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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이불 제발 그만 보내주면 안 될까

엄마가 변하게 된 그날의 사건

by 진소은

내 친구들이 제일 재미있어하는 이야기가 우리 엄마 이야기다. 내가 엄마 때문에 화가 난 날이면 내 친한 친구들은 이번에는 또 무슨 일이냐며 눈을 반짝였다. 우리 엄마를 아는 내 친구들은 우리 엄마 이야기가 웃음지뢰라고 했다.. ㅋㅋㅋㅋㅋㅋㅋ


“소은아 너희 어머니 너무 귀엽고 재미있으셔”

“소은아 엄마 진짜 소녀 같으시다 순수하시다”

“그럼 너희가 같이 살아 봐 그런 말 절대 안 나와..”

그런 내 반응이 또 재미있는지 친구들은 깔깔 넘어간다.

내 남자친구도 그랬다. 우리 넷과 성향이 좀 다르고 감수성 풍부한 엄마를 너무 이성적인 시선으로만 대하는 부분도 있지 않겠냐며 엄마가 집에서 얼마나 공감받지 못하고 외로우시겠냐며 처음에는 엄마 편을 들었다.


“그으래? 너 나랑 결혼하면 우리 엄마랑 평생 볼 텐데 그때도 그렇게 말하는지 두고 보자ㅋㅋㅋㅋㅋ”


어느새 남자친구랑 연애한 지 10년, 우리 엄마를 알고 지낸 지도 10년. 올해 우리 엄마 사위가 될 예정인 내 남자친구는 반은 엄마 편, 반은 내 편이 됐다. 마냥 소녀 같은 우리 엄마의 행보가 걱정되지만 그래도 엄마가 (미워할 수 없는) 귀여우신 면이 있다며... 앞으로도 반은 계속 엄마 편을 들지 않을까 싶단다.


원래는 엄마가 물건을 보내거나 과일을 보내거나 꼬치꼬치 일상을 묻거나 밥 먹었는지 끼니마다 전화하는 등 자녀들에 대한 관심이 아주 아주 과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엄마는 그걸 부모라면 당연히 갖는 사랑이라고 했지만 나는 둥지 떠난 자식을 독립시키지 못한 부모의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의 그 관심들은 나를 숨 막히게 했다.


엄마는 내가 지금 뭐하는지, 어디에 있는지, 밥은 뭐 먹었는지, 밥을 제때 먹었는지, 돈은 있는지, 필요한 건 없는지, 아픈 곳은 없는지 늘 물었다. 그런 엄마의 전화는 나한테 있어서 굉장한 스트레스였다. ‘사랑이 과하면 독이 되는구나.’라는 걸 엄마를 보며 배웠다.


20살, 내가 독립을 시작할 때부터 엄마는 하루에 2-3번은 기본으로 전화했다. 나는 엄마 전화를 받으면 꼭 스트레스받은 채로 통화가 끝났기 때문에 엄마한테 전화를 그만하면 좋겠다고 하루에 1번만 하거나 내가 할 때만 통화하자고 할 정도였지만 엄마는 오히려 섭섭해했다.


“힝... 우리 딸 목소리 듣고 싶은데, 엄마가 딸 뭐 하는지 뭐 먹었는지 궁금해하면 안 돼?”

“엄마 뭐든 과하면 독이 되는 거야. 엄마는 사랑해서 전화하는 거지만 이렇게 독립한 성인 딸의 일상에 과하게 관심 가지면 나한테는 그게 감시 같고 숨을 조여 오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제발 꼬치꼬치 캐묻듯이 내 일상에 관심 갖지 마 차라리 나를 무시해 줘....”


나라고 하나뿐인 소중한 엄마한테 강하게 말하고 싶었겠는가 절대 아니다. 나는 원래 다정하게 표현하는 걸 좋아하는 성격인데 엄마는 꼭.. 상대방이 좋게 말하면 못 알아듣고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꼭 세게 말하거나 화를 내야 알아들었다. 어쩌면 알아듣는 게 아니라 잠시 알아듣는 척하는 걸 수도 있다. 알아들었다면 다음에 같은 행동을 반복하지 않는 게 맞는 건데 전혀 효과가 없었으니까... 내가 엄마한테 제발 제발을 말하며 전화를 자제해 달라고 해도 자신의 일상보다 자녀의 삶에 더 관심이 많은 엄마에게 그 마음이 받아들여질 리가 난무했다. 엄마도 나름 노력하겠다고 했지만 내가 느낄 때 크게 달라지는 건 없었다.


