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잊지 말아야 할 꿈

by 김지훈

삶이란 건 알 수 없다. 과거의 경험이 있어 미래를 준비하고 대비할 수 있지만, 지금 당장 무슨 일이 일어날지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는 빠르게 급변하는 삶을 살고 있다. 오늘 내가 어떤 사람을 만나고, 어떤 사람과 통화를 할지 내일 뉴스는 어떤 것이 쥬요 이슈가 될지 다 아는 사람은 없다. 기술이 진보해 우리의 생활양식이 어떻게 달라질지 미리 알아내고, 그 흐름을 유연하게 타는 것 또한 쉽지가 않다.


기본적으로 인간은 안정된 보호막이 생기면 그 안의 생활에 충실하려는 욕망이 있다. 그래서 본인의 안정적인 생활이 충족될 때 '변화'란 본인의 안정적인 공간이 없어지거나 더 확장될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 아쉽게도 우리 아버지에게 '변화'란 더 나은 곳으로의 확장을 의미하지는 못했다.

아버지는 유명한 대기업의 시계 설계를 담당했고, 그 시계를 아시아와 유럽에 수출할 정도로 능력을 인정받았었다. 아버지 역시 본인이 설계한 시계가 시중에 나오고, 사람들이 시계를 차는 모습을 보며 많은 뿌듯함을 느꼈다. 그런 아버지가 급격하게 힘들었던 때는 스마트폰이 등장하고부터다. 사실 스마트폰의 등장은 스마트폰 이전의 세대에서는 엄청난 혁신이었다. 스마트폰 하나로 모든 업무를 다 볼 수 있는 세상을 누가 상상이라도 했을까. 핸드폰을 소장하고 이동하면서 전화와 문자만 할 수 있어도 신기했던 세상에서 현재 스마트폰은 모든 사람들의 생활양식을 완벽하게 대체하고 있다.

집에 지갑은 놓고 와도 바깥일을 볼 수 있는데, 스마트폰을 놓고 오면 다시 집에 들어가서 가지고 나와야만 한다는 얘기는 우리 모두가 공감하는 얘기일 것이다.


아무튼 이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사람들은 시계를 거의 차지 않았다. 스마트폰으로 시계를 보면 돼서 굳이 손목시계를 확인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지금은 패션이나 본인의 지위를 상징하는 용으로 시계가 활용된다. 하지만, 시계를 찬 사람들도 패션과 지위를 나타내는 한 부분으로 시계를 활용하지, 정작 시간은 스마트폰으로 확인한다. 스마트폰이 많이 보급되면서 아버지의 능력도 더는 중요한 능력이 되지 못했다. 처음에는 수출하는 시계의 디자인에 초점을 맞추어 작업을 하시다가 그조차도 끝내 수요가 떨어지면서 일자리를 잃으셨다. 지금 아버지는 본인이 원하는 일을 하기보다는 어느 정도 기본적인 생활이 될 수 있는 일을 하기 위해 돈을 벌고 계신다. 나 역시 아버지가 시계 설계를 그만둔 이후로 아버지와 '시계'를 연관 지어 생각한 적이 드물게 되었다.


그렇게 아버지의 소중한 꿈을 잊어버린 채 삶을 지냈던 것 같다. 그러다 아버지의 소중한 꿈을 다시 꺼내 알게 된 건 내가 시집을 내고 북토크를 하고부터다. 전국으로 북토크를 하는 와중에 하루는 전주 플리커 서점과 인연이 닿아 가게 되었다. 평소 아버지도 전주를 가보고 싶다고 나에게 늘 얘기하셔서 내가 북토크하는 모습도 아버지에게 보여드리고, 끝나고 데이트도 할 겸 함께 가게 되었다.

전주의 플리커서점의 사장님은 부부였는데 처음 뵐 때부터 우리 부자에게 엄청 친절하고 상냥하게 대해주셨다. 북토크가 끝나고 나서도 사장님은 나에게 내가 쓰는 시 자체와 내가 하는 가족 얘기가 너무 의미가 있다고 더 잘 됐으면 좋겠다고 덕담도 해주셨다. 그 자체만으로 감사했을 일인데, 사장님은 우리에게 저녁도 대접해주셨다.

그날 우리 부자를 데리고 간 곳은 유명한 전주 한상 차림 집이었다. 전주 한상 차림은 처음 가봤는데 말 그대로 상다리가 부러질 법하게 어마어마한 안주가 나왔다. 아버지가 좋아하는 주전자 막걸리도 있어 그날 독립서점 사장님들과 함께 한 자리의 분위기는 더 무르익었다. 그리고 우리 아버지와의 대화도 너무 잘 이어가셨다. 두 분은 디자이너로 공간 브랜딩과 미디어아트를 하는 분이셨는데 우리 아버지가 하셨던 일을 묻더니 너무 관심 있게 여러 질문을 하고 대화를 이어가셨다. 나는 아버지와 데이트를 하면서도 술자리에서 아버지의 시계 설계와 디자인에 대해서 심도 있게 여쭤본 적이 없는데 두 분이 아버지가 하셨더 일과 같은 계열이라 그런지 대화의 코드도 맞았고, 무엇보다 아버지가 너무 신나게 본인의 과거 이야기를 꺼내셨다.

'아버지의 못다 한 꿈이 아버지 가슴속에 있었구나...'

나는 아버지의 표정과 아버지가 하는 얘기를 더 귀에 담았다.


"저는 만약 재난이 닥쳐 모든 전자기기가 파괴된다면 수레바퀴를 다시 만드는 것처럼 인간이 수작업으로 하는 설계가 다시 원초가 될 것 같아요. 그래서 디자이너들도 수작업을 하셨던 분들의 역사를 잊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버님은 그 몇 미리의 설계도 직접 손으로 그리시고 설계하신 거잖아요. 요즘은 컴퓨터가 있어 정확하게 예측이 되는데 아버님은 손으로 컴퓨터가 하는 걸 하셨다니 진짜 놀라운 것 같아요."

나는 독립서점 사장님이 우리 아버지에게 했던 저 말을 잊지 못한다. 지나간 일이지만 설계 분야에서 한 때의 소중한 역사를 그리신 분이 우리 아버지라고 이 사장님은 너무나 선물 같은 말을 나 대신해주셨다. 가슴이 따듯해지는 말이었고, 우리 아버지 역시 자리를 뜨지 않고 새벽까지 이야기를 나눌 만큼 두 분을 좋아하셨다.

"아빠, 늦었는데 사장님들도 피곤하실 텐데 이제 우리 가야지."

"아니야. 사장님도 아빠 좋아서 술 같이 더 하고 싶다잖아."

의도하지 않게 그날 늦은 새벽 짜지 술자리가 이어졌다. 아버지가 아버지의 꿈으로 기분이 좋은 모습은 내가 아주 어릴 때를 빼고는 거의 처음 본 것 같았다.


지금도 아버지는 나와 술자리를 갖다가 '아들, 우리 전주 놀러 가자'라고 말씀하신다. 두 분과의 대화가 아버지 가슴에 너무 상징처럼 남은 것이다. 아버지의 꿈을 얘기할 수 있는 사람들과 전주라는 공간. 나도 내가 좀 더 여유가 생겨 글 쓰는 서재와 사람들과 얘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 생긴다면, 우리 아버지가 본인이 만들고 싶은 시계를 마음껏 만들 수 있는 공간도 만들어 드리고 싶다. 오래 기다려 늦게 피는 꽃이 더 이쁜 것처럼, 우리 아버지의 꿈도 더 이쁘게 필 수 있게 내가 꼭 이루어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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