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함으로 얻는 이득

부동산 갱신에 관하여

by 인생의 마루

스무 살 무렵 저는 신도림역 근처에 있는 입시학원에 다녔습니다.

학원은 종이로 된 학원증을 학원 관계자에게 보여 주어야 출입할 수 있었습니다.

그 시절은 자신을 입증할 만한 것은 실물로 지니고 다녀야 했습니다.

주민등록증, 학생증, 운전면허증, 학원증까지.


그렇게 중요한 학원증을 저의 실수로 없애버린 불상사가 발생했습니다.

학원증을 바지 주머니에 넣어둔 채 세탁기에 넣었던 것입니다.

하얗게 휴지 뭉치가 되어버린 학원증을 보면서 울고 싶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뭐, 큰일까진 아니었지만,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했던 그때는 하늘이 노래졌답니다.

다음 날 학원증을 세탁기에 돌렸다는 말을 하기엔 창피했고, 엉뚱한 자존심을 지키고자, 학원증 발급 관계자분께 잃어버렸다고 당당한 거짓말을 했답니다.


그런데, 그 거짓 당당함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처음엔 학원 관계자분이 재발급을 해 주실 것처럼 했다가, 저의 당돌한 말투에 기분이 상했는지, 재발급 해 주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마음속엔 후회가 가득했지만, 되돌릴 수도 없었고, 아무 대꾸도 못 한 채 돌아왔습니다. 문제 해결 방식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며칠 후 알게 되었습니다.


아버지께서 학원에 오셔서 웃으시면서 사정 얘기를 하시자, 그분은 바로 그랬냐면서 새 학원증을 다시 만들어 주셨습니다. 저는 ‘그냥 솔직히 얘기할걸.’했지만, 시기는 놓쳤고, 창피함에 온몸이 불타는 것 같았습니다.

스스로 성인이라 생각했던 당시엔 그런 작은 일조차 감당 못 한 자신이 실망스러웠지만, 한편으론 아버지 덕분에 해결되어서 다행이었고, 감사했습니다.


그 일을 겪은 후 저에겐 솔직함이 가장 빠르고 긍정적인 해결책이라는 신념이 생겼답니다.


그러한 면에서 부동산에 방문하는 손님들을 보면 조금은 아쉬운 면이 있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사항을 솔직하게 말하지 않는 것입니다.

중개사는 손님이 원하는 것을 모르니 원하는 집을 구하는 것이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부동산 중개업을 1년 이상 충실히 했다면, 손님이 알려준 약간의 정보만으로도 어떤 집을 선호하는지 알 수 있을 정도의 내공이 쌓이게 됩니다.

집과 사람을 매칭(matching)해본 경험치가 체득되어 원하는 조건을 얘기해 준다면, 더욱 빠르게 적당한 곳을 찾아낼 수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역에서 도보로 어디까지 거리가 적당하다고 생각하는지, 집의 방향은 어느 방향을 원하는지, 반려동물은 있는지, 주차 조건은 일렬을 원하는지 등등

물론 원하는 조건을 100% 만족하는 곳은 없겠지만, 금액만 맞춰서 엉뚱한 집을 보게 되는 것보다는 결과가 좋을 것입니다.


얼마 전 손님의 일입니다.

그 손님은 처음엔 자신이 사는 집은 임대인이 여력이 있어, 보증금 반환이 가능할 것이라 했습니다.

일단 임장에 나섰고, 그 중 손님의 맘에 드는 집이 있었습니다.

여러 가지를 고려해 봤을 때 자신의 상황과 맞아 손님은 빨리 계약하고 싶어 했지만, 저는 계약을 잠시 보류하고 혹시 모르니 임대인의 반환 보증금에 대한 확답을 받은 후 계약하자고 했습니다.


그러나 손님의 예상과는 달리 3주 차가 되어도 임대인은 보증금 상환을 해 줄 기미가 안 보였습니다. 오히려 전화를 피하면서 보증금 반환을 차일피일 미루기만 했고, 결국 손님은 원했던 집을 다른 손님에게 양보해야 했습니다.

만일 제가 손님의 말만 믿고 계약을 진행했다면, 손님은 계약금을 몰수당했을 겁니다.


다시 생각해 보니 손님은 자신의 상황을 일부라도 얘기해 주었기에 계약금을 지킬 수 있었네요.


자신이 사는 집이 계약되었는지, 만기는 지났는지, 현재 사는 곳이 계약이 안 되었더라도 임대인에게 보증금을 받기로 답변을 받았는지, 원하는 조건은 무엇인지 등을 알려준다면 중개사는 열심히 조건을 충족하는 곳을 찾아낼 것입니다.


잠시 법적으로 들어가 보면 주택임대차보호법 제6조(계약의 갱신) ① 임대인이 임대차기간이 끝나기 6개월 전부터 2개월 전까지의 기간에 임차인에게 갱신거절(更新拒絶)의 통지를 하지 아니하거나 계약조건을 변경하지 아니하면 갱신하지 아니한다는 뜻의 통지를 하지 아니한 경우에는 그 기간이 끝난 때에 전 임대차와 동일한 조건으로 다시 임대차한 것으로 본다. 임차인이 임대차기간이 끝나기 2개월 전까지 통지하지 아니한 경우에도 또한 같다. <개정 2020. 6. 9.>

위와 같이 임대차계약만료 6개월에서 2개월 전에 임대인에게 계약해지 의사 표시부터 해야 합니다.


주택임대차보호법은 분명히 임차인을 보호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특별법이지만, 법의 허점도 분명히 있답니다.

기한이 되었다고 무조건 법적으로 해결하려는 임차인이나, 법적(묵시적)갱신이 아님에도 일방적으로 갱신되었다고 주장하는 임대인의 경우, 잘못된 법의 해석으로 도리어 자신에게 불리하게 적용되는 일도 있으니, 법적인 내용은 정확하게 숙지하고 고지하는 것이 좋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정말 피치 못할 사정이 없는 한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협상을 통해 일을 순조롭게 해결해 나가는 방법을 찾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너무나 많은 분이 보증금 반환문제로 힘들어 하는 일상을 마주하기 때문입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사회적 비용도 만만치 않게 소요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중개사무소에 방문할 때는 조건에 맞는 집을 구하기 위해선 조금은 ‘솔직한 수다’를 해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지난날의 저처럼 솔직하게 말하지 못해 손해를 보게 되거나, 원하는 조건의 집을 놓치고 후회하면 안 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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