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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아 숨쉬는 그녀 Apr 07. 2020

그리운 쿠타 해변의 친구들

발리에서 나이를 잊다 07

       

“엄마, 쿠타 해변이 봉쇄되었대. 마로안 친구들이 걱정돼. 그 사람들,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사람들인데.......”     


코로나 바이러스가 발리에까지 확산되어 외국인들의 입국이 금지되자, 지난 1월에 다녀온 발리가, 발리의 친구들이 걱정되는 산들. 특히 마로안의 스텝들 대부분이 같은 또래라 여간 마음이 쓰이지 않았다.   세계 곳곳을 여행하다 보면 내가 여행한 곳이 더 이상 남의 나라, 남의 도시가 아니라 내 친구의 나라, 내 친구의 고향이 된다.         

       




“Mama, 산들이는 몇 살이에요?”

“96년생이야.”

“그럼 나랑 동갑이에요. 나도 96년생이거든요.”

“그래? 사실은 마지막 수업일이 산들이 생일이야.”

“정말이요? 산들이를 위한 깜짝 파티를 열어야겠어요. Mama, 산들이한테는 비밀이에요. 절대로 말하면 안 돼요.”     


쿠타에 머무는 내내 서핑 강습을 받았던 마로안. 지용을 비롯한 그곳의 스텝들은 참으로 친절했다. 마로안에는 총 5명의 스텝이 있었다. 30대인 촐록을 제외하면 모두가 20대였다. 처음에는 그들이 동업자인 줄 알았다. 그런데 주인은 따로 있었다. 마로안에서 서핑 강습을 받은 지 10일째 되는 날 주인을 보았으니, 일은 스텝들이 하고 수익의 대부분은 주인이 가져가는 셈이었다. 쿠타 해변에서 일하는 스텝들은 대부분 가난한 섬, 수마트라와 자바에서 일자리를 찾아왔다고 했다. 마로안의 스텝들도 마찬가지였다.      



해변의 서핑 스쿨은 대개 바를 겸하고 있었다. 스텝들은 때로는 코치가 되기도, 때로는 바텐더가 되었다. 전문적인 서핑 스쿨이 아니어서 서핑을 가르쳐주고 수익을 얻기는 어려웠다. 주 수입원은 해변에서 파는 음료와 술이었다. 블로그를 보고 찾아간 마로안 서핑 스쿨은 해변에서 제법 유명한 곳이었지만, 오래된 스텝은 아리밖에 없었다. 나머지 스텝들은 그곳에서 일한 지 6개월째라고 했다. 그러니 서핑 실력이 뛰어나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우리는 스텝들과 정이 들어서 그냥 그곳에서 열흘 동안 강습을 받았다.      


“Mama, 왜 두 사람만 왔어요? 산들이 아빠는 왜 안 왔어요?”     


산들이는 촐록에게 강습을 받으면서 항상 나보다 늦게 수업을 마쳤다. 그러다 보니 산들이를 기다리면서 나 역시 스텝들과 친해졌고, 지용과는 개인사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달랑 모녀만 와서 한 달 동안 발리에 있겠다고 한 우리가 다소 이상해 보였던 모양이었다. 산들 아빠가 돌아가셔서 우리 가족은 두 사람밖에 없다고 했더니 지용 역시 7년 전에 아빠가 돌아가셨다고 했다. 아마도 자신과 비슷한 처지고, 내가 자신의 엄마와 비슷한 나이였기 때문인지 유난히 친근감을 보였다.     


서핑 강습 마지막 날. 산들이의 생일이라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된 지용이 깜짝 파티를 열어주겠다더니 정말로 깜짝 이벤트를 벌였다. 서핑을 마치고 의자에서 쉬고 있을 때, 스텝인 아리가 산들에게 생일 축하한다고 무심히 말했다. 그게 시작이었다. 스텝들은 밀가루를 뿌리고 머리에 계란을 깨뜨리며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주었다. 덕분에 산들이는 잊지 못할 추억을 간직하게 되었다.      


“생일에 밀가루를 뿌리고, 계란을 터뜨리는 건 오래 살라는 의미예요.”     


우리는 준비해 간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스텝들의 사진을 기념으로 한 장씩 선물로  나눠주고 아쉬운 작별인사를 해야 했다.      


아침 10시부터 저녁 7시까지 일한다는 그들 각각의 사연들을 듣다 보면 마음 한 구석에 다들 아픔이 있는 청춘들이었다. 그래도 다들 꿈을 간직하며 열심히 살아가던 청년들이었다. 올해 12월까지 일하고, 돈을 모아서 고향으로 가고 싶다는 그들의 꿈을 응원해주며 작별인사를 했었다. 한국에 돌아오고 나서도 지용을 비롯한 마로안의 친구들은 산들에게 페이스북으로 가끔 연락을 전해와 그들과 소통하는 즐거움을 누렸다.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코로나로 지구 곳곳이 힘들어하는 지금은, 바다 건너 먼 곳에서 마음 아픈 소식은 전파를 타고 순식간에 전해져 오지만, 하늘 길은 막혀버렸다. 쿠타 해변이 봉쇄되고, 발리에 외국인 출입마저 금지되면서, 일자리를 잃고 생활이 막막하기만 하다는 친구들에게 우리는 어떤 도움도 줄 수 없으니 안타까울 뿐이다.      


30만의 원주민과 일자리를 찾아 인도네시아의 여러 섬들에서 유입된 인구 10만이 관광객을 기반으로 살아가는 발리. 그곳의 경제는 관광객에 의존해 있다고도 볼 수 있어 관광객들이 찾아들지 않는, 텅 빈 해변에서 망연자실할 친구들이 더 마음 쓰인다. 언제쯤이면 햇살을, 파도를 즐기러 그곳으로 갈 수 있을지? 지금 당장 내가 사는 이 땅의 삶도 녹록지 않지만 발리가 내 마음에서 맴도는 것은, 그곳이 단지 남의 나라가 아니라 내 친구가 사는 곳이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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