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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딘도 Nov 29. 2023

원래는 시럽형을 싫어합니다만

오늘은 기꺼이 먹었습니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지난번에 사둔 가지와 청경채가 있었다. 여기에 돼지고기만 있으면 어향가지를 만들 수 있다. 어향가지는 내가 자신 있는 요리 중 하나다.


이와 놀아주고 있는 남편에게 돼지고기를 좀 사 오라고 부탁했다. 어향가지를 만들어주겠다는 말에 남편이 몸을 일으킨다. 내가 만들어주는 어향가지는 남편도 즐겨 먹는다.


남편이 아이를 데리고 돼지고기를 사러 간 사이, 나는 아이의 밥을 준비한다. 오늘은 별 것 없는 밥상이다. 소시지볶음을 후다닥 만들고 무조미 아기김에 멸치볶음과 파프리카를 반찬으로 내주었다. 식판에 밥과 함께 담아냈다. 때맞춰 남편과 딸이 돌아왔다.




아이가 밥을 먹는 동안 남편은 빨래를 갠다. 나는 어른의 식탁을 준비한다. 가지를 썰고, 청경채를 씻고, 양념을 만든다. 불을 올리고 프라이팬에 고추기름을 두른다. 기름이 달아오르면 돼지고기를 넣고 볶다가 골고루 익으면 다진 마늘, 파, 고추를 넣는다. 잡내가 사라지고 기분 좋은 향이 올라오면 미리 만들어 둔 양념을 넣고 볶다가 가지와 청경채를 넣고 빠르게 볶아낸다.


남편이 기쁜 마음으로 돼지고기를 사다 주고,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빨래를 개 준 덕분에 상쾌한 기분으로 맛있는 저녁식사를 했다. 남편과 나는 둘 다 구내염으로 입 안이 아픈데도 어향가지와 밥을 후후 불어가며 한 그릇을 뚝딱 비워냈다. 


새로 산 차에 붙일 선팅필름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다가오는 결혼기념일을 어떻게 챙길 것인지도 의논했다. 무엇보다 그 이야기를 남편이 먼저 꺼냈다는 사실이 내겐 참 의미 있었다.




남편은 이야기하는 내내 심하게 기침을 하는 나를 걱정해 주었다. 


"병원 다시 가보라고 말해주려고 했는데, 오늘 바빠서 못 챙겼네. 콜대원 한 번 먹어볼래? 나는 효과 있던데."


남편의 말에서 따뜻함이 묻어났다. 남편이 빨래를 개면서 틀어 둔 텔레비전에서는 마침 콜대원 광고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기침을 하는 나와 광고를 번갈아 쳐다보던 남편은 무언가를 결심한 듯했다.


"더 늦기 전에 나가서 사 올게."


배를 움켜쥐며 기침을 해대는 나를 보며 내일까지 지체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퇴근하고 저녁까지 배불리 먹은 상태에서 다시 집 밖을 나가는 것이 얼마나 귀찮은 일인데. 그것도 놀러 가는 것이 아니라 약을 구하러 가다니. 이 시간에 문을 연 약국이 있기나 할까. 갖은 걱정과 고마움이 마음을 뒤흔들었다.

 

"고마워."


꽤 시간이 흐른 뒤 남편이 약을 구해왔다.


"어디까지 갔었어?"

"신남네거리까지 갔다 왔다."


그의 수고에 고마움이 밀려왔다. 나는 사실 시럽형 약이 싫다. 특유의 달큼한 맛과 혀가  감각이 별로라서 그렇다. 그래도 오늘은 남편의 사랑이 고마워서 바로 약을 뜯어 입에 물었다. 맛이 이상할까 봐 눈을 질끈 감고 한 입에 꿀꺽 삼켰다. 른 나아야겠다는 의지와 함께.




그리고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남편이 기침을 한다.  돼! 우리 집 청정구역! 무너지지 말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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