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브샤브 먹다 프러포즈받았습니다
오래 살고 볼 일
주말에 들를 곳이 있어 새로 산 테슬라를 타고 길을 나섰다. 남편은 요즘 기분이 좋다. 새로 산 차가 마음에 드나 보다. 관심이 없던 나도 막상 차를 받고 보니 비용이 절감되는 것은 물론이고, 새로운 기술의 편리함에 감탄을 하고 있다.
볼일을 마치고 지난번에 만족스러운 식사를 했던 샤브샤브 집에 갔다. 다른 가게보다 기본 가격이 비싸긴 하지만 고기가 무한리필된다. 대식가인 우리 가족에게는 훨씬 경제적이다. 워낙 인기가 많은 집이라 웨이팅을 하고 차례가 되어 자리를 잡고 앉았다.
나는 아이를 돌보고, 남편은 부지런히 고기와 야채코너를 오가며 음식을 날랐다. 고기와 야채가 맛있는 육수 속에서 푹 익어가는 동안 이런저런 이야기가 무르익었다. 우리는 같은 회사를 다니기 때문에 종종 회사일로도 대화를 한다.
"갸는 진짜 잘 풀리네."
"사실 그게 전부지. 사람을 잘 만나야지."
"맞다."
"내가 준비되어 있는 것도 중요한데 어차피 길이 열릴 때는 기회가 전부 사람을 통해서 오잖아."
내 이야기를 가만히 듣던 남편이 불쑥 말을 꺼낸다.
"난 와이프는 참 잘 만났지."
오잉? 낯선 멘트에 귀가 쫑긋했다. 이런 말도 할 줄 아는 사람이었냐는 나의 말에 남편은 같은 이야기를 다시 한번 힘주어 말했다.
"내가 와이프는 참 잘 만났어."
남편의 말에서 진심이 느껴졌다. 표현이 서툰 경상도 아저씨한테서 이런 말을 들을 줄이야. 오래 살고 볼 일이었다. 시계를 보고 날짜를 확인했다. 프러포즈를 받은 기분이었다. 낯선 따스함에 쑥스러운 대답을 보냈다.
"그래, 독서대 하나를 사도 그렇게 고민하는 사람인데 얼마나 잘 골랐겠어."
"하하하 맞다. 내가 얼마나 까다롭게 골랐겠노. 그라이 이래 결혼이 늦었지."
2023년 11월 19일. 내게는 오래 두고 기억하고 싶은 날이 되었다. 결혼식 일주일 전 무언의 합의 하에 이루어진 프러포즈보다 샤브샤브를 먹다가 불쑥 전해준 진심이 내겐 더 감동이었다.
'나도 남편 참 잘 만났지.'라고 바로 대답해주어야 하는데, 경상도 남자보다 무뚝뚝하기가 한 수 위인 경기도 여자라서 그렇게는 말을 못 해줬다. 대신 이 자리를 빌려 나의 진심을 전해본다.
알면 나한테 좀 잘해줘라
화내지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