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시간이 되면 여기저기서 나에게 배려의 말을 던진다. 그렇다. 집으로 오면 상황은 역전된다. 집에서는 어쩐 일인지 아내에게 더욱 비중 있는 역할이 부여된다. 시대가 많이 바뀌었는데도 아직도 살림과 육아의 책임은 여자에게 있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은 윗 세대로 갈수록, 그리고 지방으로 갈수록 더욱 심했다. 놀라운 사실은 이 생각을 남자들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회사에서 만난 여직원 선배들도 충분히 괜찮은 회사에서 맞벌이를 하는데도, 저녁이 되면 남편 밥을 차려줘야 해서 전전긍긍했다.
육아를 하면서는 맘카페에서 마주하는 글들을 보며 한동안 문화적 충격에 빠지기도 했다. 그들은 육아와 살림을 도맡아 하면서도 불만이 없어 보였다. 각종 교육적인 방송과 다큐멘터리에서는 '육아와 집안일은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하는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었지만, 현실은 아니었다. 남자는 퇴근하면 '퇴근한 직장인'이 되지만, 여자는 퇴근하면 '주부'로 변신해야 했다. 나는 유독 그런 불공평을 참을 수 없었다.
나를 제외한 이 동네 여자들의 마음가짐이야말로 경상북도 청도군에서 나고 자란 아홉 살 많은 남편이 원하는 바였다. 경기도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살다 온 아홉 살 어린 나의 생각으로는 같은 회사에서 같은 월급을 받으며 같은 시간 동안 일을 하면 집안일이나 육아도 그렇게 분담하는 게 맞았다. 우리는 이렇게 생각이 달랐고, 매번 여기서부터 갈등이 시작되곤 했다. 남편은 특히 식사 문제로 신경을 곤두세웠는데, 결혼한 지 한참이 지나서야 정한 적도 없는 밥당번이 바로 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반면 비슷한 또래와 결혼해서 수도권에 살고 있는 친구들의 결혼생활 이야기를 들어보면 완전히 달랐다. 집안일을 분담하는 것은 물론이고, 오히려 남편이 식사를 전담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런 결혼을 한 친구들은 모두 아내로서 사랑받는다고 느꼈고, 결혼생활이 행복하다고 말했다. 평생을 비혼으로 살아갈 것 같았던 한 친구는 밥을 책임져주는 남편과 결혼을 한 뒤, 너무나 행복한 나머지 이런 말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