20살 독립 이후로 숨을 옥죄는 것 같은 엄마의 전화와 택배공세가 계속 이어진 지 6년.

드디어 우리 엄마가 나를 놔주는 일이 생겼다.


나는 밤낮없이 재택근무를 많이 하는 직업이라 근무시간이랍시고 엄마 전화를 안 받고 하던 일을 계속하는 일상이 이어지고 있었다. 나도 엄마를 사랑하지만 내 평화로운 일상에서 엄마랑 통화하고 나면 감정이 확 올라와서 하던 일에 집중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업무효율과 내 심신의 안정을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날도 나는 재택근무 중이었다.

그때 갑자기 택배가 도착했다는 문자가 왔다.

‘뭐 시킨 게 없는데 갑자기 무슨 택배지?’

설마 하는 마음으로 현관문을 열었을 때 부담스러울 만큼 커다란 부피의 박스가 나를 반기고 있었다.

운송장을 보니 ‘사랑하는 엄마’

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깊은 분노가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왔다. 화를 눌러 참으며 박스를 뜯었다. 그 안에는 이불이 들어있었다. 그렇게 큰 부피였으니 겨울이불이었겠지 그리고 아마 이불 옆에 과일도 있었겠지. 몇 년이 지나서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그 이불을 보고 도저히 제어할 수 없는 분노가 올라왔던 건 아직도 생생하다.


내가 분명히 이불 보내지 말라고 했는데.....


내가 대학 가서 독립하면서부터 엄마는 계절이 바뀔 때마다 이불을 보내고 싶어 했다. 처음에는 멋모르고 새 이불이 오니까 좋아했는데... 불 택배가 계절마다 이어지니 이건 좀 아니지 않나 싶었다.

멀쩡한 이불이 있는데 또 보내는 건 짐 아닌가?

점점 엄마의 이불은 나한테 짐이자 스트레스가 됐다.


여름이면 더우니까 겨울이면 추우니까 환절기면 환절기니까

“이불 보내줄게”

계절의 변화를 알려주는 엄마의 그 멘트는 나를 정말 질리고 지치게 만들었다.


“엄마... 나 이불 안 줘도 돼 저번에도 보내줬잖아”

“그거는 낡았잖아 엄마가 더 좋은 거 보내줄게”

“안 낡았어 나 자취방에 자리도 없어 이불 보내지 마”

어떨 때는 보내지 말라고 하면 안 보내기도 하고 보내지 말라고 해도 꾸역꾸역 보내기도 했다. 나는 원룸 공간이 넓지 않다 보니 계절별 까는 이불과 덮는 이불들, 여름용 겨울용 베개커버까지 하면 수납할 자리가 없었다. 이사를 자주 다녔던 통에 이사할 때마다 받은 이불을 본가로 보내기도 했고, 제발 제발 이불 보내지 말라는 내 말에 이불을 안 보내는 계절도 있었지만 이불이 우리 집에 배송되고 말고를 떠나 이젠 이불 보내준다는 그 말 자체가 정말 PTSD가 올 정도였다.


그날도 분명 내가 이불 보내지 말라고 3일은 말했을 거다. 세 번이 아니라 3일. 전화할 때마다 용건 끝에 그놈의 이불을 덧붙였던 엄마 때문에.

“그래 그리고 겨울인데 두꺼운 이불 있어야지 엄마가 이불 보내줄게”

“아니 엄마... 필요 없다고 했잖아 집 따뜻하다고 이불 그만 좀 보내 제발...”

정색하고 완강히 거부했던 게 마지막 통화였건만...

그동안 내가 무수히 거절하고 짜증 내고 정색했던 모든 감정들이 철저히 무시당한 채 이불이 멀고 먼 서울까지 도착한 거다.


그때 살던 원룸은 옷장이 정말 작았다. 수납침대를 썼음에도 불구하고 수납침대와 옷장에 내 옷과 이불이 안 들어가서 옷장은 옷을 토해내고 있었고, 그 좁은 원룸에서 나날이 스트레스받던 중에 엄마의 이불이 내 분노를 폭발시켰던 거다.

이성을 잃은 것처럼 바로 엄마한테 전화를 걸었다.

