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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아 숨쉬는 그녀 Mar 14. 2020

서핑보드에 몸을 싣고

발리에서 나이를 잊다 03

   

겨울 여행지를 묻는 사람들에게 “서핑 여행 갈 거예요. 발리에서 한 달 동안 서핑하려고요.”라고 호기롭게 말했다. 마치 서퍼가 된 것처럼. 그러면서도 여행을 떠날 때까지 서핑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없었다. 서핑을 시작해야 하는 아침, 처음으로 동영상을 보며 서핑 예습을 하기로 했다. 일반인, 연예인 등 많은 사람들의 유튜브 영상이 있었는데, 나와 비슷한 연령대의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그때서야 갑자기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해도 되는 걸까? 50대의 내가 너무 무리한 꿈을 꾸고 있는 것은 아닐까?’          





“엄마, 어제 쿠타 해변에 가서 서핑스쿨에 예약해두었어. 우리 둘이 함께하는 조건으로 하루에 3만 원 정도면 돼. 나는 12일 오후에 떠나니까 최대한 9일은 할 수 있어.”

“진짜 저렴하네. 서핑스쿨은 어떻게 찾았어?”

“인터넷 블로그를 살펴보고 평이 좋은 데를 골랐지. 마로안이라는 곳인데, 어제 직접 찾아가서 예약했어.”     


발리에 머무는 동안 하루라도 더 많이 서핑을 하고 싶은 욕심에 도착한 다음날 아침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마치 초등학교 1학년 때 봄 소풍을 가던 아침처럼 설렜다. 숙소에서 해변까지 몸도 풀 겸 걸어서 가려고 했으나 늦잠을 자서 택시를 타고 가야 했다. 아침도 못 먹고 물만 한 잔 마시고 출발했다.      


쿠타 해변. 파도가 부드럽고 고운 모래 바닥이어서 서핑 초보자들에게 딱 맞는 곳이었다. 수업 시작에 늦었을까 봐 조마조마했는데, 서핑하기에 파도가 작다며 좀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10시 30분. 드디어 레슨이 시작되었다. 서핑보드의 종류, 서핑보드의 구성요소에 대한 설명을 간략하게 한 다음 연습에 들어갔다.  우선, 모래사장에서 보드에 누워 균형 잡기,  누웠을 때 발의 위치, 패들링 하는 법. 일어섰을 때 발의 위치와 각도, 균형 잡기, 일어서기를  반복했다.      



드디어 바닷물로 들어가야 할 때. 먼저 서핑 보드와 나를 연결하는 리시코드를 발목에 채웠다. 파도를 타야 하는 서핑에서 리시코드는 중요한 생명줄이었다. 난생처음으로 해보는 서핑. 두렵고 설레고 흥분되는 느낌을 뒤로하고, 발목에 채워진 리시코드 때문에 어그적 어그적 걸어서 바닷물로 들어갔다.      


“얼굴이 새까맣게 타고 머리 밑이 화상 입을 수도 있으니까 선크림은 물론 모자를 반드시 써야 하고, 래시가드를 입어야 해요. 안 그러면 후회합니다.”     


블로그에 소개된 대로 선크림을 잔뜩 바르고, 래시가드를 입고, 끈이 달린 모자를 쓰고 만반의 준비를 한 차림으로 서핑보드 위에 누었다.      


“균형 잡고!”

“발 위치 바로!.”

“준비되었어요? 자, 패들링! 패들링 패들링 패들링.....”

“일어서!”     


강사가 붙잡아주는 서핑 보드 위에 누워서 균형을 잡고 있다가 적당한 파도가 오면 패들링을 시작하고 보드  위에 일어서야 했다. 그런데 일어서야 하는 순간 서핑보드에서 몸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바닷물에 풍덩 빠져 파도에 휩쓸렸다. 두 번째로 물에 빠졌을 때는 몸이 보드 아래로 들어갔다. 세 번째는 무릎으로 서기. 네 번째는 서핑 보드에서 몸이 떨어지고, 두 발을 수평으로 놓고 팔을 펴서 서서 균형을 잡아 파도를 즐길 수 있었다.           


“야호, 성공이다. 내가 파도를 탔다. 내가 파도를 타고 있어.”     


파도에 부딪히고, 물에 빠지고, 넘어지고, 보드 아래로 빠지고, 또 넘어지고..... 그러다가 균형을 잡고 파도를 즐기던 순간이라니! 이런 즐거움을 여태 모르고 살았다니. 짜릿했다.      


“Mama, 정말 잘했어요.”     


나의 강사는 촐록. 자바섬이 고향인 친구였다. 서핑보드 위에서 균형을 잡고 파도를 탈 때마다 촐록은 엄지 척을 하며 나를 칭찬해주었다. 서핑 보드 위에 서지 못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서너 번만에 보드 위에 설 수 있었다.      


“와, Mama는 도대체 나이가 몇 살이에요? 너무 잘해요.”     


딸 산들이와 서핑을 하다 보니, 그곳에서 나는 늘 Mama였다. 서핑 강사들은 대체로 산들이 또래여서 그들에게 나는 아주 자연스럽게 Mama가 되고 말았다.      


촐록의 칭찬에 어깨가 으쓱해졌지만 체력이 부족해서 한 시간 정도를 타고나니 지쳤다. 파도를 기다리며 서핑 보드 위에 누워서 보니, 산들이는 계속 실패다. 산들이는 일어설 때 균형을 제대로 잡지 못해 꼬리 부분에서 두 발을 움직이니 계속 바닷물에 빠지는 것이었다.      


“산들아, 일어설 때 꼬리 부분에서 두 발을 엉거주춤하면 안 돼. 누웠다가 일어설 때 요가의 코브라 자세처럼 팔을 겨드랑이 옆에 붙이고, 힘을 딱! 줘서는 왼발을 보드의 중간쯤에 힘을 줘서 고정하고, 그다음에 오른발은 꼬리 부분에 수직으로 놓아야 돼.”     


나보다 늦게 서핑을 마친 산들이에게 요령을 가르쳐 줬다. 서핑을 하기 전만 해도 산들이는 잘하는데, 나만 못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오히려 50대의 내가 서핑에 소질을 보였다. 이로써 서핑 초보의 첫 시도는 성공적이었던 셈이다. 다음날을 기대하며 첫날은 가볍게 마무리. 서핑의 즐거움을 만끽하며 해변에서 집까지 걸어오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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