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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아 숨쉬는 그녀 Mar 22. 2020

엄마와 딸의 발리

발리에서 나이를 잊다 05

  우기라더니 하루에도 몇 번씩은 꼭 비가 내린다. 새벽부터 스콜처럼 비가 퍼붓더니 아침이 되자 거짓말처럼 비가 그쳤다. 비 덕분에 하루 쉴 수 있겠다며 좋아했는데, 생각을 접어야 했다. 쨍한 햇살이다.     


   


        


“산들아, 오늘은 서핑 하루 쉬면 안 될까? 너무 힘드네. 몸이.”

“안 돼. 매일 할 거야. 쉬고 싶으면 엄마만 쉬어.”     


서핑에 대한 의욕이 불타 제대로 탈 때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서핑에 도전하겠다고 하는 산들.  별 수 없이 원래 계획대로 매일 아침 바다로 가야 할 모양이다. 서핑을 시작하기 전만 해도 나 역시 의욕에 불탔지만 파도에 부서지고 넘어지고 패들링 했더니 온몸이 근육통으로 아팠다. 견뎌내기 힘들어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스멀스멀 올랐다. 역시, 나이는 못 속인다.      


시장에서 사둔 망고와 파파야, 미숫가루로 후다닥 아침을 먹고 또다시 해변으로 출발. 숙소에서 해변까지 30분. 걷기에는 다소 먼 거리이지만 서핑 전에 몸 풀기로는 그만이다. 눈뜰 때만 해도 온몸이 아파서 서핑 따위는 하고 싶지 않았는데 걷다 보니 뭉친 근육이 풀려 다시 서핑에 대한 의욕이 생겼다.      


“엄마, 내 코치는 별로야. 잘 못 가르쳐. 엄마 코치가 더 좋은 것 같아.”

“그렇지. 촐록이 훨씬 더 잘 가르치는 것 같아.”

“어제 내 코치는 파도를 잘 볼 줄 몰랐어. Confusing! Confusing! 하면서 계속 기다리라는 거야. 그래서 내내 보드 위에 누워서 기다리기만 했다니까.”

“네가 서핑보드 위에 누워있기만 해서 왜 그러나 했는데, 그랬었구나.”

“초보자는 코치가 중요한데....”     


서핑 자세, 코치 이야기 등을 하다 보니 해변으로 가는 길이 짧기만 했다. 이틀 동안 서핑을 해보니 20대의 산들이 보다 50대인 내가 더 빨리 서핑보드에 적응했다. 첫날부터 서핑 보드 위에서 쉽게 균형을 잡고 파도를 탄 나와 달리 산들이는 균형을 쉽게 잡지 못 했다. 산들이는 내가 코치를 잘 만난 것이라며 부러워하기도 했다. 그런 산들이의 마음을 알아서였을까? 오늘은 촐록이 나와 산들이를 한꺼번에 가르친다고 했다. 산들이는 환호성을 질렀다.      


서핑하기에 아주 좋은 파도였다. 힘도 적게 들었다. 서핑에서는 파도가 중요했고, 파도를 볼 줄 아는 눈이 있어야 했고, 두려움을 없애야 했다. 바람이 너무 많이 불어도 힘들고, 파도가 너무 잔잔해도 안 되고. 파도를 하염없이 기다려야 했고, 또 때로는 파도를 보내야 했다. 너무 큰 파도가 오면 파도 아래로 몸을 피해야 했고, 작은 파도는 가볍게 뛰어넘어야 했고, 내가 감당하기 힘들 것 같은 파도에 도전하는 용기를 내야 했고, 파도에 부딪혀 넘어져야 했고, 좋은 파도라고 생각하고 도전했지만, 뒤이어 오는 파도에 곤두박질치기도 했다. 인생살이가 그렇듯, 파도에도 때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내 의지와 능력이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안 될 때가 있다는 것도 알았다.     


산들이는 여전히 스텝 1. 나는 스텝 2로 들어갔다. 스텝 1은 강사가 보드를 뒤에서 밀어주지만, 스텝 2는 스스로 패들링 해서 보드를 타야 한다. 패들링은 생각보다 힘들었다. 파도가 오는 속도에 맞춰 두 팔을 쉴 새 없이 저어야 해서 몇 번 반복하다 보니 팔에 힘이 다 빠지기도 했다. 그래도 선생님 한 명에 학생 두 명이 수업을 받으니 훨씬 수월했다. 촐록이 번갈아가면서 서핑보드를 밀어주거나 파도를 봐주니 덜 힘들었다. 서핑 보드에 누워 쉴 수도 있었다. 대신에 촐록이 힘들었다. 쉴 틈이 없었다. 매일 서핑 강습을 해서인지 눈알이 빨갰다. 마음 같아서는 서핑을 더하고 싶었으나 촐록이 너무 힘들 것 같아 한 시간으로 마무리했다.     

 


“엄마, 앉아봐. 내가 매니큐어 발라줄게.”     


산들이는 첫날보다 보드 위에서 훨씬 더 잘 균형을 잡고 파도타기에 성공해서, 나는 스텝 2로 들어가서 기분이 좋았다. 오는 길에 셀카 놀이도 하고, 시원한 스무디볼과 점심을 먹으며 만끽했던 즐거움이 집에서도 이어졌다.  매니큐어를 발라주겠다는 산들에게 손을 맡기고 앉았다.   

   

마치 어린 날, 엄마에게 봉숭아 꽃물을 들여 달라고 떼를 쓰며 햇살 드는 툇마루에 앉아 있던 시간으로 돌아간 듯했다. 농사일로 바쁜 시골 살이로 엄마는 몸치장에 관심이 없었다. 아니 그럴 시간이 없었다. 머리를 빗겨주고, 예쁘게 땋아주는 엄마였으면 하는 내 꿈도 당연히 몰라줬다. 그저 나는 바쁜 농사일 틈틈이 뒤치다꺼리해야 하는 아이 중의 한 명이었을 뿐이었다.      


‘나는 엄마처럼 살지 말아야지, 나는 딸아이를 반짝반짝 빛나게 해 줘야지.’라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 바쁜 직장 생활로 이웃집 아주머니가 아이들 돌봐야 했고, 나보다 늦게 출근하는 남편이 딸아이를 등교시켰고, 저녁에도 딸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적었다. 나 역시 지난날의 엄마처럼 딸아이의 소박한 꿈들을 몰라줬다. 그런데 이제는 성인이 된 산들이가 엄마인 나를 빛나게 한다.      



“엄마, 어떤 색이 더 좋아? 흰색? 반짝이? 파란색?”

“나는 잘 모르겠어. 네가 하고 싶은 걸로 해.”     


어떤 색이 어울릴지, 누구 손톱이 더 긴지, 아빠를 닮았네, 엄마를 닮았네. 수다를 떨며 손을 내밀다 보니 나를 반성하게도 했다. 딸 노릇 제대로 하지 못하는 나를. 무뚝뚝한 나를. 한국으로 돌아가면 산들이가 내게 하는 것처럼, 엄마에게 다정한 딸이 되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엄마, 우리 마사지로 피로를 푸는 것은 어때?”     


바쁘게 움직이던 예전의 여행과 달리 이번 여행은 모녀를 위로하는 시간이 되었다. 서핑과 수영, 산책이 하루 일과의 대부분. 앞서거니 뒤서거니 어두운 밤길을 서로 의지하며 돌아오는 길.      


“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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