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된다는 건...

by 김지훈

어릴 적 형의 생활기록부에는 나이에 비해 '어른스럽다'라는 기록이 많았다. 선생님들은 형을 두고 생각이 너무 '어른스럽다'라고만 얘기할 뿐 왜 어른스럽게 생각하는지는 묻지 않았다. 형은 한 살씩 나이를 먹을 때마다 말수가 적었다. 뭐가 힘들다거나 뭐가 아프다거나 부모님에게 얘기하지 않았다. 얘기해도 달라지지 않을 환경이란 걸 일찍부터 알았기 때문이다. 내가 힘들어도 더 힘든 환경이 보이는 현실. 치유할 수 없는 환경이 형에게 무게로 다가왔을 것이다. 그리고 그 무게는 내게도 정확히 얹혔다. 모두가 잠든 컴컴한 밤에 술 한잔 못 드시는 어머니가 소주를 마시는 광경을 봤고, 어머니가 할머니에게 전화해 소리 내지 않으려 울음을 참는 장면도 봤다. 그리고 어머니가 내 옆에서 다시 잠을 청했을 때 나는 자는 척 어머니의 손 위로 내 손을 뻗었었다. 그게 미약한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나는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힘 있는 어른이 빨리 되고 싶었고 형 역시 마찬가지였는지도 모른다.


형은 ROTC 해병대 장교 제도를 이용해 대학교 생활을 했고, 6년간의 해병대 장교 생활을 아무렇지 않은 듯 해냈다. 나는 온순한 이미지의 형이 해병대를 갈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는데 형은 그 어려운 과정도 끄떡없이 버텨냈다.

하루는 명절 때 가족과 친지가 모인 자리에서 막내 이모부가 형에게 군대 생활의 힘든 점을 물은 적이 있다. 여전히 여유 있게 웃던 형은 "전쟁 시물레이션 중에 땅콩이랑 물 같은 것만 먹으면서 일주일 동안 잠을 안 자는 훈련이 있는데 그게 진짜 죽겠더라고요."라고 대답을 했다.

생각해보니, 형과 내가 서로의 힘든 점과 아픈 점을 공유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나는 형이 아닌 다른 사람을 통해 형의 힘든 얘기를 간혹 듣고 형 역시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어릴 때부터 서로가 사건사고 없이 잘 크는 걸 지켜봤고 그걸 다행으로 여겼기에 특별한 사연팔이 같은 걸 하지 않았다.

지금도 만나면 뭐하면서 지내냐며 안부를 묻고 술잔을 주고받으며 농담을 건네지, 속 깊은 얘기는 표정과 마음으로만 전달한다. 형과 나는 너무 일찍 어른이 되고 싶었으나 막상 어른이 되고 삶의 무게를 더 느끼다 보니, 자연스럽게 장난스러운 아이의 표정을 가지게 됐다. 어른이 삶을 버티는 방법은 아이의 시선으로 삶에 농담을 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직장생활을 하며 핀잔을 들을 때 '죄송합니다'라고 상사에게 얘기를 한 후 빨리 웃는 습관이 있었다. 물론 '왜 웃냐'며 그 습관마저 지적을 받을 때까 종종 있었다.


그저 웃지 않으면 버티기 힘든 상황 속에서 웃기라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살 때가 있었고, 때로 아픔을 숨기려 웃다 보니 주변에 속내를 드러내지 못해 더 큰 아픔으로 올 때도 있었다. 물론 지금은 솔직한 감정을 잘 정돈해서 주변에 얘기하려고 노력하는 편이고 감정관리 또한 잘하고 있다. 나는 강의를 하며 너무 일찍 어른이 되는 학생들을 접할 때가 있다. 그럴 때 나도 모르게 가슴이 아프다. 너무 일찍 어른이 된다는 건 세상이 내가 바라는 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걸 일찍 깨달았을 시점에서부터 시작한다. 나중에 겪어도 될 일을 일찍부터 겪는다는 건 마음이 아픈 일이다. 아이 같은 순수한 시선을 오래 유지하는 게 나와 주변을 맑게 할 수 있다는 걸 많은 어른들은 이미 알고 있다. 나 역시 내게 아이 같은 표정이 오는 걸 반긴다. 그리고 그 길을 걸으려고 부단히 노력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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