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진짜 다 왔다."

by 김지훈

2017년 무더운 여름, 우리 부자는 3박 4일간의 제주도 여행을 갔다. 그중 아직도 잊지 못할 것이 여행 이틀째에 갔던 한라산 등반이다. 우리는 새벽 5시에 기상해서 한라산 성판악 코스 주차장까지 차를 몰고 갔다. 주차장에 도착하니 6시 전이었다. 여름이어도 새벽은 조금 쌀쌀했다. 매점에서 김밥과 따뜻한 우동을 먹었는데 추운 날씨에도 몸에 뜨거운 기운이 전달될 정도로 든든하고 맛있었다. 우동 면발은 쫄깃쫄깃했고, 김밥도 부드럽게 씹혔다. 새벽부터 배속이 든든하니 등산 전부터 기분이 좋았다. 김밥 두 줄과 초코바 두 개를 더 사고 등산을 시작했다.


초반에는 나무들의 웅장함과 초록잎 사이로 들어오는 햇빛을 함께 즐기며 산책하는 정도의 코스라 평탄했다. 나무로 우거진 숲을 보며 아버지와 도란도란 얘기를 하며 걸었다.

"이빠. 일찍 일어나서 새벽 공기도 마시고 나무들도 보니까 확실히 기분이 다르다. 평소에도 이렇게 일찍 일어나서 산책하면 좋을텐데 그게 참 안된다."

"그렇지. 아빠도 매일 규칙적으로사는 게 쉽지 않아. 그래도 확실히 사람이 자연이랑 가까이 있어야 기분도 힐링되고 좋은 것 같긴 해."

"응. 그래서 내가 어린이대공원 주변에 집 얻은 거잖아."

"잘했다. 아빠도 아들 덕에 집 놀러 가면 어린이대공원 같이 산책할 수 있어 좋더라."

그렇게 속밭 대피소까지는 완만한 코스여서 아버지와 사는 얘기도 하며 함께 걸었다. 이제 해도 점점 들어오고, 벌써부터 허기가 져 대피소에서 사 온 김밥을 꺼내 먹었다. 새벽부터 운동을 해서 그런지, 김밥은 먹어도 먹어도 꿀맛이었다. 산을 타면서 자연 속에 쏙 들어와 먹으니 더 군침이 도는 맛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김밥을 먹고 샘터 코스까지 진입을 했다. 이때부터 올라가는 계단도 등장하고 코스 자체의 완만함도 사라지기 시작했다. 나는 어릴 때부터 높은 계단만 보면 신나게 올라가는 성향이 있어서 더 열심히 올라갔는데, 아버지가 많이 더우셨는지 중간중간 숨을 거칠게 쉬는 게 느껴졌다. 나는 먼저 길을 올라가 걷다가 아버지를 기다리는 동작을 반복했다. 아버지가 힘들다 싶으면 중간중간 쉴 곳을 찾아 잠시 물을 마시며 쉬기도 했다.


산을 오를 수록 가파른 돌계단이 많았고, 경사가 급격하게 올라간 곳도 많았다. 그렇게 한참을 걷다 보니 진달래대피소에 도착하게 되었다. 진달래대피소에서 컵라면을 먹었는데 역시 컵라면은 산에서 먹어야 자신의 마력을 뿜뿜 뿜어낸다. 나는 컵라면 국물은 먹지 않는 편인데, 이 날은 국물까지 싹 비었다.

"아빠, 컵라면에 설탕 넣었나 봐. 너무 맛있어."

"아들. 원래 고생하다 먹는 라면이 맛있다. 아빠는 20대부터 먹었는데 아직도 먹잖아. 라면이 안 질려"

"그렇네. 우리 사서 고생하네. 라면 진짜 꿀맛이다."

"이런 고생은 괜찮지."

그렇게 잠깐 쉬고 또다시 길에 나섰다. 백록담까지 가는 길은 여전히 험했다. 갈수록 험한 길이 나왔고 돌이 많아서 발이 조금씩 아팠다. 그렇게 걷다가 다시 계단에 접어들어 뒤를 돌아보면 어느 순간 구름이 내 몸 앞까지 와 있는 것처럼 황홀한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 구름과 함께 마주한 적이 있었나.'

"아빠. 구름 봐. 같이 서 있는 기분이야."

"아빠도 한라산 오랜만에 오는데 정말 좋다... 아들"


백록담이 점점 가까워지면서 주변의 경치도 더욱 훌륭해졌다. 구름과 옆을 나란히 하는 기분도 들었고 곱게 맵시를 갖춘 듯 한, 산의 봉오리들도 눈에 선명하게 들어왔다. 고개를 좌우로 수시로 돌리며 그 모든 아름다움을 눈에 담았다. 정상까지 올라가니 어느새 백록담이 보이는 곳에 도착했다. 도착해서 아버지와 서로 사진을 찍어주었는데, 나는 너무 기분이 좋아 두 팔을 벌린 채 날아가는 포즈로 사진을 찍었다. 정말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다.

아쉽게도 백록담은 물이 말라있었는데 개의치 않았다. 아버지와 한라산 등반을 처음 해 본 것도 좋았고, 정상에 잠깐 앉아 나눈 얘기들도 가슴에 남았다.

백록담 정상 기념사진

"아빠. 올라오느라 고생했어. 내가 걸음이 조금 빨라서 고생 더 했겠다."