다른 대화 내용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처음에는 내가 차분하게 말했다는 것과 엄마의 대답을 듣고 화산이 폭발하듯이 분노를 터트렸다는 건 선명하게 기억난다.


“엄마......... 내가 이불 보내지 말랬잖아.........”

분노를 꾹꾹 눌러 담은 내 말에 엄마는 아니다 그래도 겨울인데 두툼한 이불은 필요하다, 저거 극세사 이불이라 훨씬 따뜻하다 겨울엔 다들 저런 이불 덮는다 등등... 이불 보낸 사람의 입장에서만 말했다. 그때 몇 년간 쌓이고 참아왔던 내 화가 폭발했던 거다.


“이불 좀 보내지 마 제발!!!!!!!! 제발 좀!!!!!!!”

살면서 그렇게 악을 질러본 건 처음이었다. 이성을 잃고 엄마한테 소리쳤고 아마 정말 죄송하게도 절규하는 내 목소리가 우리 층 건물에 울려 퍼졌을 것 같다. 과장 조금 더 보태서 1층까지 들렸을지도 모른다. 남한테 민폐 끼치는 거 극도로 싫어하는 내가 다른 사람에 대한 매너와 배려를 생각할 겨를도 없이 온몸으로 분노를 내뿜었다. 그리고 나는 미친 것처럼 내 머리를 쾅쾅쾅 때렸다. 정말 미쳐버릴 것 같았다. 이불 이불 이불 제발 이불 제발......


그렇게 고통 속에 절규하는 내 목소리를 듣고서야 엄마는 미안하다며 다시는 이불을 보내지 않겠다며 전화를 끊었고 그 뒤로 과일이든 이불이든 보낸 적이 없다. 예전에는 말끝마다 과일 보내줄게 이불 보내줄게 했다면 지금은 5번 통화하면 “과일은 있나? 먹고 싶으면 말해 보내줄게”라고 하는 수준까지 됐고, 전화는 이제 내가 걸지 않으면 안 건다. 정말 꼭 말해야 하는 용건이 있을 때만 전화하지, 예전처럼 심심해서, 보고 싶어서, 생각나서 전화하지는 않는다.


그날 엄마랑 전화를 끊고 나서 시간이 멈춰버린 것처럼 머리를 감싸 쥐고 가만히 있었다. 이렇게 감정이 폭발한 건 처음이라 진정할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서서히 내가 때린 머리가 아파왔다. 머리가 너무 아팠다. 정신이 들면서 ‘내 머리를 내가 왜 때렸지?’라고 생각했지만 정말 그 순간에는 너무 화가 나서 ‘사고’라는 걸 할 겨를이 없었다.

내가 생각해도 진짜 웃프다. 엄마는 나를 너무 사랑하고 추울까 봐 더울까 봐 조금이라도 포근하고 편하게 잤으면 하는 마음에 이불을 보낸 건데 그 사랑 때문에 이렇게 화가 날 수가 있구나.


사랑도 과하면 독이 된다.

엄마 입에서 ‘이불’과 ‘과일’이라는 말을 들으면 몸에서부터 바로 거부반응을 보인다. 지긋지긋하고 진절머리가 난다. 그래도 정말 다행인 건... 엄마가 그 후로 이불을 더 이상 보내지 않는다는 거. 전화도 거의 안 한다는 거... 과일은 안 보내다가 요즘 갑자기 또 왜 그러는지... 한숨이 나온다.


엄마가 멋대로 과일을 보냈던 그날도 글에 다 적지는 않았지만, 좋게 말씀드렸더니 또 너무 해맑은 대답을 하셔서...^^ 결국 그날 내 잔소리는 카톡창을 온통 노랗게 채울 만큼 길게 이어졌고, 앞으로 더 노력하고 변하겠다는 말로 누가 엄마고 누가 딸인지 모를 대화가 그렇게 끝났다.


빚 때문에 돈을 아껴야 하는데 자꾸 마음 가는 대로 자녀들한테 이것저것 해주는 것도 문제고, 그 해주는 것이 정작 자녀들한테는 독이 되는 사랑이라는 것도 문제다. 나도 엄마를 정말 사랑하지만... 우리의 건강한 관계를 위해 엄마가 제발 변화되어 주길 간절히 바랄 뿐이다...


엄마!! 제발!! 부탁할게!!! 나도 부담스럽고 독이 되는 사랑 말고 든든하게 기댈 수 있는 엄마의 사랑을 느끼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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