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류를 봤다. 목욕탕 안에서 포노사피엔스는 휴대폰을 손에 들고 있었다.뜨거운 탕 안에서 몸을 물에 담근 채로 휴대폰으로 누군가와 끊임없이 연락을 하고 있는 신인류.
'촬영 금지'
목욕탕 앞에 붙어있는 주의사항이 눈에 들어왔다. 그래, 촬영 금지이지 휴대폰 반입금지는 아니다. 그래도 촬영기기를 들고 있다는 것은 잠재적으로 촬영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 아닐까? 그래서 휴대폰을 탕 안에 반입하는 것도 암묵적으로는 금지사항 아닐까?
법도 잘 모르면서 머릿속에서 혼자 이리저리 판결을 내리는데, 문득 고등학교 시절의 추억이 떠올랐다. 그때 우린 들뜬 마음으로 기숙사를 나와 다 같이 찜질방에 갔었다. 목욕을 하러 가기 전 탈의실에서 신나는 마음에 셀카도 잔뜩 찍었더랬다. 손님이 거의 없어서 전세 낸 기분이라 더 신이 났다.
그때였다.
"야! 찍지 마!"
3-40대쯤 되어 보이는 아주머니였던 것 같다. 우리는 짧고 단호한 일침에 일순간 다 같이 정신을 차렸다. 우리 말고 아무도 없는 건 아니었다. 우리를 혼낸 아주머니 한 분도 손님이었다.
물론 우리 여러 명이 화면에 꽉 차게 얼굴을 들이밀었으므로 다른 사람이 담길 틈은 없었으나, 명백히 우리의 잘못이었다.
"죄송합니다."
우린 곧바로 휴대폰을 내리고 옷을 벗으러 뿔뿔이 흩어졌다.
오늘 만난 포노사피엔스는 얼핏 10대 같기도 했고 다시 보면 20대 같기도 했다. 나이는 좀 헷갈렸지만 탕 안에까지 휴대폰을 가지고 들어오는 것을 보면 '휴대폰을 신체의 일부처럼 사용하는' 포노사피엔스가 확실했다. 그녀는 탈의실에서 미처 휴대폰을 벗고 오지 못한 것이다. 그것이 손의 연장선이었기 때문에.
휴대폰이 없던 시절에는 실시간으로 연락이 되지 않는 것이 당연했다.탈의실에서 나의 모든 것을 벗고 나오면서 '이제는 목욕할 때나 휴대폰하고 떨어지는구나.'라는 생각을 마침 했던 참이었다.
그런데 나는 목격하고 말았던 것이다. 포노사피엔스를. 휴대폰을 신체의 일부처럼 여기는 신인류를.
고등학교 시절의 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일침을 놓는 어른은 아무도 없었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혹시나 촬영을 할까 봐 걱정이 되는 품목을 가져오면 어떡하냐'라고 말을 해야 할까? 괜히 꼰대 같아서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포노사피엔스는 우리와 똑같이 탕에서 나와 목욕을 마치고 몸을 닦고 로션을 바르고 머리를 말리고 옷을 입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다른 사피엔스들과 섞였다. 안에서는 튀었던 그녀를 밖에서는 쉽게 찾을 수가 없었다. 밖에서는 모두가 포노사피엔스였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