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 극치, 샬롬
시카고에서 코스타의 일정도 잘 마쳤다.
나에게 코스타는 왠지모를 그리움이 있는 곳이다.
2008년, 미국 유학 때는 정말 참석해보고 싶었는데, 재정적으로 힘든 시기였다. 참석하기에는 등록비와 항공비가 부담되어서 가지 못했다.
2015년, 겁도 없이 미국에 법인 설립한다고 워싱턴 D.C.로 날아가 1년을 지내며 처음 참석하게 된 코스타.
그때 주제는 "The Sent (보냄받은 자들)" 이었다. 창업 초창기 많은 것이 모호하고 혼란스러웠던 시기에 하나님께서 청지기로 보내신 자리에 대한 믿음과 용기를 회복하는 시간이었다.
10년이 지난 2025년, 올해의 주제는 "SHALOM, WITHIN & BEYOND"
2006년, 중국 연변 과기대에서 잊을 수 없는 말씀 묵상.
이리와 어린양이 함께 뛰노는 하나님 나라의 극치, 샬롬.
그리고 2007년부터 내 삶의 슬로건이었던 Between and Beyond.
이 두 가지가 밑바탕이 되어 창업을 도전하게 되었던 지난 시간들이 머릿속에 스쳐갔다.
그래서인지 이번 코스타의 초청을 받고 지난 내 삶의 궤적과의 진한 연결성이 느껴졌다. 이와 함께 최근 몇 년간 내가 경험한 격동의 영적 변화를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무리한 일정이지만 코스타를 중심으로 미국 일정을 조율했다.
바쁜 삶 속에 세미나와 간증을 준비하는 과정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지난 2006년부터 지금까지 20년간 내 삶에 대한 하나님의 따뜻한 만지심과 사랑을 깊이 묵상하고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리와 어린양이 함께 뛰노는 하나님 나라, 샬롬.
나에게 해석된 성경은 단순히 예수를 믿고 구원받는 범위를 넘어서는(beyond) 것이었다.
다양한 사람들 안에 서로의 하나님 형상을 바라보며 맘몬으로 왜곡되고 깨어진 샬롬을 회복하는 것으로 다가왔다.
나에게는 그 대상이 내가 관심있던 탈북민과 개발도상국 사람들이었고, 방식이 창업이었을 뿐이다.
결과적으로 소외된 자들과 우리 모두는 하나님 자녀로서 다르지 않음을 인식하고 수평적인 관계, 좋은 친구가 되는 것이 전부다.
예수님이 나의 친구가 되어주신 것처럼.
누군가에게 시혜적인 일방향의 돌봄이 아닌, 우리 모두는 연약함과 깨어짐을 가지기에 서로 돌보며 살아간다. 우리도 자연을 돌보지만, 자연도 우리를 돌본다.
나는 개도국 사람들에게 밥을 사달라고 종종 요청한다. 내가 항상 밥을 사면, 의도치 않게 기부자와 수혜자와의 제한된 관계에 갇히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밥한끼를 얻어먹으면 강력해보이는 맘몬으로 인한 수직적 관계는 금방 힘을 잃고 사라진다. 그리고 친구같은 관계가 형성된다.
예수님도 복음을 직접 전하시기 이전에 우리 모두와 친구가 되어주셨다. 일방적으로 돕는 구원자가 아니라 우리와 동등함을 취하셨다.
성육신으로 이땅에 오셨다. 뿐만 아니라 소외된 사마리아 우물가의 여인에게 먼저 물을 달라고 하셨고, 사람들에게 비난받던 세리 삭개오에게 너의 집에 머물고 싶다고 하셨다. 의도적으로 도움을 요청하시며 그들과의 수평적 관계를 먼저 회복되며, 친구가 되고자 하셨다.
그리고 이번에 깨닫게 되었다.
내가 먼저 찾아갔다고 생각했던 그들이, 내 삶에 나를 위해 찾아와주신 예수님이였다는 것을..
이처럼 나에겐 좋은 친구가 되는 것도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었다. 하지만 직접적 구원이 없는 이 활동이 정말 괜찮은 건가에 대한 확신을 갖기 어려웠다. 누군가는 이를 인본주의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마치 인본주의는 복음과 상충되는 것처럼 얘기했다. 과학도 요즘 유사한 진통을 겪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하나님은 광대하시며 전지전능한 분이다. 인본주의와 과학을 포함한 세상의 모든 영역은 복음 안에 마땅이 포함되어야 하고 긴밀하게 소통되어야 한다.
‘모든 진리는 하나님의 진리‘이기에 결국 영성은 인본주의와 과학을 품어낼 수 있어야 한다. 결국 서로가 점차 만나면서 진리는 더욱 명확해진다. 이를 위한 과도기를 잘 넘어가기 위해 열려 있고 유연한 논쟁의 장이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그동안 교회안에서 이 질문에 대해 명확한 답을 찾지 못했고, 나 스스로 이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많은 시간을 필요로 했다.
그리고 이번 코스타를 통해 내가 정리한 샬롬의 가치가 맞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지난 코스타 기간 동안 모든 강사 분들이 동일한 메세지를 전해주셨다. 그리고 많은 분들을 통해 과분한 공감과 격려, 그리고 응원을 받았다.
지난 10년간의 치열한 고민과 수고가 나에게 충분히 의미있고 필요했던 과정임을 깨닫고 깊은 감사가 있었다.
내 삶의 영역에서 예수를 조금이나마 닮아가기 위해 탈북민 안에 가치와 하나님 형상을 바라보며, 남한 사회를 넘어 북한까지, 그리고 외국인 근로자와 개발도상국 사람들을 통해 전 세계로 확장된 하나님 나라와 샬롬을 만들가는 것. 내가 힘들지만 즐겁게 일하고 있는 이유다.
탈북민, 남과북, 우리에겐 분단의 아픔과 갈등 관계가 먼저 떠오른다. 하지만 우리가 서로의 하나님 형상을 바라볼 때 나와 우리의 온전함이 회복되고, 함께 성장과 번영을 가져올 수 있다. 나에게 하나님 나라의 샬롬은 이렇게 해석된다.
우리의 마음이 가려져 잘 보이지 않을 뿐이지, 탈북민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은 그 존재만으로 충분한 가치, 그 하나님의 형상을 가지고 있다.
궁극적으로 하나님 형상을 입은 자녀로서 우리 모두는 하나라는 ’Oneness‘를 추구해 갈 때 이 복음이 세상에 더욱 온전해질거라 믿는다.
다시한번 그 확신을 갖게 해준 이번 코스타의 시간은 내 인생의 중요한 마일스톤이 될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