다. 그 밑바탕에는 내가 나를 믿고 나아가는 점도 있지만, 가족이기에 그저 믿어주는 믿음도 있다.

"아빠... 아까 속상했지?"

"엄청 속상했지... 화가 이마 끝까지 올라오더라고..."

"내가 그래서 이렇게 회 사주잖아. 나 밖에 없지?"

"진짜 우리 아들 없으면 큰일 날뻔했다."

사람의 드러내지 않는 면도 보려고 하면 보인다. 미세한 표정, 애써 화를 누르는 모습까지 사랑할수록 그 모습은 내 마음처럼 아주 잘 담긴다. 아버지의 표정과 말도 어느새 내 눈에 다 익힌다. 내 표정과 말 또한 아버지에게 잘 익힌다. 애써 숨기려 해도 어차피 숨길 수 없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 편하게 나를 다 드러낼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시간들을 서로가 이해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 시간들을 아버지가 오랫동안 나와 함께 간직해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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