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여행이다. 이사도 여행이다.
요새 기사에서 저출산이다, 아파트 매매가 안된다 하는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는데 그 와중에서도 “초품아”라는 단어가 부상하고 있다. 초품아란 초등학교를 품은 아파트란 뜻이다. 그리고 그중에서 당연히 기존의 강남 8학군처럼 학군이 좋은 곳은 더욱 인기가 많다. 아이를 1~2명만 낳으니 최대한 좋은 교육과 안전한 교육을 시키겠다는 부모들의 생각이 아닌가 싶다.
우리는 초등학교를 품은 아파트는 아니지만, 초등학교 옆에 있는 집에 살고 있다. 초등학교 때문에 이 집에 사는 것이 아니고 아이 덕분에 우연히 지금 집에서 살고 있다.
우리 부부의 첫 신혼집은 서울의 왕십리 쪽이었다. 이유는 나의 첫 아파트 투자가 왕십리였기 때문이다. 신혼 때 빚이 1억 5천만 원이 있는 아파트를 보유하고 있었는데 결혼 당시 아내가 신혼부부의 로망을 실현하고 싶다고 하여 입주하게 되었다. 그 당시 이자가 62만 원 정도였는데 62만 원짜리 월세 아파트에 살게 된 셈이었다.
인테리어를 하는 친구를 통해서 저렴하게 인테리어를 하고 내 인생의 최초의 내 집이기에 소중히 다루면서 생활을 했다. 그 당시 아파트의 입지가 너무 좋았다. 우리 아파트가 약 3천 세대, 길 건너 아파트가 약 3천 세대, 롯데마트가 아파트 단지에 붙어있고 길 하나만 건너면 바로 초등학교였다. 도보 10분 거리에 도서관이 있고 베란다 창문으로는 사시사철 산을 볼 수가 있었다. 봄에는 개나리와 진달래가 만발하고, 가을에는 낙엽이 운치가 있었고, 겨울의 눈 덮인 산을 보는 것은 정말 예술이었다. 다만, 여름에 베란다 방충망에 붙어서 우는 매미 소리는 밤잠을 설치게 했다. 그래도 우리 가족의 첫 보금자리이기에 정말 행복한 나날을 지냈었다.
물론 그 당시는 아이가 없었기 때문에 초등학교나 어린이집에 큰 중점을 두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아이가 태어나면 초등학교 때까지 큰 문제가 없겠구나 하는 생각은 하고 있었다.
신혼집에서 행복하게 살면서 우리 부부는 아이에 관해서 이야기했고 신혼생활을 1년 정도 지내고 나서 첫째 아이의 임신을 하게 되었다. 그 당시 우리는 아이에 대해서 아는 게 전혀 없었다. 양가 통틀어서 우리 아이가 첫째이기에 아이를 키우는 요령이나 아이를 키우면서 생기는 문제에 대해 심도 있는 대화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우리 부부는 결혼부터 양가에 도움을 받지 않고 시작했기 때문에 아이도 맞벌이하면서 우리가 키우자고 굳게 다짐을 했다. 그래서 제일 먼저 한 것은 어린이집 신청이었다. 지금은 홈페이지에서 최대 세 군데까지만 어린이집 입소 대기 신청이 가능하지만, 우리 아이 때는 무제한이었다. 그래서 집 근처에 있는 어린이집에 무작정 입소 대기 신청부터 했다.
아내의 배가 불러오고 태교도 조금씩 하면서 아이 키우는 것에 대한 정보를 수집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알게 된 것이 있는데, 맞벌이하면서는 아이를 키울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아내도 아이가 처음이기에 육아휴직을 하지 않고 출산 휴가만 쓰고 회사로 복귀를 하려고 마음먹었었다. 그런데 알아보니 갓난쟁이를 맡아 주는 어린이집은 거의 없었다. 그리고 아이가 어리면 10시에 가서 1~2시에는 데리고 나와야 한다고 했다. 우리에게는 청천벽력이었다. 실제로 아이를 키워본 적이 없으니 정보를 이해하는데도 시간이 오래 걸렸다.
임신 5개월 정도 되었을 때 어떻게 아이를 키울 것인가에 대해서 아내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결론은 세 가지 중 하나였다. 아내가 출산 휴가 + 육아휴직을 한다. 입주 도우미를 부른다. 양가 쪽 어느 곳으로든 이사를 해서 양가 부모님에게 도움을 청한다.
