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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갈림길

갈림길의 은혜 시리즈(3)

by 딘도

새로 들어간 팀은 고요했다. 회장님의 지시를 수행하는 조직이라 그런지 퇴직하신 이사님께서 쓰시던 방을 그대로 물려받았다. 대표이사실 옆에 마련된 이사실에 네 명이 우두커니 들어가 있으니 하루 종일 적막이 감돌았다. 고객을 상대하느라 늘 시끌벅적하던 1층에서 근무하다가 직원들을 관리하는 스텝 부서들이 모여 있는 2층으로 올라오자 왠지 모를 삭막함이 느껴졌다. 업무도 공간도 사람도 낯설어 몸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그래서 기도대로 이루어졌느냐고? 아니, 하마터면 시험에 들 뻔했다. 일할 때 궁합이 잘 맞느냐 하는 문제는 신앙과 별개이니 섣불리 시험에 들지 않으려 노력했다. 모르긴 몰라도 한 가지는 확실했다.


'하나님이 나를 옮기셨다.'


하나님은 예상치도 못한 방법으로 나의 환경을 바꾸어주셨다. 4개월 동안 집에서 매일 말씀을 읽으며 혼자서 신앙을 바로 세우려 애쓰던 나를, 그렇게 하는 것이 당연한 사람들이 가득한 환경으로 인도해 주셨다. 신우회 임원이신 분이 나의 직속상관이 되니 가입만 해놨던 신우회 예배에 참석하게 된 것이 시작이었다. 그동안은 남편의 눈치를 보느라 가지 못했던 예배였다.


핑계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남편이 시험에 드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내 맘대로 쾌속정처럼 치고 나가고 싶은 마음은 늘 굴뚝같았다. 하지만 나를 만나 교회를 다니기 시작한 남편의 속도를 무시한 채 나만 달려 나가면 안 될 것 같았다. 더군다나 내가 신앙생활(남편의 눈에는 '종교활동')을 하는 동안 아이를 돌보는 일은 고스란히 남편의 몫이 되어야 하는데, 그가 육아에 지쳐 기독교를 미워하도록 두고 싶지는 않았다.


가입한 지 몇 달 만에 처음으로 참석해 본 신우회 예배는 참 좋았다. 왜 진작 함께 예배드리지 못했을까 싶을 정도로. 목사님을 통해 듣는 말씀이 너무나 귀해서 한 달에 한 번 있는 예배가 기다려졌다. 남편도 생각보다 너그럽게 나를 이해해 주었다. 예배가 있어 평소보다 한 시간 반 정도 늦게 퇴근한 날에는 일부러 더욱 살뜰히 가정을 챙겼다. 남편은 성경을 읽으며 예수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나를 겪으며 예수를 알아갈 것이다. 어쩔 수 없다. 먼저 제자 된 사람의 숙명이려니.




그렇게 몇 달이 지났을까, 신우회에서 여름 수련회가 잡혔다. 회사에서 한 시간 반 거리에 있는 연수원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오후 반차를 내서 다녀와야 했다.


맞벌이 워킹맘의 연차란 무엇인가. 마치 월급처럼 온전히 내 것이라 할 수 없는 공동 소유의 재산과도 같다. 해마다 받을 수 있는 연차 개수는 정해져 있고, 부부는 그것을 지혜롭게 사용해서 모든 구멍을 막아야 한다.


아이 유치원 방학, 등원할 수 없는 전염성 질병의 확진, 고열을 동반한 감기(물론 아이가 걸렸을 때를 말한다. 어른은 웬만큼 아플 때도 출근이다), 가족여행, 병원 검진 등이 주 사용처다. 연차휴가를 사용해서 집에서 진짜 '휴식'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런데 그 귀한 연차까지 써 가면서 또 신앙생활을 하겠다고? 남편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걱정스러웠지만, 별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는 듯 오히려 덤덤하게 수련회 일정을 공유했다. 감사하게도 남편은 군말 없이 나의 신앙생활을 이해해 주었다. 덕분에 한결 홀가분해진 마음으로 수련회 참여 의사를 밝혔다.


그리고 며칠 뒤,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함께 신우회에 소속된 과장님의 번호였다. 업무차 전화할 일이면 내선 번호로 하셨을 텐데 휴대폰으로 걸려 온 전화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밑도 끝도 없이 던지는 과장님의 한마디에 눈앞에 세 번째 갈림길이 펼쳐졌다.


"대리님, 수련회 찬양팀을 만들 건데요, 건반으로 섬겨주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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