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운 여름, 일본 여행을 하던 이틀 째 되던 날 요나고에 사구가 있다고 해서 아버지와 찾아갔다. 사구란 바람으로 운반된 모래가 쌓여서 만들어진 언덕을 말한다. 우리가 묵었던 숙소에서 돗토리사구까지는 지하철과 버스를 이용해서 대략 1시간 30분 정도가 걸렸다. 아침에 출발했는데도 땀이 줄줄 흐를 만큼 무더운 날씨였다. 마침내 사구가 눈앞에 펼쳐졌을 때 감탄이 절로 나왔다.
"우와! 아빠 엄청 이쁘다."
"기가 막히네."
우리는 감탄사를 연발하며 사구 끝에 있는 해변까지 터벅터벅 걸었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신은 슬리퍼였다. 햇볕이 쨍쨍하게 내려 찌니 모래가 가열이 되었는지 슬리퍼 사이로 모래가 스며들어 발가락 틈으로 전해질 때마다 뜨거움을 참을 수 없었다. 중간에 걷다가 너무 뜨거워 주저앉기도 했다. 궁여지책으로 가방을 바닥에 집어던지고 가방을 발판 삼아 한 걸음씩 걸음을 옮겼고 힘겹게 언덕에 올랐다. 언덕에 올랐는데 내 눈에 눈물이 고여있어다. 그래도 탁 트이는 해변의 정경에 마음이 무장해제되는 듯했다. 해변을 바라보며 아버지와 사진을 찍었다.
아버지와 돗토리 사구에서 그런데 해변을 마주 보려고 했던 것이 욕심이었을까. 다시 언덕을 내려가는 과정은 더 많은 고통이 따랐다. 가방을 던지고, 그 위에 올라서는 것도 소용이 없었다.
"으악. 뜨거워. 아빠 나 눈물 나. 못 걸을 것 같은데..."
아버지도 어떻게 할 수 없어 안쓰러웠는지 가만히 지켜보다가 이내 기발한 아이디어를 냈다.
"야. 지훈아. 아빠가 양말 벗어줄걸 그랬다!"
기가 막힌 아이디어였다. 그리고 아빠는 나를 향해 신던 양말을 던져주셨다. 사실 당시 아버지가 무좀이 조금 있었는데 내 발이 탈 것 같아서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아버지의 양말을 신고서야 나는 편하게 사구를 내려갈 수 있었다.
"아빠, 진작 주지. 진짜 발 엄청 뜨거워. 이것 봐, 내 발바닥 새카맣게 타버렸잖아"
"우와 우리 아들 발바닥 진짜 뜨거웠겠다. 아들이 언덕 오를 때보다 내려올 때 표정이 고통스러우니까 그때 아빠가 신고 있던 양말이 생각나는 거야."
"뭐야. 내 고통을 즐겼다는 건가?"
"이것도 추억이지 이놈아."
아버지는 그렇게 얘기하고 앞장서서 걸었다. 그 뒤로 돗토리 사구에서 10분 정도 떨어진 회관 안에 있는 온천에 갔다. 내가 여행 전 사이트로 봤을 때는 사방이 확 트인 엄청 큰 온천이었는데 막상 요금을 치르고 들어가니 온탕 하나가 조촐하게 있었고 냉탕은 냉탕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성인 한 명이 간신히 들어갈 수 있는 정도의 크기였다.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뭐야, 이게 끝인가?"
"아니야, 아빠가 일본을 많이 와봤잖아. 슬리퍼 신고 저 문 통과하면 또 다른 탕들이 있어"
"슬리퍼를 신고 다시 조문을 통과한다고?"
"그래, 이놈아."
나는 일본 문화에 대해 나보다 더 잘 아는 아버지를 신뢰하고야 말았다. 그렇게 다시 슬리퍼를 신고 반대편 문을 열었을 때 카운터와 바로 연결되었고, 나는 내 모든 것을 의자에 잠시 앉아 있던 분들에게 아낌없이 보여주었다.
"꺄~~ 악!"
깜짝 놀란 나는 죄송하다는 제스처로 고개를 숙인 후 후다닥 탕으로 뛰어들어왔다.
"아빠! 뭐가 있다는 거야. 카운터잖아!"
아버지는 재미있다는 듯이 껄껄껄 웃으셨다.
"괜찮아. 어차피 여기 아는 사람도 없잖아."
그렇게 아버지와 온탕에서 피로를 풀고 조그만 냉탕에 함께 들어갔다. 아버지와 조그만 냉탕에 마주 앉아 들어가니 웃음이 났다.
"아빠. 내가 살다 살다 이렇게 조그만 냉탕에 아빠랑 들어가는 건 또 처음이다."
"아들, 그래도 냉탕이라고 시원하긴 하다. "
아버지와 그렇게 배꼽 빠지는 추억을 만들고 숙소 근처로 이동해 맥주를 마셨다.
"아빠, 여기 맥주는 진짜 마셔도 마셔도 맛있다. 다음에 또 와야겠는데?"
"그렇지? 맥주 맛 못 잊겠지? 아빠는 아들이랑 마셔서 더 맛있다."
그 날 아버지와 어떤 얘기를 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가진 현금을 다 쓸 때까지 맥주를 원 없이 마셨기 때문이다. 다만, 여행 내내 즐거워하던 아버지의 얼굴과 그 얼굴을 보며 개구쟁이처럼 웃던 내 표정이 기억난다. 파도소리를 들으며 인생의 중심에서 아버지와 함께 함을 소중해하던 내 마음도 기억한다. 그리고, 아버지가 오래오래 살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졌다. 그 마음은 이내 아버지가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욕심으로 이어졌다. 빨갛게 익은 노을에 아버지 몰래 전한 내 간절한 소원도 기억한다.
아버지
붉은 석양을 바라보며
저는 다시 해가 떠오름을
아버지는 곧 해가 가라앉음을 보셨을까요
성인이 되어 아버지와 술 한잔 적시고
사회인이 되며 아버지의 술값을 내고
철든 어른이 되어 아버지와 여행을 오며
아버지의 세월을 이해하는 동안
아버지는 아버지로 저의 세월을 이해하며
머무르지 않고 저만큼 걸음을 옮기셨네요
아버지의 세월이 멀어질 줄 알았다면
이렇게 일찍 어른이 되지는 않았을 텐데
지금 함께 바라보는 석양은 마음이 참 설레죠
일상에서 노을이 지면 늘 그렇듯
아버지와 술 한잔 적시고 싶은데
먼 훗날 아버지가 저만의 기억에 머무른다면
전 어쩌죠...
아버지
부디 지금처럼 건강히 오래오래 사세요
아니, 죽지 말고 제 옆에 있어주세요.
나는 내 바람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을 안다. 하지만, 매일 아름다운 것과 영원한 것들을 향해 기도할 것이다.
"아버지와 함께 하는 일상이 잊히지 않게 해 주세요."
"나와 함께 하는 소중한 시간들이 아버지의 가슴에 따뜻하게 스며들어 오랫동안 함께 뛰게 해 주세요."
"앞으로 아버지와 함께 하는 모든 시간을 따뜻하게 안아줄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해 주세요."
"그리고 그런 나와 아버지가 영원토록 잊히지 않게 해 주세요."
"다시 생이 이어진다면, 이번에도 똑같이 우리 아빠의 아들로 태어나게 해 주세요."
"먼 훗날 우리가 이별을 하게 된다면, 시간이 지나 또다시 만나게 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