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가 알려주지 않는 퇴사의 비밀 - 04
“요새 회사 다닐 만하냐?”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소주 한잔하면서 내가 물어봤다.
“회사 다닐 만해서 다니냐? 돈 주니까 다니지. 크크”
“그렇지 돈 주니까 다니지. 일은 할 만하냐?”
“일? 모 있냐? 그냥 시키는 대로 하는 거지. 시키는 것만 해도 정말 정신없다.”
S사에 다니는 친구는 매일이 야근이라고 했다. 야근도 서울에서 야근하고 싶다고 했다. 야근하고 나오는데 강남역 한복판과 구미 한복판은 느낌이 다르다면서 말이다. 하지만 나도 고민이 많았다.
“나는 지금 내가 뭐 하는지 모르겠어?”
“뭐 하긴 돈 벌려 일하지. 크크”
“야. 나 진지하다. 회사에서 똑같은 일 거의 3년을 했는데 왜 이렇게 두려울까?”
“그래? 나도 비슷하긴 하다. 이 길이 내 길인지 고민할 시간이 없긴 하지만”
나는 군대를 만 3년 다녀왔다. 그때 경험에 3년이 지니면서 군대가 정말 익숙해졌었다. 그랬기에 회사도 3년 정도 되면 익숙해지고 업무도 능수능란해질 것이라고 믿었었다.
“3년을 이렇게 했는데 익숙해지지도 않고 계속 두렵고 내가 직업을 잘못 선택한 건가?”
“야 헛소리 말고 한잔해라. 회사 생활이 다 그렇지 뭐”
“그래 마시자”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3년 차가 되었을 때 정말 이해 안 가는 것이 있었다. 같은 일을 3년이나 했으면 익숙해지거나 안정감을 느껴야 하는데 계속 두려웠다. 지금 생각해보면 영업은 다른 사무직과 다른 것이 있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었다. 나는 후배들에게 영업에는 발굴, 계약, 관리 3단계가 있다고 이야기하곤 한다. 발굴은 말 그대로 고객을 발굴하거나, 고객에게 더 팔 물건이 있는지 발굴하는 것이다. 발굴한 영업 건은 고객에게 영업하고 잘 협상해서 계약을 이루어내야 하고, 그 이후에 고객의 사후 관리가 필요하다.
그런데 여기서 나에게 어려운 문제가 있다. 외국회사는 발굴을 전문으로 하는 영업이 있는데 이를 헌터(Hunter)라고 부른다. 그리고 관리를 전문적으로 하는 영업을 파머(farmer)라고 부른다. 한국회사는 모든 영업에게 헌터와 파머를 동시에 하게 한다. 그런데 나는 파머의 일을 하면 더 잘하는 스타일이었다. 그러니 헌터의 일을 계속하는 것이 두려울 수밖에 없었다. 내가 영업을 통해서 돈을 많이 벌겠다는 생각으로 영업직에 들어왔는데 생각과 실상은 달랐던 것이다.
인터넷 기사들을 보면 1~3년 차에 직장인 이직이 많다고 한다. 사람인에서 이직경험 보유 직장인 1,09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는데 1년 차에 이직한 비율이 20.8%, 2년 차에 이직한 비율은 20.4%, 3년 차에 이직한 비율은 16.1%였다. 이직하는 사람의 절반 이상이 3년 차 이내에 이직한다는 것이다. 이직 사유에 대해서는 연봉이나 처우, 경력향상, 기업문화 등을 이야기하는데 내 경험에는 그냥 회사에 적응 못 하는 것이다. 그게 본인의 문제이든 회사의 문제이든 중요하지 않다. 적응 못 한 것이 문제인 것이다.
나도 3년이나 되었는데 회사 일이 두렵다라는 것은 회사나 업무에 적응을 못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회사는 사람을 키우는 데 목적을 두는 것보다 회사의 이익을 높이는 데 목적을 둔다. 그래서 직원의 능력이 100%이면 120%의 일을 준다. 나 같은 경우에도 일하다가 헉헉거린 적이 많았다. 회사가 120%의 일을 준다고 120%를 다 완벽하게 하지는 못하지만 그렇게 일을 줘도 버티는 사람을 좋아한다. 80%밖에 일을 못 했었어도 버티면 회사는 좋아한다. 회사는 가학적 취미가 있는 것 같다. 그렇게 버티면 ‘넌 참 맷집이 좋다’ 하면서 여기저기서 칭찬을 한다. 그리고 그다음에 또 120% 이상의 일을 준다.
나도 그래서 3년 차에 회사에 적응하지 못한 듯하다. 항상 회사가 요구하는 높은 기대치에 부흥하기 위해서 열심히 일했는데 그다음 해에는 더 높은 기대치를 나에게 요구했다. 내가 사장이라도 똑같을 것 같다. 일 잘하는 친구한테 더 일 잘하라고 채찍질을 할 것 같다.
3년 차 징크스일 때는 주변에서 많이 도와줘야 하는데 다들 본인 먹고살기 힘든데 남 생각할 틈이 있겠나? 실제로 팀원들을 관찰하고 힘든 친구들을 보살펴주는 팀장을 거의 본 적이 없다. 거의란 이야기는 간혹 있기는 하다는 의미다. 신입 사원 때부터 3년 정도 일할 때까지 사람이 적응할 수 있도록 차곡차곡 경험을 쌓으면 좋겠지만 회사는 그렇게 사람을 관리 하지 않기 때문에 3년 차 징크스가 생기는 것 같다.
나도 매년 내 능력의 120%를 하기 위해서 허덕거리면서 회사에 다녔다. 어느 날은 정말 숨이 쉬어지지 않을 정도로 힘이 들었다. 벤처 기업이어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다들 힘들기에 힘들다고 이야기할 사람들도 많지 않았다. 그래서 이직이나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래서 영어 공부를 시작했다. 인맥으로 회사에 입사했는데 3년 만에 세상이 바뀌었다. 내가 입사할 때는 공과 대학생이면 토익 400점이면 취업이 되었는데 3년이 지나자 토익이 600점은 되어야 취업이 되었다. 지금은 더 높아야겠지만 그때 내 마지막 토익 점수가 390점대였으니 나로서는 영어 점수를 올리는 것이 힘에 겨웠다.
나는 3년 차 징크스를 이겨내기보다는 막연한 이직을 하기 위해서 영어 공부를 시작했다. 올바른 방법인지는 모르지만, 무언가를 하기로 했다는 과거의 나 자신을 칭찬한다.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무엇이든 하는 것이 더 나으니까. 그런데 좀 더 현명하게 3년 차 징크스를 이겨내는 방법이 있었을까? 버티면서 싫거나 힘든 티 내지 않고 회사에 다니는 방법 말고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