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같은 육아는 즐겁다
아내와 나는 맞벌이 부부였다. 보통은 아침에 아내가 시어머니댁에 아이를 맡기고 출근하고, 일찍 퇴근하는 사람이 아이를 찾아오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러다가 간혹 아침에 두 명 다 일찍 출근하는 날이 오면 항상 고민에 빠졌다.
‘누군가 한 명이 늦게 출근을 할까?’
‘아침 일찍 어머니네 이이를 데려다줄까?’
‘저녁에 한번 어머니네에서 재워볼까?’
돌이 되지 않은 어린 아기였기에 우리는 항상 고민했다. ‘저 어린아이를 어떻게 엄마에게 떼어놓을 수 있니?’라는 생각 때문에 결국 아침 일찍 어머니네 데려다주거나 누군가 한 명이 늦게 출근하는 방법을 택했었다. 그러다 아내가 출장을 가게 되고 내가 일찍 출근해야 하는 날이 겹치자 어쩔 수 없이 전날 어머니네에 아이를 맡기기로 했다.
우리 딸이 양가 통틀어서 첫째 딸이기에 부모님도 기꺼이 손녀를 맡아 주시기로 하셔서 저녁에 부모님 댁으로 아이와 함께 방문했다. 저녁을 먹고 집에 가야 하는 아이가 울면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하니 아이한테 미안하고 부모님께 죄송한 마음뿐이었다.
그래도 어찌어찌 아이를 떨어트리고 부모님 댁을 나오는데 갑자기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간만에 아내와 손잡고 길을 걸으니 데이트하는 듯한 느낌 때문에 너무 행복했다. 잠깐이지만 육아에서의 해방됐다는 것이 이렇게 좋을 줄이야.
그것도 잠시, 1시간 정도 지났는데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애야, 아기가 젖병을 먹지 않네! 어떻게 해야 하니?”
“아, 어머니 잠깐만요 아내와 이야기 하고 바로 전화 드릴게요.”
까탈스러운 우리 딸은 태어날 때부터 젖을 잘 빨지 못했다. 아내가 약간의 함몰 유두였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 잘 먹지 않은 아이였다. 어찌어찌 아내에게 적응 잘하던 우리 딸은 아내가 3개월 만에 복직하면서 일찌감치 젖병을 사용하게 되었다. 쉽게 젖병을 사용한다는 아이도 있지만 우리 딸은 젖병 거부가 심했다. 엄마 젖꼭지도 적응시키는 데 오래 걸린 아이인데 젖병이 당연히 쉽지 않았다.
우리는 내 아기이기에 배고파하는 아기에게 어떻게든 우유를 먹일 수 있었다. 하지만 아기를 보는 데 익숙하지 않은 부모님은 애가 순하지 않다며 젖병 먹이기가 쉽지 않았다. 아이가 젖병으로 분유를 잘 먹지 않는다고 하니 다시 부모님 댁으로 가서 우리가 아이에게 먹여보았다. 엄마가 없다고 화가 난 것인지 젖병을 거부하였다.
우리가 밤새 먹일 수가 없으니 예전에 젖병이나 젖꼭지 관련해서 알아보았던 기억이 났다. 젖병이나 젖꼭지 종류가 상당히 많지만, 그중에서 엄마 가슴과 비슷한 느낌의 젖꼭지가 있다는 것이 기억이 났다. 출근을 해야 하기에 아내와 급 마트로 젖꼭지 찾아 여행을 떠났다.
일반적인 젖꼭지는 마트에 많이 있지만 좀 비싸고 일반적이지 않은 젖꼭지는 찾기가 어려웠다. 차를 끌고 세 군데 마트를 헤매고 나서야 우리가 원했던 젖꼭지를 발견했다. 정말 야밤에 젖꼭지 찾아 여행했다.
