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림길의 은혜 시리즈(4)
"대리님, 수련회 찬양팀을 만들 건데요, 건반으로 섬겨주시죠."
“네?”
“건반이 안 될 것 같으면 싱어라도 해주셔야 합니다.”
어안이 벙벙했다. 과장님한테 내가 건반을 할 줄 안다고 말한 적도 없고, 10년 동안 회사에 다니면서 그런 이야기를 나눠 본 사람도 없는데 '할 줄 아세요?'도 아니고 '해주세요.'라니.
다행히 어떻게 찍으셨는지 몰라도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나는 줄곧 반주자였다. 아동부 예배에서 우연히 반주자로 데뷔한 후 피아노 학원 원장님의 추천으로 학원 상가 건물에 있던 교회에서 수요예배 반주도 했었다. 그 뒤로는 상황에 따라 드럼, 건반, 싱어 등을 번갈아 맡아가며 찬양팀으로 섬겼으나, 남편을 전도하기 위해 교회를 옮긴 뒤로는 예배만 참석했으므로 손을 놓은 지도 벌써 10년이 넘은 것이 문제였다.
"안 될 수도 있는데, 한 번 해볼게요."
어쭙잖은 실력으로 예배를 망치고 싶지는 않았지만, 눈앞의 갈림길에서 나는 또 한 번 순종을 택했다. 그즈음 나는 순종하는 훈련을 하고 있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제 발로 순종훈련학교에 입학해서 하나님의 부르심이라 느껴지면 나의 역량과 상관없이 ‘Yes’를 외쳤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거절하고나서 두고두고 후회했던 과거를 떠올리면 이제 더 이상 나의 불순종으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거스르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결성된 네 명의 찬양팀. 인도자와 싱어 한 명에 기타와 건반으로 이루어진 단출한 구성이지만 보수적인 회사 신우회에서는 새로운 시도였다. 감사하게도 회사 강당에는 피아노가 있었다. 몇십 년 동안 뚜껑이 열린 적이 한 번도 없었던 피아노는 걱정했던 마음이 무색하게 꽤 준수한 소리를 냈다. 그날부터 우리는 휴식 시간을 반납하고 점심을 먹으면 곧장 강당으로 향했다. 시간을 들여 연습을 하자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조금씩 손에 리듬이 붙기 시작했고, 연습하며 찬양하는 동안 오히려 은혜로 충전되는 쉼이 있었다.
찬양팀과 함께하는 찬양으로 시작해 눈물의 기도와 나눔으로 연결이 되었던 수련회가 마무리되고 다시 회사로 복귀한 월요일 아침, 리더를 맡았던 과장님이 기타를 맡았던 과장님과 건반을 맡았던 나를 강당으로 불렀다.
"자꾸만 주시는 마음이 있어서 주말에 기도를 많이 해봤거든요."
과장님은 주님께서 처음 입사할 때의 마음을 떠올리게 하셨다고 말했다. 10년 넘게 회사에 다니는 동안 잠시 잊고 있었던 그 마음, '예수 믿는 사람이 하는 회사 생활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겠다던 그 각오를 떠올리게 하셨다고 고백했다.
“수련회를 위한 임시 찬양팀 말고, 정식으로 찬양팀을 결성하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