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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딘도 Aug 22. 2023

차라리 빛나는 '안 해'가 되기로 했다.

여자라서 겪는 차별(3)

나는 요즘 양쪽 모두에서 편안하다. 역할이 너무 없어서 설 자리를 잃은 회사에서도, 해내야 할 것이 너무나도 많아서 버거운 집안에서도, 사실은 많이 편안해졌다. 아마도 양쪽 모두에서 포기한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중요한 사람이 되기를, 그리고 대접받는 사람이 되기를 포기했다. 그러자 상황을 바라보는 시각과 마음가짐이 달라졌고, 역설적으로 마음이 편해졌다.


그동안 집에서는 늘 억울해서 힘들었다. 남편이 적어도 나만큼 집안일을 해줬으면 했고, 무조건 똑같이 힘들어야 직성이 풀렸다. 하지만 무 자르듯 공평한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런 마음으로는 몸과 마음이 피폐해질 뿐이었다. 생각을 바꿨다. 이왕 맡게 된 역할, 아내로서 그리고 엄마로서 충실하기로 했다. 남편이 어서 정신 차리게 해 달라는 기도도 그만두었다. 대신 내가 더 희생하고 헌신할 수 있도록 힘과 넉넉한 품을 달라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내가 바뀌자 놀랍게도 남편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그것이 고마웠다. 억울한 마음을 버리자 집안 분위기가 부드러워졌다. 남편이 움직이지 않고 누워있는 것을 봐도 이제는 괜찮다. 애초에 내가 하기로 마음먹었고, 일을 진행시키는 것에 그의 힘을 빌리지 않기로 마음을 바꾼 덕분이다. 이제는 맘카페의 그녀들이 이해가 된다. 그녀들도 나와 같은 터널을 지나왔을지도 모른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
몸을 닦고 집을 안정시킨 후 나라를 다스리며 천하를 평정함


요즘 나는 우선순위를 바꿨다. 나와 가정이라는 땅을 먼저 다지기로 했다. 무엇을 세우더라도 든든하게 받쳐줄 수 있도록 말이다. 나의 손길이 닿으면 집안 곳곳이 환해진다. 나는 '안 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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