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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아 숨쉬는 그녀 Mar 17. 2020

타짜의 손, 발리의 환전상!

발리에서 나이를 잊다 04

  

“발리에서는 환전할 때 조심해야 해요. 정말 기막힌 솜씨로 돈을 빼간다니까요. 말로 설명할 수가 없어요. 진짜 쉽게 당해요. 그 자리에서 정확한 금액을 확인해야 해요.”라고 말하던 옆 자리 승객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다. 지금까지 여행하면서 한 번도 그런 실수를 하지 않아서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당했다. 그것도 눈앞에서. 두 번씩이나.           





“엄마, 100달러를 환전했거든. 그런데 돈이 모자라. 쓴 데도 없는데, 왜 모자라지?”

“잘 생각해봐. 어디에 썼겠지.”

“산 게 별로 없다니까. 어제 슈퍼에서 물건 사고 돌아올 때 비닐봉지가 찢어져서 주스 병이 바닥에 떨어졌는데, 숙소에 와서야 그걸 알았거든. 그때 찢어진 비닐봉지 사이로 돈이 날아갔나 봐.”

“지폐가 비닐봉지 사이로 사라진다는 게 말이 돼? 잘 찾아봐.”     


서핑 보드 위에 성공적으로 선 것을 기념해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었다. 계산을 하려는데 돈이 모자랐다. 서핑 레슨비도 하루치만 내었기 때문에 돈이 모자랄 리가 없었다. 카드로 밥값을 지불했다. 산들이는 어디서 돈을 잃어버렸는지 모르겠다며 비닐봉지 사이로 돈이 떨어진 것으로 결론 내리고 앞으로 조심하기로 했다.      


“엄마, 내가 환전한 곳의 환율이 진짜 좋았거든. 아저씨도 친절하고. 그곳에서 환전하자.”     


다음날 아침, 서핑 레슨비도 내야 해서 150달러를 더 환전해서 해변으로 가기로 했다. 산들이가 환전한 곳보다 환율이 더 좋은 곳을 발견했다. 오래된 음반과 CD를 파는 가게였는데, 환전 창구가 가게 안쪽 깊숙이 있었다. 환전상은 10만 원짜리 대신 5만 원짜리 루피아로 지폐를 20잔씩 쌓아놓고는 우리에게 확인하라고 했다.      


“아저씨, 돈이 한 장 모자라요.”

“그래요? 이리 줘보세요. 다시 확인할게요.”     


환전상은 내가 헤아리는 걸 눈으로 직접 확인했지만, 나에게서 다시 돈을 받고는 장 한 장 헤아렸다. 그러고선 모자란 만큼 돈을 더 주었다. 눈앞에서 헤아리는 것을 직접 봤기에 다시 확인할 필요를 느끼지 못해 의심하지 않고 그대로 돈을 받고 나왔다. 그러고선 환율이 좋아 다행이라며 기뻐했다. 공식 환율 13,900이었는데, 환전소 환율 14,800이니까 그만큼의 이득을 본 것이다.      



레슨비를 내기 전까지는 즐거운 기분이었다. 룰루랄라 즐거운 기분으로 사진도 찍어가며 서핑 장소에 도착했다 짐을 맡기고 서핑 레슨도 받았다. 하지만 즐거운 기분은 오래가지 않았다. 서핑 후 일주일치 레슨비를 한꺼번에 내려고 했는데, 레슨비가 부족했다.      


“엄마, 또 돈이 모자라. 왜 이렇지?”

“잘 헤아려봐. 우리 환전하고 아무데도 안 들렀잖아. 다시 확인해 봐.”     


확실히 돈이 모자랐다. 무슨 영문일까? 마로안 스태프들이 돈을 훔쳤을 리는 없었다. 서핑하다가 돈을 잃어버렸다는 소문이 인터넷에 퍼지면 망할 테니 그런 짓을 할 리가 없었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갑자기 우울해진 우리는 돈이 모자란다며 하루치만 내고 다음날 돈을 지불하겠다고 했다. 집으로 걸어오며 우리는 왜 돈이 없어졌는지를 생각해야 했다.      


“산들아, 혹시 환전소에서 문제가 생긴 것 아닐까?”

“우리가 확인했잖아.”

“그렇지. 확인했지. 그런데 아저씨한테서 마지막으로 돈을 받았을 때는 다시 헤아리지 않았잖아. 아저씨가 건네주는 돈을 받았던 것이고. 혹시 그 사람들이 사기 친 것 아닐까?”