"우리 아들은 걸음 엄청 빠르지. 아빠니까 따라잡는 거야. 힘들어 죽는 줄 알았다 이놈아"

"내가 아빠 닮아서 운동 신경도 좋고 체력도 좋잖아. 아빠 체력 더 좋아지라고 내가 아빠 단련시킨 거지"

"그렇지. 우리 아들 아빠 운동 신경 닮았지. 그래도 다음부터는 조금 천천히 걸어 이놈아."

"아니야. 아빠는 나 닮아서 체력 좋으니까 지금보다 더 잘할 수 있어. 우리 땀 흘렸으니까 시원하게 온천하고 흑돼지 먹으러 가자. 소주랑 흑돼지 당긴다."

"얼른 가자!"

아버지는 소주랑 흑돼지 말에 배가 고프셨는지, 먼저 앞장을 서셨다.


그렇게 아버지와 서늘한 바람을 맞으며 대화를 이어가다 다시 하산을 하기 시작했다. 코스가 가팔라서 그런지, 내려가는 길도 쉽지가 않았다. 길고 긴 시간을 지나 드디어 처음에 진입했던 등산 초입 코스가 보였다. 가파른 등산로에 있는 돌멩이들이 발에 밟힐 때마다 하산은 언제 하나 싶었는데, 어느덧 처음 차를 몰고 왔던 주차장까지 도착했다. 주차장에 도착했을 때 너무 기뻐, 아버지와 하이파이브도 하고 서로 안아주었다. 아버지도 발이 아프셨는지, 내려오는 길이 더 많은 인내심이 필요한 것 같다고 하셨다.

그렇게 우리는 다시 편하게 차를 타고 온천으로 향했다. 우리 부자는 온천을 참 좋아하는데, 이렇게 많이 걷고 운동을 하고 가는 온천을 제일 좋아한다. 피로가 싹 풀리기 때문이기도 하고, 온천에서 서로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는 것도 좋아한다. 이번에도 온천에서 시원하게 냉욕과 온욕을 즐겼다. 온천 후에는 차를 몰고 숙소를 향했고, 숙소에 도착해 간단히 짐을 놓고 밖을 나섰다.

이미 어둑해졌는지, 노을이 지고 있었다. 눈에 보이는 주차가 많이 되어 있는 흑돼지 집으로 향했다. 흑돼지 집에 들어서자마자 사람이 많은 게, 맛있는 집으로 잘 들어온 것 같았다. 우리는 바로 흑돼지와 한라산주를 주문했다. 우리는 흑돼지가 나오기 전부터 다시 한라산 등산을 자축하고 건배를 했다. 소주가 목부터 축이며, 가슴속으로 들어가는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아빠, 다음에는 겨울 등산해보자. 겨울 코스가 그렇게 이쁘대."

"그래, 겨울 등산이 더 힘들긴 한데, 가다 안 미끄러지게 장비 잘 챙겨서 올라가자."

때마침 흑돼지가 나왔다. 나는 어딜 가든 고기를 뚝딱뚝딱 잘 구워 이번에도 솜씨를 뽐냈다. 고기가 알맞게 잘 익었을 때 아버지 접시에 한 점 놓아드리고, 내 접시에도 놓아 고기를 먹기 시작했다. 흑돼지의 육즙이 입안에 그대로 들어왔고, 원기가 보충되는 듯 술도 절로 들어갔다.

"산을 타면 단백질을 보충해줘야 한다더니 한라산 타고 먹는 흑돼지가 제일 맛있다. 아빠 행복하지?"

"행복하지. 산 타고 먹으니까 더 좋다. 건배하자 아들."

그날도 새벽까지 아버지와 오붓한 시간을 보내고 잠이 들었다. 지금도 나는 아버지와 자주 등산을 즐긴다. 밥을 먹고 술을 마시더라도 산책을 하고 등산을 하는 등의 운동을 즐긴다. 등산을 하고 나서 먹는 술이 더 맛있기도 하고, 아버지의 체력이 괜찮은 지 확인해 보는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다행히 우리 아버지 체력은 걱정 없을 정도로 훌륭하시다.


올해가 끝나갈 무렵에도 아버지와 등산을 갈 계획이다. 아직 행선지를 정확히 정하지는 않았는데, 한 해를 잘 마무리한 걸 자축하기 좋은 곳으로 정하지 않을까 싶다. 한라산을 다시 가고 싶기도 하고, 동해 쪽으로 가고 싶기도 하다. 주변에 등산과 온천을 할 수 있고, 등산을 하고 나서 단백질을 보충할 수 있는 곳이면 좋을 것 같다.

"아빠, 체력 늘 잘 챙겨. 술도 일주일에 두 번만 마시고. 나랑 여행 많이 다녀야지."

"그럼, 아빠도 우리 아들이랑 여행 가려고 체력 관리 잘하지. 팔씨름도 아빠가 이기잖아."

"그건 내가 봐주는 거지."

"봐주긴 이놈아. 아빠가 손 딱 잡아보면, 아들이 나한테 팔씨름 안될 거 딱 아는데."

나와 수다를 떠는 시간이 많아지니 어느 순간, 아버지가 말을 잘하기 시작한다.

'우리 아버지가 날 닮아서 점점 말을 잘하나?'

이전 08화"아빠, 올해 삼성 야구 몇 강 갈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