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히 너를

엄마의 편지 10

by 살아 숨쉬는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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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들아.

또 『순례자』를 펴 들었다. 그러면서 코엘료와 페트루스가 걸었던 길을 따라 걷고 있는 널 상상했어.


800km나 되는 그 길은 때로는 거친 산맥, 낮은 구렁, 풍요로운 들판, 나무가 울창한 숲 등 지날 때마다 다른 풍광 이더구나. 한 곳도 같은 곳이 없었지. 게다가 네가 한참 전 지나온 브루고스에서 온타나스로 가는 길은 늘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는 곳이라고 하더구나. 너 역시 비를 맞으며 걸었다고 했지. 우리의 인생도 그런 것 같아. 맑은 날이 지속되는 때도 있고, 흐리고 비 오는 때도 있는. 그런데 햇빛 화창한 날에 즐기는 것과 비 오는 날 즐기는 것이 다르듯 인생에서 내리는 비는 또 그만의 좋은 점이 있기도 하지. 바람 심한 부르고스 지역에는 큰 나무 대신 낮은 초목이 자라 초원을 이루는 것처럼. 그저 삶에 몸을 던지다 보면 자유로움을 느끼지 않을까? 너는 이미 너만의 자유로운 리듬에 몸을 맡긴 듯도 하다만.


“살아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인지 느껴보십시오.
친구여. 하찮은 세상사를 잊고
그대의 마음을 자유롭게 놓아주십시오."
- 『순례자』 중에서


너에게 꼭 전하고 싶은 구절이다. 무엇보다 우리가 살아있음이 가장 소중한 것 아니겠니? 우리는 슬프게도 사랑하는 가족과 영원히 이별하는 슬픔을 겪었고, 가족의 상실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어. “죽음은 우리의 가장 큰 친구입니다. 우리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바로 죽음이니까요.”라는 말처럼 죽음은 엄마의 삶을 변화하게 만들었어. 죽음의 진정한 모습을 응시하려 했고, 죽음에 대한 공포의 실체를 보려고 노력했지. 페트루스가 코엘료에게 죽음을 친구로 두라고 했던 것처럼, 엄마 역시 죽음을 친구로 두면서 남은 삶의 단 하루라도 비겁하게 살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어. 그런 마음은 나를 자유롭게 만들고,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훗날로 미루지 않게 하는 힘을 주었지. 너 역시 그런 삶을 살았으면 좋겠구나.


“삶의 진실이 길 위에 있음을
마음속 깊이 깨닫지 않고는
결코 검에 도달할 수 없다."
- 『순례자』 중에서


우리의 인생은 어디로 흘러갈까? 네가 걷고 있는 산티아고 길은 끝이 있고 목적지가 어디인지 알고 있지만, 우리의 인생길에는 죽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길들이 있어 정말로 알 수 없는 듯하구나. 하지만, “매일의 삶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솔로몬 왕처럼 지혜롭고 알렉산드로스 대왕처럼 강인해질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라는 구절처럼 우리의 일상은 우리를 지혜롭고, 강인한 길로 이끌고 있어.


“삶은 신비로운 산티아고 순례길보다 언제나 많은 것을 가르쳐준다.”라는 말처럼 무엇보다 ‘선한 삶’을 추구하며 편안한 호흡으로 사랑과 평화, 우주와의 조화가 네 속에 들어올 수 있도록 집중해서 세상과 조화를 이루면 나뭇가지 부러지는 소리, 새의 날개소리, 강물소리를 들을 수 있고, 무엇보다 너를 잘못된 길로 이끄는 사자의 소리도 들을 수 있을게다. 그러다 보면 너는 너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고, 냉엄한 현실 감각을 가진다면, 혹시라도 너를 잃고 네가 증오하던 모습을 네가 가지려고 할 때 차갑게 너를 인식하고 멈출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카미노 데 산티아고’ 순례를 마친 순례자들은 땅끝 피니스테라에 도착하여 그동안 입었던 낡은 옷과 신발을 태운다고 하는데, 내 일상의 순례길 끝에서 나는 무엇을 태워야 할까? 네가 옷가지와 신발을 태우며 새로운 널 만날 채비를 하는 날. 나는 나의 무엇을 태워야 할까? 앞으로 네가 남은 길을 걸을 동안 엄마 역시 엄마의 길을 걸으며, 내가 태워버려야 할 것들을 생각해보려고 한다. 걸어온 길보다 걸어가야 할 길이 더 남아 있는, 그래서 설렘도 더 많은 여행길. 너의 건강을 바라본다.


때로는 혼자서, 또 때로는 함께 하며 온전히 너를 느끼기 위해 네 두 발로 땅을 내딛는 딸아. 엄마는 언제까지고 너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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