과연 우리 딸이 이 젖꼭지로는 젖병을 잘 먹을지 기대 반 우려 반으로 다시 부모님 댁으로 향했다. 아이가 잘 먹었을 것 같은가? 아쉽게도 잘 먹지 않았다. 그래도 애를 굶길 수는 없으니 꾸역꾸역 먹였는데 그래도 기존의 젖꼭지보다는 조금은 수월했다. 다음날 출근을 해야 하기에 안타까운 마음을 뒤로하고 부모님 댁을 떠났다. 물론 우리 딸은 우리 부모님에게 맡기고 말이다.
야밤의 젖꼭지 찾아 떠나는 여행은 나에게 아이 키우기가 힘들구나 하는 생각을 한 번 더 갖게 하는 일이었다. 처음부터 젖병을 이용했던 아이는 처음 몇 번 고생하고 그 이후에는 큰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 딸은 모유 수유하다가 아내가 복귀하면서 혼합수유를 하니 태어나서 3개월 만에 자기 먹을 것에 대한 혼란이 왔었던 듯하다.
젖병 하나 가지고 까탈스럽게 굴던 우리 딸은 이유식 먹을 때도 여간 까탈스럽지 않았다. 아내가 미리 해놓은 이유식을 버리거나, 내가 아침 대신 먹는 것이 다반사였다. 그 당시 우리 딸은 삐쩍 말라서 누가 보면 부모가 아이 굶기고 학대한다고 생갈 했었으리라.
지금은 그 이후 부모의 노력 덕분인지 음식을 엄청 잘 먹는다. 이제 허벅지가 탄탄하다.
마트 이야기가 나오니까 생각나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어느 날 아내, 아이와 함께 마트에 가는데 그날따라 아내가 아이 기저귀를 가지고 오지 않은 것이다. 당시는 2살 정도 되었을 때라 마트 여기저기를 뛰어다니던 때였다. 우리는 일 터지기 전에 어서 물건을 사고 가자고 주차장에서 내려서 무빙워크에 올라탔다. 그때 우리 딸이 표정이 이상하더니 두꺼운 바지 밑으로 물이 줄줄 새기 시작했다.
사람이 참 나쁜 게 그 상황이면 ‘아, 우리 딸이 쉬야를 했구나! 어서 집에 가야겠다’ 하고 생각하고 행동하면 되는데 아내한테 한마디 했다.
“어휴, 왜 기저귀는 안 가지고 와서 그래?”
뻔하지 않은가? 집에 가는 내내 그리고 집에 가서 한참을 싸웠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당시는 내가 참 모자랐다. 집에 가서 미안하다 사과하는 게 아니고 기저귀 하나만을 물고 늘어졌다. 준비 안 한 아내가 잘못한 게 아니고 그냥 아이가 기저귀 없이 쉬를 한 것인데 나는 마트에서 장을 못 보고 집에 온 것이 짜증이 났었던 것이다.
아내는 이런 생각을 했었을 것이다.
‘왜 나만 준비해야 해? 자기가 준비하면 안 돼?“
그렇다. 아이는 함께 키우는 것인데 서로서로 챙기면 얼마나 좋을까? 지금도 아이들 챙기는 것이 미흡하기는 하지만 그때는 많이 몰랐다. 지금도 이런 에피소드를 생각하면 아내에게 미안하다.
생각을 바꾸면 기분이 좋아진다. 우리 딸이 젖병을 거부해서 마트를 어쩔 수 없이 마트를 갔지만, 아내와 함께 아이 덕분에 마트 데이트를 했다고 생각하니 재미난 추억이 된다. 그 당시는 아이가 너무 어려서 아내와 둘이 어디를 함께 갈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내한테 짜증 내던걸 짜증 내지 않고 내가 한 번 더 기저귀를 챙길 걸 하는 생각을 했다면 그 당시 우리 집이 좀 더 행복했었을 것 같다.
한 번 더 달리 생각해보면 우리 딸이 엄마 아빠 좀 쉬면서 마트 여행이나 하라고 젖병을 거부했던 게 아닌가 싶다. 물론 쇼핑 싫어하는 우리 아내는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 아내가 마트 쇼핑 싫어하니 우리 딸이 쇼핑 시작하기도 전에 쉬야를 한 건가? 우리 딸은 효녀인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