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편지 11
“엄마. 내 속에 숨어 있는 단호함을 만나면서 조바심과 열등감을 버렸어. 이젠 땅바닥에 누워 있어도 행복해. 걱정하지 마.”
카미노 데 산티아고를 걸으며 과거를 떠나보내고, 너는 또 한달음에 난민센터로 달려가 봉사활동을 하고 있구나. 자신을 발견한 순간 또다시 세상의 가장 낮은 곳, 아픈 곳에서 시대정신을 생각하고 있는 너를 보니 내 가슴마저 꽉 차오른다.
“여행의 진정한 의미는 새로운 풍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가지는 데 있다.”라고 하던 마르셀 프루스트의 말을 떠올려보면 너의 이번 여행은 길 위에서 우정과 인간애를 키워가는 삶을 찾게 된 데 의의가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브뤼셀에서 기차로 한 시간 거리인 리에지에서 삼십 분이나 가야 하는 에이와일, 그곳에서도 버스를 타야 하는 작은 동네, 논세벅스의 난민센터는 대체로 내전이나 IS의 침공으로 삶의 터전을 등지고 숨죽이며 국경을 넘어야 했던 망명 신청자들이 머무는 곳이더구나. 난민 자격을 얻고 체류허가를 받아 안정적인 삶을 꾸려가는 것이 목적인 망명 신청자들이 새로운 환경에 정착할 수 있도록 적십자에서 숙소와 식사, 교육과 문화, 스포츠 활동 그리고 의료적인 지원을 하는 난민센터. 그곳의 망명 신청자들은 난민자격을 얻기까지 벨기에 정부와 두 차례의 인터뷰를 가져야 하는데, 일이 년 정도의 시간이 걸리고 또 신청자의 10%만이 난민자격을 얻는 형편이어서 난민으로 인정받지 못하면 무조건 벨기에를 떠나야 하는 기약 없는 내일 앞에 놓여 있다고 했지.
"엄마, 시리아,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파키스탄, 소말리아 등지에서 온 209명의 망명 신청자들이 있는 곳이야."
"봉사자들은 전부 10명이야. 멕시코, 프랑스, 터키, 벨기에, 일본 등 세계 각지에서 온 젊은이들로 구성된 봉사자들이야."
"망명 신청자들이 긴장 속에서 살아가거든. 이 사람들의 꿈을 응원하는 게 우리 일이야."
"요리, 페인트칠, 아이들의 교육 도우미 등 다양한 활동으로 활력을 불어넣고 있어."
"그런데 이 사람들이 용돈을 털어서 맛있는 요리를 하고는 봉사자를 초대해서 오히려 우리가 더 힘을 얻고 있어."
간간이 소식을 전하면서 너는 눈물도 흘렸어. 고향에 있는 가족과 연락이 끊겨 힘들어하는 이라크 아저씨, 고향에 두고 온 부모님의 안부를 걱정하는 열여섯 살 쿠르드족 남자애, 2차 인터뷰에서 난민자격을 얻지 못해 고향으로 돌아가야 할 위기에 몰린 아프가니스탄 총각, 압박감과 우울증으로 소동을 벌인 이란 아저씨가 센터를 떠나야 했던 사실에 가슴 아파했고, 그곳보다 더 열악한 난민캠프들, 예를 들면 요르단, 아프리카, 레바논 지역을 떠올리며 난민으로 내몰린 사람들의 인권을 걱정했어.
사랑하면 알게 된다고, 아침마다 신문에서 난민 관련 기사가 눈에 띈다. 지난 리우 올림픽에서는 최초로 10명의 선수로 꾸려진 난민올림픽대표팀이 참가해 가장 긴 박수갈채를 받기도 했는데, 이번에는 축구를 마음껏 할 수 있는 자유를 찾아 망명 신청을 했던 아프가니스탄의 여자축구대표팀 주장이 네덜란드에서 난민자격을 인정받았다는, 해외 난민캠프에 머물다 한국행을 선택한 미얀마 카렌족 34명의 이야기가 보이는구나. 지금 이 순간에도 유엔 난민기구에서는 원치 않는 피란길에 오른 난민이 새로운 생계 수단을 찾을 수 있도록, 또 새로 정착한 곳에서 생업을 이어나가 평범한 일상을 되찾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한다고 한다. 그렇지만 여전히 난민들의 환경은 열악해서 지난해 터키에 들어간 시리아 난민 중 아동 40만 명이 불법노동현장에 있고, 1500원이 채 되지 않는 시급을 받으며 하루 12시간씩 공장에서 일하고, 프랑스 북부 칼레에서는 6500여 명이 사는 난민촌 철거 작업이 시작되어 철거에 반대하는 난민들과 경찰의 충돌이 있었다는구나.
사람은 얼마나 많은 길을 걸어야
사람이라고 불릴 수 있을까?
흰 비둘기는 얼마나 많은 바다를 건너야
모래밭에서 편안히 잠들 수 있을까?
얼마나 많은 포탄이 날아가야
영원히 포탄 사용이 금지될 수 있을까?
친구여, 그 대답은 바람결에 흩날리고 있다네.
그 답은 불어오는 바람 속에 있다네.
- 밥 딜런(Bob Dylan), ‘바람에 실려서(Blowin’ In The Wind)’중에서
난민센터에서의 보름이 긴 시간은 아니어서 그들을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그들의 삶에 시선을 돌릴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값진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네 작은 힘으로 큰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지만 따뜻한 숨결로 그들을 보듬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우리에게 만화 ‘땡땡의 모험’으로 유명한 에르제의 고향이기도 한 벨기에. 미지의 세계를 향해 돌진한 모험소년이었던 땡땡처럼 너 역시 그곳에서 세상의 약자, 소외된 사람들을 향해 달려갈 수 있는 넉넉한 가슴을 키워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