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들의 편지 09
내가 출발하기 전부터 엄마는 그랬어.
“산들아 그 길의 끝에서 사람들은 신발을 태우기도 하고 옷을 태우기도 한대. 길을 다 걷고 나서 뭘 태울지 너도 생각해 봤니?”
라고. 그냥 지나가는 소리일 수 있는데도 나는 사실 그게 마음에 걸렸어. 종종 날 붙잡았어. 이 길의 끝에서 나도 무언가를 태울 수 있을까? 태울걸 못 찾으면 어떡하지? 다녀와서 고작 할 말이 "나 한 달 걷다 왔어."라는 말뿐이면 어떡하지? 하며. 걷다가 아무리 힘들어도 버스는 타지 않고 온전히 다 걸어낸 것이, 걷는 게 좋았기도 했지만, 혹시나 내가 할 말이 없을 때 "나 , 정말 한 번도 버스 안 타고 다 걸었어! "라고 말하려고 그런 것도 조금은 있었어.
나는 걸을 땐 용감했지만 그 끝은 사실 무섭기도 했거든. 엄마는 다큐멘터리에서 봤다며 산티아고에서 세상의 끝인 피니스테라까지 다시 3일을 걸어 바다를 바라보고 신발을 태우라는 낭만적인 그림을 말했는데, 나는 귓등으로 들었어. 사실 나도 그런 그림을 그려봤었거든. 이 세상의 끝이라는 해안에서, 바다를 보며 타들어가는 낡아버린 신발, 노을, 사람들 이런 것.
근데 걸어보니까 나는 아니더라. 나는 산티아고가 정말 좋거든. 한 달간 나와 발을 맞춘 사람들이 나를 안아주고 맞이해주는 이곳이 너무 좋아. 같이 땀 흘리던 사람들과 옹기종기 모여 같이 향로 냄새나는 성당에서 미사를 드리는 것도, 골목마다 마주치는 것도, 정말 좋아. 세상의 끝이 아니더라도 곧 헤어질 걸 아니까, 굳이 태우지 않아도 준비가 되어있으니까. 그렇게 나는 같은 길을 걸은 사람들과 산티아고에서 4일을 함께 했어.
이미 잃어버리거나 놓아두고 온 물건들에 미련도 없어. 걸음걸음마다 꾹꾹 밟아서 이미 잘 보냈거든. 나는 정말 솔직하게 걸었고, 그런 나와 함께 걸어준 사람들에게 고마워. 그 길에 있어준 사람들, 가리비 무늬, 구름, 달, 하늘에게. 다 고마워.
나는 밤 버스를 타고 이제 마드리드 국제공항에 왔어. 나 혼자 온 줄 알았는데 힘이 되어 줬던 광주 이모도, 보스턴의 친구도 각자의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어.
엄마. 나는 신발을 태우진 않을 거야. 산티아고는 떠나겠지만 나는 계속 순례자일 거고, 힘차게 계속 걸을 거거든.
아직 집에 가려면 두 달이나 남았는걸. 그때까지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