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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생의 마루 Nov 04. 2022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 중개

두 집을 이사보내며 들었던 생각


임장 중이던 어느 해 겨울날, 착신해 놓은 전화가 울렸습니다. 단독을 매도하겠다는 전화였습니다. 주택가 도로 안쪽에 있는 사도(개인 땅에 사사로이 낸 도로 출처 민중국어사전 )집 이었는데 마침 그 집, 앞집도 매물로 나와 있던 터라 둘을 허물고, 신축하면 소규모 빌라부지로 가능할 것 같았습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사무실에 돌아오자마자 자료를 정리해 신축을 원하는 손님에게 브리핑하고, 여러 부동산과도 이 물건을 공유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물건을 공유했던 한 중개업소에서 계약하겠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저는 계약 준비로 마음이 들뜨기 전에 확인해야 할 일이 있었습니다. 보통 신축을 위한 토지는 공사 기간을 단축하기 위해서 현장에서는 현 소유자 명의로 신축 공사 신청하기도 하는데, 이를 위해서 ‘건축주 명의자변경 특약사항’을 기재하고 계약합니다.


그러나 이런 말조차 처음 듣는 분들이 대부분이고, 주택거래를 평생 몇 번 안 해본 매도자로서는 등기권리를 넘기기 전 자신의 명의로 건축 신청하는 것에 대해 불안한 마음이 들어 꺼리는 것이 당연합니다. 이때 공인중개사의 책임의식과 매수 손님에 대한 확신이 없다면 더 이상의 계약 진행이 어려울 수 있습니다.


매도인의 동의를 구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지만, 매수자가 잔금이행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도 확인해야 합니다.  매수측 손님은 상대부동산에서 책임지고 있으니, 일단 저는 매도인 한 분씩 설득해 보기로 했습니다.


앞집 매도자분은 깐깐한 어르신이었는데 신축 관련 서적을 보여드리며 ‘건축주 명의변경’ 부분의 설명과 건축의 순서상 이곳에 해당하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다행히 책을 직접 보여드리며 설명하니 이해하시고, 빠른 수긍을 하셔서 많은 오해가 해소되었습니다.


문제는 사도 집이었습니다. 사도 집 매도인은 몸도 불편하고 연세가 많으셔서 이해가 쉽지 않아 보였습니다. 계약 대부분을 따님과 상의했고 제 설명을 이해한 듯했지만, 아무래도 중개업자의 이미지 때문인지 믿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것 까지 해가면서 집을 팔아야 하느냐?' 날 선 말투에서 느낄 수 있었습니다. 따님을 설득해야, 어머님도 설득되는데 따님의 마음을 바꾸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그때 앞집 도로 쪽 어르신이 사도 집 따님에게 잘 설명 해셔서 계약을 진행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며칠 본 중개업자인 저보다는 오랫동안 앞 뒷집에 살았던 이웃사촌 말에 더 믿음이 갔겠죠.

계약 당일 저는 불편하신 사도 집 모녀 매도인에게 최대한 신경 쓰이지 않게 하려고 했지만, 오랫동안 어머니 병간호에 예민해진 따님은 작은 문제에도 화를 내곤 했습니다.


그때 '사실 저도 비슷한 일을 겪은 적 있다.’라며 저의 경험담을 들려 드렸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고충을 이해한다며 위로해 주었습니다. 그날부터 따님은 점차 저에게 호의적으로 변했습니다. 그러자 일이 좀 더 수월하게 풀리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중개도 결국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입니다. 

당시 가족 누구에게도 도움을 받을 수 없는 매도자의 상황에서 제가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잠시나마 보람을 느꼈습니다.      


비대면이 일상인 인간미가 점차 사라지는 세상이지만, 그래도 사람이라 가능한 것은 따로 있는 것 같습니다. 사람이 가진 공감 능력 말입니다. 이 능력은 공인중개사에게 필요한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계약은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일입니다. 가끔 사람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계약하지 않는 분도 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중개업은 타 업종보다 사람 사이에서 말보다 더 차원 높게 교감하는 일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잔금을 치르고 이사하던 날, 두 매도인과 저는 처음과는 달리 기분 좋게 인사하고 헤어졌습니다.

그렇게 두 분을 보내고 철거 전 민낯의 허름한 집에 남겨진 두꺼운 이불을 바라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습니다. ‘난방도 잘 안 되는 낡은 집에서 40년 동안 얼마나 추웠을까?’

다행히 두 매도자 모두 낡고 추운 단독주택을 벗어나 따뜻한 새 아파트로 가셨습니다.

이제 모두 따스한 곳에서 편히 사시길 마음으로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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