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은 결국 아픈 사랑으로
집으로 향하는 지하철, 여느 때처럼 네이버를 켜 화면을 오른쪽을 쓱 넘기니 슈가맨3 콘텐츠가 보였다. 자자의 버스 안에서 영상을 보기 위해 클릭했으나 나의 눈길을 끄는 것은 다른 슈가맨인 자전거 탄 풍경이었다. 영상 속 자전거 탄 풍경의 '너에게 난 나에게 넌'을 들으니 영화 클래식이 생각났다. 이제는 너무 무뎌져 생각이 늦게 나지만, 한창 때는 인트로만 듣기만 해도 영화의 장면들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던 시절이 있었다.
누구나 추억을 갖고 있다. 한국 사회의 유사한 성장 방식은 놀랍게도 개개인의 추억 일부를 유사하게 만든 것 같기도 하다. 일반적으로 고등학교까지는 학교-집-학원과 같이 제한되고 유사한 형식으로 성장한다. 그리고는 암묵적으로 대학이라는 다음 관문으로 나아간다. 대학 진학과 함께 주어지는 또 다른 타이틀은 성인 그리고 자유다. 공부라는 압박에서 벗어나며 느낀 자유도 모자라 대학생이라는 이유로, 20살이라는 이유로 경험해보지 못한 범위의 자유를 받는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 20살 때부터 삶에 대한 시행착오를 겪고 성장하는 것 같다. 사랑도 그중에 하나다. 그렇기 때문에 클래식, 건축학개론과 같은 학교 배경의 조금은 풋풋하고 서투른 사랑 얘기에 공감을 얻는 것이 아닐까 싶다. 나 조차도 대학생 때, 당시 개봉한 지 10년이 지난 클래식을 처음 보며 공감을 했고 울림을 받았다고 느꼈었으니 말이다. 그런 클래식을 오늘 집에서 다시 꺼내 보았다. 휴직으로 인한 시간적 여유와 음악의 기억과 마침 내리는 비가 해낸 일이다.
클래식을 볼 때면 나도 모르게 영화 속 이름 없는 투명인간 배우가 되는 기분이다. 주인공의 곁에서 모든 사실을 보고 듣고 같이 공감할 줄 아는 그런 전지적 작가 시점의 참여자 말이다. 아마도 영화의 배경이 누구나에게 익숙한 학교라는 공간, 사랑이라는 주제에 대한 이야기라서 더 그러지 않았을까. 대학생 시절 첫 회차 때는 이건 내 이야기 같아하며 마치 내가 클래식의 주인공이 된 마냥 상황과 스토리에 대한 끝없는 공감을 보였다면, 어느덧 앞자리가 바뀐 나이 때가 된 후에 바라보니 사건 너머의 캐릭터들이 그 순간순간에 느꼈던 감정, 상황들이 공감이 되었다.
영화를 돌아보면 준하와 태수(이기우)가 보여주는 일상들과 피식 웃게 만드는 알 수 없는 조금은 철없던 우정 그리고 지혜(손예진)와 상민(조인성)이 보여주는 현대에서의 사랑도 좋지만 역시나 주희(손예진)와 준하(조승우)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둘의 사랑은 영화 내내 보이는 '순수한 기다림' 때문에 더욱 가슴 아팠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편지를 통해 주고받던 소식들, 집 앞에서 가로등을 켜고 끄며 만나기 위해 기다렸던 시간, 월남 파병마저 참고 기다린 주희. 한결같이 사랑 하나만을 바라보며 기다리는 순수한 그들의 모습에서 더욱 마음 아파하고 공감하게 된 것이 아닐까.
기다림에는 시간이라는 보이지 않는 비용이 투자가 된다. 누구나 기다렸던 물건이 깨져서 왔을 때 바로 받아서 깨진 것을 발견했을 때보다 더 큰 분노가 일어난다. 또한 즉시 통보가 아닌 며칠을 기다림 끝에 면접 불합격 소식을 받았을 때는 슬픔이 더 배가 될 것이다. 이렇게 기다림은 사람들에게 기대치라는 이름 없는 먹이를 준다. 독인지 약인지 나중에 알 수밖에 없는 그런 약을. 그 기다림을 영화 내내 보여준 이 영화가 더욱 뇌리에 오래 남고 지금도 회자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물론 실제 20대 초반의 그 시절 손예진, 조승우, 조인성 님이 아니면 그리고 영화 내내 쏟아져 내린 적시적소의 음악들이 아니었으면 해내지 못했을 영화가 아니었을 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