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파트너 없으시면, 저랑 해주시면 안 될까요?
설렘을 안고 입학한 대학교 1학년 새내기 시절의 이야기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시간표를 짰고, 남은 1학점은 스포츠 교양과목으로 채웠는데, '댄스스포츠'였다. 담당 교수님께서는 수업을 들으려면 전용 슈즈가 필요하다고 하셨다. 교수님께서 알려 주신 대로 서울역에 있는 수제 댄스스포츠화 전문점에 가서 황금색으로 된 슈즈를 구매했다.
첫 수업을 들으러 갔다. 교양수업이라 여러 학과에서 여러 학년의 학생들이 모여 있었다. 춤을 배우러 와서 그런지, 늘씬하고 예쁜 언니들도 많이 보였다. 그에 비해 나는 아직 고등학생 티를 벗지 못한 짜리몽땅 찐빵일 뿐이었다. 중학교 때는 학교 축제에서 친구들과 댄스 무대를 선보이기도 하고, 교회에서는 워쉽팀도 많이 했던 나였다. 내가 몸치라는 생각은 하지 않고 살아왔는데, 수업을 들어보니 내 몸짓은 완전히 엉망이었다.
맙소사. 재미와 학점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으려고 했는데, 망했다. 맨 앞 줄에서 교수님의 설명을 바로 알아듣고 예쁜 몸으로 동작을 복사해 내는 멋진 언니 한 명이 제일 나를 기죽였다. 그 언니는 같은 여자인 내가 봐도 너무 예쁘고 매력적이었다. 같이 수업을 듣는 남학생들 몇몇은 언니의 곁을 맴돌며 구애를 했었다. 그때를 떠올리면, 이름도 물어보지 못했던 그 언니가 신었던 연보랏빛 레깅스와 검은색 구두, 시크하고 도도했던 검은색 칼 단발, 그리고 언니 주위를 맴도는 남학생들이 함께 떠오른다.
룸바와 차차차의 리듬이 몸에 슬슬 스며들 때쯤, 중간고사 시즌이 찾아왔다. 배운 대로 직접 춤을 추는 실기시험이었다. 교수님께서는 중간고사 파트너를 정해주지 않고 자율에 맡기겠다고 하셨다. 남자가 여자에게 춤을 청하는 댄스스포츠 예절에 따라, 남학생이 여학생에게 청하여 파트너를 정하라고 하셨다. 연습도 둘이서 따로 시간 약속을 잡아서 하면 되고, 시험당일에 파트너와 함께 준비한 춤을 선보이면 된다고 하셨다.
며칠이 지났다. 아무도 연락이 없었다. 큰일이었다. 댄스스포츠는 혼자서 출 수 있는 춤이 아니었다. 연습도 해야 하고, 시험도 봐야 한다. 더 이상 가만히 앉아 속앓이만 할 수는 없었다. 때마침 한 학기 동안 반장을 맡기로 한 4학년 선배에게서 문자가 왔다.
'중간고사 파트너가 정해지면 공유 바랍니다.'
공유할 내용이 없었다. 파트너가 없었기 때문이다. 잠시 동안의 고민 끝에, 나는 나답지 않은 맹랑함을 발휘하기로 결심한다. 댄스스포츠의 예절을 파괴하기로 한 것이다. 공유할 파트너도 없으면서, 나는 선배에게 답장을 보냈다.
'반장님은 혹시 파트너 있으신가요? 없으시면 저랑 파트너 해주시면 안 될까요?'
얼마나 조마조마했는지 모른다. 나는 품절 임박 인기 상품을 주문하는 사람처럼 마음이 급하고 간절했다. 반장 선배와는 제대로 된 대화도 해보지 않았던 사이였다. 나는 그를 알았지만, 그는 나를 모를 것이었다. 그렇지만 이렇게 가만히 있다가 파트너도 없이 중간고사 시험을 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