우리가 들은 정보로는 육아휴직은 아이 초등학교 때 쓰는 것이 가장 좋다고 했다. 실제로 지금 우리 딸이 초등학생인데 1학년 초반에 엄마의 손길이 정말 필요하다. 그래서 요새 엄마들이 출산하고 6개월, 아이 초등학교 갈 때 6개월 이렇게 육아휴직을 사용한다고 한다.
우리도 아이 학교 갈 때가 걱정되어서 아내가 육아휴직을 하지 않기로 했다. 입주 도우미를 알아보았는데 생각보다 비용이 만만치가 않았다. 그리고 우리 집에 남이 들어와 산다는 것도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정말 한 달 내내 아내와 상의를 한 것 같다. 한 달 정도 아내와 이야기 하고 양가집 어느 곳으로든 근처로 이사를 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물론 빛은 많았지만, 우리가 처음 마련한 집을 떠나기가 정말 싫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아이를 위해서 우리의 터전을 옮기기로 했다.
양가 부모님과 몇 번 상의했으나 처가 쪽은 아이를 돌봐주실 상황이 아니었다. 그리고 집값도 시댁 쪽보다 비싸고 상태가 좋지 않았다. 그래서 최종적으로 시댁 근처로 이사하면서 도움을 받기로 결정했다. 시댁 근처 몇 개 집이 나왔는데 하나는 시댁 부모님 바로 위에 층 집, 그리고 투룸 짜리 저렴한 오피스텔, 쓰리룸 오피스텔 이렇게였다.
우리 부모님 근처에 사는 것은 아내가 불편할 것 같아 우선 패스했다. 그리고 투룸은 잠깐 살기에는 좋으나 오래 살기에는 불편할 듯하여서 패스했다. 그래서 최종적으로 부모님 댁에서 차로 5분 정도 거리의 쓰리룸 오피스텔로 결정을 했다. 우리가 의도한 건 아니지만 이 오피스텔 바로 옆이 초등학교여서 초품아를 흉내 낸 초품오 정도는 된다. 지금 우리 딸이 학교에 가는 시간은 5분 정도 소요가 된다.
우리는 우리 딸이 태어나서 약 3개월 정도 지나서 지금 사는 집으로 이사를 왔다. 그 당시 우리 아내는 몸조리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 혼자 이사를 했다. 이사 하면서 중간에 혼자 자장면을 먹는데 기쁨보다는 외로움이 올라왔다. 그래도 나는 칭찬을 받고 싶어서 더 열심히 이삿짐을 정리했다. 어차피 이삿짐 옮기는 건 이삿짐센터에서 해주니까 말이다.
얼마 전 인터넷에서 글을 본 적이 있다. 초등학교 입학 전에 오래 살 주거지를 선택해야 한다는 글이었다. 그 글에서 한가지 예시가 초등학교 졸업하면서 이사를 하였더니 아이가 중학교에서 힘들어해 다시 초등학교 다녔던 근처로 이사를 준비하는 사람의 이야기가 있었다.
요새는 그 말을 실감하게 된다. 지금 서울에 살지만 조금 공기가 좋은 곳으로 이사를 하고 싶어서 우리 딸에게 물어봤더니 일언지하에 거절을 당했다. 이유는 친구랑 헤어지기 싫어서라고 했다. 그게 6살 때였다.
지금 우리 아이가 8살이 되어서 초등학교 1학년인데 어린이집 친구들과 같은 학교에 다니니 학교에 적응을 너무 잘하고 있다. 아직까지 학교의 모든 것이 재미있다고 한다.
아이를 임신하겠다고 마음먹으면 터전을 바꿀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그리고 그 터전에서 최대한 오래 살 것이라는 생각도 해야 한다. 부모가 힘들더라도 아이가 편하게 다닐 수 있도록 도움을 주어야 한다.
터전을 옮기는 것을 아이 때문에 희생한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그저 우리 가족이 행복해지기 위해서 선택한 것이다. 부모는 부모가 힘들어한 것들에 대한 보답을 우리 아이들의 웃음으로 다 받았기에 터전을 옮기는 것도 우리 아이들을 위해 희생이 아니라 이미 받은 웃음에 보답을 하는 것이다.
인생에서 터전을 옮기는 것은 정말 큰 여행이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이 행복해한다면 한 번쯤은 그 큰 여행을 할 수도 있다. 우리 아이들의 웃음을 위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