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웃음 담아본 적 여러 번입니다

by 김지훈

"지성아, 기차에서 내리면 영등포 역사 안 롯데리아 알지? 아빠 거기 서있을 테니까 거기로 와라. 지훈이 길 안 놓치게 동생 손 꼭 붙잡고 오고."

"응. 알았어."

당시 휴대폰이 없던 시절이라 아버지와 전화를 하고 싶으면 우리 형제는 직장 번호로 전화를 걸어 아버지를 찾고는 했다.

"안녕하세요. 김명수 씨 아들인데요. 아버지 좀 부탁드려요."

당시 전화기 너머로 "김 씨, 당신 아들이래" 하며 기분 좋게 웃는 소리가 들렸다.

그렇게 아버지와 전날 통화를 하고, 다음 날 영등포 역사 안 롯데리아 앞에서 아버지를 만났다.


나는 지금도 영등포역과 롯데리아를 더 친숙하게 여긴다. 영등포역은 내가 시골에서 서울로 넘어와 아버지를 만날 수 있는 장소였고, 롯데리아는 그 역 안에서 아버지가 우리를 한참 전부터 기다리는 장소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가. 밖에서 일을 보다가 배가 고파 롯데리아가 보이면 나는 끌리듯 들어가 새우버거세트를 먹는다.

"배고프지? 햄버거 먹고 출발하자. 뭐 시킬래?"

"난 새우버거 세트, 형은 불고기버거 세트!"

롯데리아 앞에서 아버지를 만나면 아버지가 햄버거를 사줄 거란 생각에 더욱 신났다. 물론 햄버거보다는 1년에 한 번 보는 아버지가 너무 그립고 반가웠다. 아버지를 보면서도 아버지가 그리웠다. 햄버거를 먹는 시간은 몇 분 밖에 안되었지만 하루만큼의 긴 시간처럼 추억이 되어 내 안에 담겼다. 어쩌면 1년에 한 번밖에 보지 못하는 아버지와의 시간이기에, 그와 함께 하는 모든 시간의 양을 본래 가지고 있는 시간의 양보다 내가 좀 더 의미를 넣고 확대해서 내 안에 넣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지금도 강의를 가기 위해 지방을 가러 영등포역에 가거나, 1시간 미리 도착해 롯데리아에서 새우버거를 먹으면, 나는 어릴 적 내가 아버지를 만나러 가기 위해 총총걸음으로 걸었던 그 순간들을 회상한다.


나는 아버지를 만나면 줄곧 아버지의 손깍지를 끼고는 했다. 아버지의 손을 꼭 붙잡고 있으면, 시골에서의 공허 했던 내 마음이 아버지의 손에 대롱대롱 달려 조금이나마 안심을 하는 듯했다. 그렇게 서울에서 아버지를 만나 야구장을 가는 도중 우리는 빵집에 꼭 들렸다. 지금도 그런데, 내가 빵을 아주 좋아하는 빵돌이었기에 냄새가 진동하는 빵집이 있으면 아버지는 내 손을 이끌고 가 빵쇼핑을 시켜주었다.

"지훈아, 먹고 싶은 것 다 담아."

나는 신이 나서 생크림소보로빵, 그리고 피자빵까지 장바구니에 가득 담았다. 아버지는 그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셨다. 나는 생크림이 든 소보루빵과 우유를 듬뿍 먹을 때 실제 내 인생보다 달콤함을 많이 느꼈다. 야구가 9회말까지 진행되기에 나는 내 품안에 든 빵을 하나씩 먹으며 야구를 봤다. 그리고 아버지와 형의 기분 좋은 환호성도 보다 더 많이 느꼈다.

1년에 한번씩 아버지를 만나러 올라가면 아버지는 우리 형제가 신은 신발을 살펴보고, 꼭 신발 가게에 들려 신발 하나씩을 사주었다. 자주 보지는 못하기에 우리 형제가 편안한 실발 신고 보다 더 건강하게 자라길 바라는 아버지의 마음이었을 수도 있다.

"비싼 거 사도 되니까 원하는 신발 골라봐."

나는 어릴 때 비싼 걸 잘 못골랐는데 우리 형은 고르기만 하면 그 매장에서 제일 비싼 것이었다. 형은 눈이 높았다. 실제 형의 눈썰미가 위력을 발휘해 비싼 품목을 한번에 고를 때마다 아버지의 눈빛이 조금 흔들리는 걸 나는 재밌게 바라봤다.

"지성아.이게 정말 마음에 들어? 이거보다?"

아버지는 좀 더 싼 걸 권해봤는데, 우리 형에게는 어림도 없었다.

나는 형이 마음에 드는 걸 사는 게 좋았다. 시골에서는 마음에 드는 게 있어도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는 중저가 정도의 가격이 되는 이쁜 신발을 골랐다. 아버지가 사주는 신발인데, 뭔들 다 좋았다.


지금 아버지는 어는 덧 환갑이 조금 넘었고, 나는 30대 중반의 나이가 되었다. 어른이 되어 아버지의 고민을 들을 수 있다는 행복에 잠시 취할 때도 있지만, 내가 어른이 되면 더 어른이 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서운한 감정이 들 때도 있다. 그래서 아버지와 데이트를 할 때면 요즘도 아버지의 행복한 모습을 눈에 담는다. 때로는 글로 풀기도 한다. 내가 쓴 시 중 <기억>이라는 시가 있다.


기억


당신이 기뻐 환호하고 웃을 때

그 모습 따라 함께 웃다

가만히 당신 웃음 담아본 적 여러 번입니다


당신 조금씩 늙어가는 것 일부러 외면하며 살았는데

당신 제 옆에서 유난히 행복해할 때

혹시나 이 모습이 가장 행복한 모습이면 어쩌나 싶어


저도 모르게 가슴에 담았습니다.


행복한 모습 끝에 서운한 감정이 들 때가 있다. 누구나 유한한 삶을 살고, 유한한 삶의 여정 속에 행복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 아버지 역시 그 여정 속에 있고, 나 역시 마찬가지다. 사람은 죽기 전에 소중한 몇 장의 사진을 떠올린다고 한다. 나는 우리 아버지가 오래오래 살다 하늘나라로 가기 전 소중한 사진을 가슴속에 아주 많이 담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서로가 가슴속에 품은 사진 덕에 몸은 떨어져 있어도 가끔은 서로 볼 수 있는 영원한 사이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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