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시간이다. 내가 회사에 있는 동안 제일 좋아하는 시간이다. 우리 회사 구내식당은 참 맛있다. 메인요리도 다양하고 반찬 가짓수도 많다. 기본 샐러드에 식후 음료수에 디저트까지 나온다. 그럼에도 밖에 나가서 먹고 싶은 날이 있다. 오늘이 그런 날이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우산을 쓰고 회사 건너편에 있는 대명시장으로 갔다. 여기저기 점심을 먹으러 나온 손님들이 보였다. 시장 안에는 맛집도 많지만 다양한 가게들도 있다. 오늘따라 도너츠 가게와 손두부 가게가 눈에 들어왔다. 다음에 와서 찬찬히 둘러보기로 하고 목적지로 향했다.
우리의 목적지는 옥이국수. 대명시장의 대표적인 맛집이다. 대명시장에는 맛있는 집이 참 많은데 항상 옥이국수에 사람이 제일 많다. 잔치국수, 칼국수, 수제비, 칼제비 등이 주력 메뉴. 맑은 멸치육수 국물에 애호박, 김가루, 깨 등이 감칠맛을 더해준다. 곁들여 나오는 김치와 장을 찍어먹는 알싸한 고추는 밀가루의 쫀득한 식감과 맛을 극대화시켜준다.양은 놀랍도록 푸짐하고 더 놀라운 가격은 한 그릇에 단돈 4천원이다.
오늘은 국수를 기다리며 맞은편에 있는 김밥집에서 우엉김밥 3줄을 주문했다. 기본 김밥이 1,500원에 우엉김밥은 2,000원. 주문과 동시에 즉석에서 김을 꺼내 뜨끈한 밥을 올려 슥슥 펴고 재료를 올려 김밥을 말아주신다. 먹기 좋은 크기로 김밥을 썰고 은박지에 담아 깨를 솔솔 뿌려주면 완성. 국숫집으로 김밥을 가져와 곁들여 먹어도 된다. 시장의 넉넉한 인심이다.
오늘따라 사람이 몰리는 시간에 나왔는지 평소 같으면 앉자마자 나왔을 칼제비가 한참 뒤에야 나왔다. 다행히 김밥이 그 간극을 채워주었다. 배고픈 네 개의 입이 순식간에 김밥 세 줄을 먹어치웠다. 원래는 칼제비와 곁들여 먹을 용도였는데 어쩌다 보니 식전요리가 되어버렸다.
아, 김밥은 정말 맛있었다. 아마 추가로 김밥 세 줄을 더 주문했어도 같은 속도로 사라졌을 것이다. 온갖 이름을 갖다 붙인 신식 김밥들 속에서 피로감을 느끼던 중에 만난 시장김밥의 맛은 단순해서 강렬했다. 김, 밥, 계란, 단무지, 햄, 당근, 시금치, 어묵, 우엉으로만 이루어진 맛이 기본에 충실해서 계속 손이 갔다.
한참이 지나서 나온 칼제비를 드디어 한 젓가락 뜨는데 다른 식당으로 갔던 직원들이 식사를 마치고 사무실로 복귀하는 모습이 보였다. 김밥이 없었다면 그 긴 시간을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래저래 참 고마운 김밥이었다.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을 그 맛이 갑자기 생각나서 이 글을 쓴다. 야밤에 김밥이 땡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