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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아 숨쉬는 그녀 Mar 26. 2020

코치를 양보해!

발리에서 나이를 잊다 06

 

서핑 4일째. 타이 마사지를 받아 한결 개운해진 몸으로 시작한 아침. 서핑하러 가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산들이도 스텝 2를 시작할 거라며 기대에 부풀었다.         




  

다른 날보다 일찍 해변에 도착해 스트레칭을 하며 서핑을 준비했다. 어제처럼 촐록이 두 사람을 같이 가르치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새로운 코치가 왔다. 촐록은 나를, 새 코치가 산들이를 가르친다고 했다. 서핑하는 틈틈이 산들이 쪽을 보니 산들이는 보드 위에 하염없이 누워있다. 뭔가 잘 안 되는 모양이었다. 촐록이 산들이를 가르치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그 역시 나와 같은 생각이었던 모양이다.      


“Mama, 제가 산들이를 가르치는 건 어떨까요?”

“좋지. 나는 괜찮으니까 촐록이 산들이를 가르쳐 줘.”     


코치를 바꾸기로 했다. 촐록은 산들이를, 새 코치가 나를 맡았다. 우리 같은 초보자는 파도를 보는 눈이 부족하기 때문에 코치의 도움이 필요했다. 적당한 파도 고르기, 패들링을 시작해야 할 때, 일어서야 할 때를 가르쳐주면 한결 수월했다. 코치를 바꾸고 보니 촐록이 그런 면에서 아주 좋은 코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새 코치가 계속 파도를 놓쳐 나 역시 보드 위에서 휴식을 취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전날부터 스텝 2를 시작했던 나는 보드 위에 누워 기다리고 있자니 좀이 쑤셨다. 다시 스텝 1로 되돌아간 느낌이었다. 파도에 고꾸라지더라도 도전해보고 싶었다. 코치 없이 혼자서 파도를 선택해 패들링을 하고 싶은 욕구가 스멀스멀 올랐다. 시간이 흐르고 코치가 피곤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코치가 나에게 괜찮으냐고 물어야 하는데, 오히려 내가 코치를 걱정해야 할 지경이었다.      


“Mama, Mama는 몇 살이세요?”

“50대야.”

“50대라고요? 와, Mama는 진짜 건강하시네요.”

“응, 내가 좀 건강해. 이번 여행에서 내 미션이 서핑이야. 열심히 해서 서핑을 잘하고 싶어.”     


의욕이 넘치는 나는 계속 연습하고 싶었지만, 코치는 피곤해서 도저히 더 못하겠다며 쉬자고 했다. 혼자서 더 하고 싶었지만 코치의 체면을 세워주기로 했다. 돌아보니 산들이는 여전히 연습 중이었다. 휴식 후에 다시 연습에 돌입했다. 피곤해하는 코치에게 혼자서 연습하겠다며 보드를 들고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혼자서 파도를 봐가며 패들링을 하고 보드 위에 일어서며 수없이 물속에 곤두박질쳤다. 간간이 성공하는 희열도 맛보았다.    

  

보드 위에 앉아 주변을 둘러보는 여유도 생겼다. 쿠타 해변은 서핑 초보자에게 적합해 서퍼들로 붐볐다. 초보자들은 대체로 롱 보드로 파도를 수직으로 타는 서핑을 즐겼고, 상급자들은 숏 보드로 파도의 꼭대기를 날듯이 타고 다녔다. 때로는 성공하고 때로는 실패해서 물속에 곤두박질치는 것은 초보자든 상급자든 마찬가지였다.

       

“Mama, 포기하지 말아요. 서핑은 누구나 할 수 있어요. 불가능한 일이 아니에요. 저를 보세요. 저도 처음에는 못 했어요.”

“Mama, 저도 숏 보드를 타기까지 3개월이 걸렸어요. 연습하고 또 연습했어요. 지금도 매일 연습해요. 그러니까 Mama도 연습하면 아주 잘할 수 있어요.”     


어느 결에 산들이를 가르치던 촐록이 와서 나를 도와주며 격려했다. 촐록은 학생을 힘나게 하는 재주가 있었다. 조금만 잘해도 엄지를 치켜올리거나 하이파이브를 하며 잘했다고 칭찬했다. 그리고는 한 번 더 해보라며 부추겼다. 그 덕분에 파도에 몇 번씩이나 곤두박질쳤지만 계속 도전할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     

 


엄마, 나는 촐록이랑  맞아. 오늘  잘하지 않았어?”

“그래. 너 오늘 진짜 잘하더라. 어제보다 훨씬 잘했어.”

“엄마가 나한테 촐록 양보해주면 안 돼? 엄마는 나보다 오래 있을 거니까, 내가 떠난 후에 촐록한테 배우고.”

“그렇게 해. 네가 촐록이랑 해. 나는 이제 혼자서 도전해야 할 때잖아. 내가 다른 코치랑 할게.”

“고마워. 촐록은 37살이래. 초등학교 2학년인 아들이 한 명 있다고 하더라고. 아들이 학교를 마치면 이곳으로 데리고 와서 함께 살고 싶다고 하더라고. 촐록은.....”     


마치 초등학교에 입학해 담임선생님 이야기를 들려주듯, 집으로 오는 내내 촐록 이야기다. 직업이 교사인 나는 또 직업 정신이 발동해 나를 생각했다. ‘나는 어떤 교사일까? 학생들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할까? 어떻게 소통해야 할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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