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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생활 10년이면 입맛이 변한다

파스타에서 국밥으로

by 딘도

같은 팀 대리님이 나가서 점심을 먹자고 한다. 구내식당 밥도 참 맛있지만 이 대리님이 데려가는 집은 무조건 맛집이다. 회사 주차장으로 나갔더니 다른 팀 과장님이 기다리고 있다. 과장님의 벤츠에 올라탔다.


메뉴도 행선지도 모른 채 무작정 몸을 맡겼다가 뒤늦게 질문을 던졌다.


"근데 우리 뭐 먹으러 가요?"

"수육 좋아하세요?"

"아, 좋아하죠."

"성시경의 먹을텐데에 나왔던 집이에요."

"웨이팅이 장난 아니겠는데요?"

"그래도 지금 가면 앉을 수 있어요."




몇 분 지나서 과장님의 벤츠가 낡은 골목 앞에 도착했다.


"차 대고 들어갈게요."

"네, 자리 잡고 주문해 놓을게요."


익숙한 듯 앞서 걸어가는 대리님을 따라 허름한 골목을 걸어가다가 낡은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군위식당.


아! 들어 본 적이 있는 곳이었다. 앞문으로 들어가려고 하니 그쪽은 이미 만석인지 돌아서 뒤쪽으로 들어가라고 안내를 받았다. 안내대로 걸어가 보니 뒤쪽에도 식당이 꾸며져 있었다. 아마 장사가 잘 되어 공간을 인수한 모양이었다.

벽에는 월드스타 싸이가 왔다간 흔적이 남아있었다. 아직 12시도 안 된 시간인데 자리가 거의 다 차 있었다.


"고기밥 3개 주세요."


고민할 것도 없이 시그니처 메뉴를 주문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2-30대로 보이는 젊은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좁은 공간과 작은 테이블에도 불구하고 손님들은 국밥 그릇에 얼굴을 묻고 식사에 여념이 없다. 다들 시원한 국물에 속이 풀리는 모양이었다.

주차를 하러 간 과장님이 들어오기도 전에 고기밥 한 상이 차려졌다. 야들야들한 수육과 상추, 쌈장, 고추, 마늘 등 밑반찬에 고기국물과 공깃밥으로 구성된 정식이다. 1인분에 만 원.


고기는 잡내가 하나도 나지 않으면서도 촉촉하고 야들야들했다. 상추는 신선했고, 밑반찬은 기본에 충실했다. 고기국물 밑에 깔려있는 다대기를 풀고 부추를 듬뿍 넣은 뒤 새우젓으로 간을 맞췄다. 국물을 한 입 떠서 먹으니 아저씨 같은 탄성이 절로 나왔다.


"크으~~~"


속이 뜨끈해지면서 몸이 데워졌다. 해장할 필요가 없는 사람도 속이 풀리는 맛이었다. 국물에 밥을 말아 후루룩 떠먹고 상추에 고기쌈을 만들어 입에 넣는다.


잡내가 없으면 고기가 퍽퍽하고, 고기가 야들야들하면 누린내가 나기 마련인데 이 집은 그런 게 없다. 국밥과 고기쌈을 번갈아 먹으니 멈출 새가 없다. 환상의 조합이다.




사무실로 복귀해 한창 오후근무를 하는데, 3시쯤 되자 점심에 먹었던 고기밥이 생각나서 군침이 돌았다. 그런 내 모습이 아저씨 같아서 피식 웃이 나왔다.


남편하고 연애하던 20대에는 내가 좋아하는 양식집을 데이트 코스로 잡지 않는다며 얼마나 서운해했는지 모른다. 그때 남편이 맛집이라며 데려간 식당들은 죄다 오늘 점심메뉴 같은 곳들이었다.


그때는 그런 아저씨 입맛을 이해하지 못해서 너무 서운한 나머지 만을 표출하기도 했었다. 나중에는 서로의 취향을 존중해서 격주로 양식집과 아저씨 맛집을 번갈아 다니곤 했었다.


그런 내가 점심에 먹은 고기밥이 생각나서 입맛을 다시다니. 남초회사 근무경력 10년이면 입맛도 아저씨가 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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