“어떻게 사기를 쳐. 우리가 보고 있었는데.”

“아저씨가 돈 헤아릴 때 손이 떨리더라고. 우리가 모르는 무슨 비밀이 있을 수도 있지.”

“그럼, 첫날 내 돈이 없어진 것도 환전소에서 없어졌나? 아저씨가 진짜 친절했거든. 그래서 엄마 오면 다시 환전하러 오겠다고 했다니까.”

“엄마 생각에는 두 번 모두 환전상한테 당한 것 같은데. 생각해보니 환전상을 조심해야 한다고 한 것 같더라고. 인터넷에서 검색해볼까?”     


환전 사기를 당한 사람들의 경험담이 많이 보였다. 제대로 계산해서 주는 것처럼 하다가 돈을 슬쩍 빼서 주는, 밑장 빼기 사기를 벌이니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경험담으로 보아 우리도 당한 것이었다. 그것도 두 번씩이나. 조금이라도 이익을 보려다가 된통 당한 것이다.      


“아까 환전했던 곳에 가서 다시 환전해볼까? 어떻게 하는지 보게. 이왕 당한 것, 확인해봐야지.”

“엄마, 거긴 안돼. 그 사람들은 우리 얼굴을 아니까 이번에는 정확하게 줄지도 몰라. 그러니까 환율이 좋은, 다른 곳을 찾아서 환전해보자. 환전상들이 사기 치는 게 맞는지 확인해보는 거지. 그래야 마로안에 대해서도 의심을 안 하지.”     


그렇게 해서 우리는 다시 환전을 하기로 했다. 이번 환전소도 아침과 같은 환율이었다. 그곳 역시 환전 창구는 가게 깊숙이 있었다. 창구로 들어가는 가게 안에는 덩치 좋은 아저씨들이 여럿 있어서 두려운 생각도 들었지만 그들이 우리를 헤치지는 않을 테니 도전해 보기로 했다. 이번에는 100달러 환전. 환전상은 역시 5만 원짜리 루피아를 한 장 한 장 헤아려서는 20장씩 지폐 무더기를 쌓아놓고는 우리더러 확인하라고 했다. 이번에도 돈이 조금 모자랐다. 아저씨가 다시 헤아렸다. 그러면서 모자란 만큼 우리에게 돈을 더 주었다. 이번에는 환전상이 건네준 돈을 다시 돈을 헤아렸다. 그랬더니 아까보다 돈이 더 많이 모자라는 것이었다.      


“아저씨, 돈이 왜 더 모자라요? 다시 헤아려보세요.”     


돈을 세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돈이 줄어들었다. 말로만 듣던 밑장 빼기였다. 드디어 우리가 돈을 잃어버린 이유를 앓았다. 잃어버린 게 아니고 환전 사기를 당한 것이었다. 그것도 두 번씩이나. 환전상들은 타짜의 손이었다. 환전상들은 창구 너머에서 한 장 한 장 지폐를 헤아리면서 아래로 돈을 흘리는 것이었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을 잘 알아채지 못하는 것이고. 그러니까 돈을 건네받아 다시 확인하지 않으면 절대로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결국, 우리는 환전을 포기하고 ATM에서 현금을 인출했다. 산들이는 돈은 잃어버렸지만 마로안에 대한 의심을 안 해도 되어서 기뻐다며 좋아라 했다. 그러면서 다시 환전소에 가보자고 졸라댔다.       

 

“엄마, 우리가 200달러를 환전하는 거지. 그래서 처음에 헤아렸을 때 돈이 모자라면 모자란 대로 받아오는 거야. 그러면 계산상으로 우리가 이익이야. 공식 환율보다는 좋으니까. 그래 볼까? 환전상들이 어떻게 나오나 보게.”

“아이고, 됐네요. 뭐하려고 그래. 이제 공식 환전소만 가자. 아니면 ATM에서 현금 인출하고. 신경 쓰기 싫어.”     


타짜의 손, 환전상. 쿠타에는 환전소가 정말 많다. 한 집 걸러 환전소인 셈. 공식 환전소보다 훨씬 더 환율이 좋다면 타짜의 손을 가진 환전상에게 사기를 당할 확률이 높다고 보면 될 것이다. 두 번의 환전으로 8만 원 정도를 잃고 생각해 봤다. 사기를 친 사람도 나쁘지만, 작은 이익에 눈멀어 다짜고짜 달려갔던 우리 역시 나빴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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