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두 번째 고향 대구에는 맛있는 음식이 정말 많다. 30년 동안 수도권에서만 살 때는 전혀 몰랐던 음식들이다. 납작만두, 무침회, 복불고기, 찜갈비, 연탄불고기, 막창, 고기밥, 돼지찌개 등은 양식을 좋아하는 차가운 도시 여자였던 내 입맛을 사로잡았다.
점심시간. 8시부터 5시까지 근무하는 동안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시간이다. 휴가를 가거나 외근을 가신 분들이 많아 점심시간에는 팀에 세 명 밖에 없었다. 차장님께서 밖에 나가 점심 먹을 것을 제안하셨다.
"유대리, 니 뭐 물래?"
우리 팀 공식 '맛잘알' 유대리님에게 점심식사 장소 추천을 받는다.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황한 대리님이 짬뽕이나 칼국수 같은 메뉴를 이야기한다. 딱히 끌리지 않는다. 눈길이 나에게로 쏠린다. 나는 며칠 전부터 먹고 싶었던 메뉴를 입에 올린다
"돼지찌개 드시러 가실래요?"
차를 타고 앞산에 있는 돼지찌개 집으로 향했다. 대구에는 여기저기 돼지찌개 집이 있다. 상호는 '와촌'이나 '고령촌'으로 다양하다. 주차장에 벌써 자리가 없다. 차를 주차하고 들어가니 넓은 매장이 반 이상 차 있다.
돼지찌개 3인분과 라면사리를 시켰다. 밑반찬이 세팅되고, 밥과 앞접시가 나온다. 뒤이어 냄비에 한가득 담긴 돼지찌개가 등장한다.
냄비 한가운데는 살코기와 비계가 적절히 어우러진 싱싱한 돼지고기가 두툼하게 썰려 들어가 있다. 양 옆을 각종 야채와 당면이 둘러싼다. 고기에게 양념장으로 이불을 덮어준다. 그 위로 다진 마늘이 소복이 쌓인다.
불을 올리고, 양념과 다진 마늘을 고기에 잘 섞어 볶아준다. 야채는 볶지 않는다. 나무주걱이 야채를 건드리지 않아 찌개를 떠먹을 때 숨이 죽지 않고 살아있어 식감이 기가 막히다. 고기에 양념이 잘 배어들고 살짝 익으면 육수를 붓고 기다린다.
조금 기다리면 찌개가 끓어오른다. 진한 국물맛이 일품이다. 찌개는 맵지도 칼칼하지도 않다. 깊고 시원한 국물맛인데, 이건 정말 먹어 본 사람만 안다.
찌개를 반 정도 먹었을 때 라면사리를 넣으면 가장 맛있다고 추천하지만, 사실 라면사리는 언제 넣어도 맛있다. 부대찌개와 김치찌개와는 또 다른 돼지찌개 특유의 국물맛이 면발 사이사이에 배어들어 맛이 기가 막히다.
꼬들꼬들한 면발을 후루룩 빨아올리며 식사를 시작한다. 한 번 식사를 시작하면 멈추기 어려운 맛이다. 중간에 육수를 한 번 추가하고, 진한 국물맛에 취해 정신없이 입에 넣다 보면 밥 한 그릇은 그냥 뚝딱이다. 주말에는 더 인기 있는 앞산 고령촌 돼지찌개. 겨울산행 후 뜨끈한 한 그릇 식사로 추천한다.
찌개 9,000원. 공기밥 1,000원. 라면사리 2,5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