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 있는 자가 반장을 얻는다
지금처럼 카톡도 없던 2008년 봄,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 알 수도 없는 문자메시지 창을 켜놓고 나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답장을 기다렸다.
'아... 아직 파트너가 없긴 한데.....'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답장.
'저도 아직 파트너가 없는데... 저랑 해주시면 안 될까요?'
다시 초조한 기다림.
'음... 그럼 같이 중간고사 시험 준비해요.'
예스! 구했다, 파트너!
그 뒤로는 모든 것이 일사천리로 이루어졌다. 선배는 마지막 학기였고, 나는 첫 학기였다. 학교에 대해 구석구석 잘 아는 반장 선배 덕분에 나는 연습장소 예약을 비롯한 모든 준비과정을 수월하게 해낼 수 있었다. 엉거주춤하던 춤도 많이 발전했다. 파트너를 정해두고 계속 합을 맞춰나가니, 음악에 몸이 실리기 시작했다. 보폭을 맞추고, 눈높이를 맞추고, 음악에 우리를 태웠다. 춤이 예술이 되기 시작했다. 재밌었고, 자신 있었다.
드디어 중간고사 시험날.
교수님의 호명에 따라 순서대로 시험을 치렀다. 모두들 예쁘고 멋지게 차려입은 모습으로 음악에 맞춰 춤을 추니, 분위기는 마치 발표회 같았다. 다른 팀의 발표를 보며 머릿속으로는 계속해서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는 동시에, 겉으로는 웃으며 환호와 박수를 보냈다. 아무래도 시험이었다. 물 위를 태연하게 떠가는, 그러나 물속에서 부지런하게 물장구를 치는 한 마리의 백조가 된 기분이었다.
드디어 우리 차례. 아, 아뿔싸. 이건 생각 못 했다. 나는 반장의 파트너였다. 반장이란 누구인가. 그 반의 유명 인사가 아닌가! 나는 무명 중의 무명, 찐빵 중의 찐빵이었다. 이로써 갑자기 내가 세상에 알려졌다. 어머, 쟤 누구야. 누군데 반장이랑 파트너가 되었어? 하는 눈빛이 느껴졌다. 아무렴 어때. 우린 열심히 준비했고, 최소한 망신 당하지 않을 정도의 자신감은 있었다.
드디어 음악이 흐르고, 연습한 대로 몸이 착착 맞아들어가기 시작했다. 음악을 타기 시작하니 표정이 살아났다. 시험을 끝낸 사람들의 홀가분한 환호성에 분위기가 더욱 달아올랐다. 고난도 동작들도 문제없이 클리어, 음악이 점점 끝을 향했다. 깔끔한 마무리. 됐다, 해냈다!
우레와 같은 함성. 반장 효과가 좀 있었겠지만, 우리의 춤이 꽤 괜찮았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교수님께서도 우리의 춤을 인상 깊게 보신듯했다. 미처 파트너를 구하지 못한 남학우가 시험을 볼 차례가 되었을 때, 나더러 파트너가 되어 시험을 볼 수 있게 도와달라고 하셨다. 어머나, 나 잘했나 봐!
자신만만한 마음으로 그 남학우의 파트너가 되어주었는데, 반장 선배와 춤을 출 때와 너무 달라서 애를 먹었다. 남자가 리드해 주는 힘에 몸을 맡겨야 하는데, 순서도 방향도 제대로 모르는 남학우를 내 힘으로 밀고 당겨야 했다. 마지막에 서너 바퀴 턴을 돌아야 할 때는 나를 돌려주지 않아서, 김연아에 빙의한 채 스스로 뱅글뱅글 돌았다. 와하하하. 많이 친해진 반장 선배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민망함에 삐죽 웃음이 새어나왔다.
그렇게 성공적으로 중간고사 시험을 마치고, 나는 내 스스로 파트너를 쟁취하여 좋은 결과를 얻어낸 사실이 너무나 뿌듯하고 자랑스러웠다. 한 학기의 댄스스포츠 수업이 이렇게 성공가도를 달리게 되었다는 사실에 안도감이 몰려왔다. 그 때의 나는 몰랐다. 너무나 잘 춘 탓에, 기말고사를 앞두고 제 2의 파트너 쟁탈전이 일어나게 될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