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 살고 있는 형이 토요일 신용분석사 자격증 시험을 치르기 위해 우리 집에 왔다. 금요일에 올라와서 토요일에 시험을 보고 다시 제주도에 가는 짧은 일정이었다. 김포에 사시는 아버지도 오랜만에 부자상봉을 한다고 하니 금요일에 일이 끝나자마자 차를 타고 한걸음에 집에 오셨다. 명절에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에 가면 항상 형이 공항으로 나와 우리를 마중했는데, 이번에는 지하철 역 앞에서 아버지와 내가 형을 마중했다.
형이 역으로 나오는 것이 보였다.
"잘 지냈니? 아픈 데는 없니?"
아버지는 형을 보자마자, 안부를 물으셨다. 아버지의 안부 인사는 항상 우리의 건강으로 시작한다.
"형, 피자랑 치킨 시켜서 집에서 먹을래? 고기 먹으러 갈래?
나는 내일 오전에 형이 시험을 봐야 하므로 술을 많이 마시면 안 될 것 같아 일부러 두 가지의 선택지를 형에게 건넸다.
"고기 먹으러 가자!"
역시 형은 형이었다. 어릴 때 수능 전날에도 삼성과 엘지의 한국시리즈 결승전을 여유 있게 보던 형의 강심장을 나는 또렷하게 기억한다. 반면 어릴 때 나는 걱정이 많은 성격이라 수능 전날 저녁 8시부터 의도치 않게 밤을 새웠고, 모의고사 때도 한 번도 나오지 않았던 가장 낮은 성적을 선사받았다.
"그럼 고깃집 어차피 우리 집 건물 옆이니까 짐 놓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가자."
"그러자."
집에 도착하자마자 형은 짐을 풀고 편한 옷부터 찾았다.
나는 얼마 전, 소중한 사람에게 선물 받은 잠옷 바지를 꺼내 형과 아버지에게 주고 나도 입었다. 일명 부자 커플 템이었다. 셋이 시원한 바지를 입고 노을이 지는 풍경을 배경 삼아 터벅터벅 걸으니 마냥 미소가 지어졌다.
"우리 셋이 똑같은 바지네."
아버지도 기분이 좋으신지 웃으셨다.
고기를 주문하기도 전에 형이 소주와 맥주를 시키더니 술을 말았다. 은행에 다니더니 술을 마는 솜씨가 더 돋보였다.
"요즘 일 어떻게 하고 있냐."
형이 술을 한잔 마시더니 대뜸 나의 안부를 물었다.
"글 많이 쓰고, 코로나로 대면 미팅은 조심스러워하는데 전화 영업하고, 미팅 조금씩 하고 그래."
"야, 사업할 때 재무지표가 건전해야 돼. 자본도 많이 축적해야 되고, 잘 벌어도 모이지 않으면 안 된다. 빛 많이 내지 말고."
"알지. 나 자본 하나 없이 사업 시작했고 전세 구할 때 대출받은 빚밖에 없어."
"형이 은행 다니면서 VIP 고객들 많이 만나잖아. 사업할 때 자신의 위치랑 상태 봐가면서 투자하는 거야. 만약 없는데 크게 투자하는 건 절대 안 돼."
"알지. 나 절대 크게 투자 안 해. 그리고 내가 하는 건 교육이라 무형자산이잖아. 재고는 내 머리에 쌓이는 거고 걱정 마."
"지훈아. 형이 은행 다니니까 숫자 얘기는 형 얘기 귀담아들어라."
"응. 중요한 얘기니까 들어야지."
형은 1년에 한두 번 나를 보며 얘기를 할 때 늘 피식하고 웃으며 말을 건넨다. 내 일이 잘 안 풀리면, 그냥 무인도에 가서 푹 쉬라고 핀잔을 주기도 하고 잘 되면 본인 뭐 사줄 거냐고 농담도 한다. 형의 눈에는 사업을 하는 내가 귀엽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하고, 걱정이 되기도 하나보다. 그 뒤로도 결혼할 때 중요하게 봐야 하는 것과 제주도에서 조카가 크는 얘기, 형의 비상금 보유 유무 등 여러 얘기를 이어갔다.
그렇게 1시간 좀 넘게 술을 마시다 보니, 소주 여섯 병이 쌓여 있었고 우리 부자는 1차를 종료했다. 그리고 집에 들어와 간단히 맥주와 과자를 안주 삼아 2차를 이어갔다. 아버지는 1차 때부터 좋은 기분을 이어가느라 얼굴이 금세 빨개져있었다. 그런 아버지가 대뜸 형의 손을 붙잡았다.
"지성아. 아니 지훈아. 지훈아."
"나 지성이라고."
아버지는 귀엽게도 누가 지성이고, 누가 지훈인지 헷갈리는 것 같았다.
"네가 기억할지 모르지만, 아빠가 통화할 때 얘기했잖아. 너 동생 하나밖에 없으니까 지훈이 잘 챙기라고."
"아빠. 우리 가끔 안부 주고받아도 마음으로 잘 챙겨. 나는 내 동생 지금보다 잘 될 거라고 믿고 있고, 우리 형제 트러블 하나 없이 각자 자기 인생 잘 살고 있다가 이렇게 웃으며 또 만나잖아."
"그래. 아빠가 알지. 그래도 혹시나 아빠랑 엄마 나중에 없으면 너희 둘 밖에 없으니까 서로 잘 챙기라고."
나는 부모님이 곁에 없다는 걸 언젠가는 겪어야 하지만, 그것이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앎에도 금방 까먹게 된다. 부모님이 늘 우리 곁에 계실 것만 같고, '부모님이 나중에 없다'라는 가정도 서운하게 느껴졌다.
"만약에 아빠, 엄마 나중에 없으면 그때는 내가 동생 더 챙겨야지."
"그래. 아빠가 고맙다."
아빠가 얼큰하게 취하신 것도, 우리 아들 또 안아보자며 나를 안으신 것도, 형과 나눈 깊은 대화도 따뜻하고 좋았다. 우리 형제는 어릴 적 갑작스럽게 가난에 휩싸였을 때 각자의 몫을 버텨내느라 아프다는 얘기를 잘 못하고 살았다. 그래도 이 날 밤은 형의 속마음도 듣게 되고, 형이 형으로써 자신이 인생을 충실히 살아준 것만으로도 참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아버지의 훗날을 생각한 걱정 어린 시선도 서운하면서도 애틋하게 들렸다. 그나저나 내일 시험을 치르는 간 큰 형의 합격 소식은 또 한 번 아무렇지 않게 들려올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