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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첫 발리

발리에서 나이를 잊다 02

by 살아 숨쉬는 그녀



“발리로 여행 가세요. 너무 좋아요. 꼭 가세요. 제가 필요한 정보를 다 알려드릴게요.”라며 ‘발리 사랑’을 말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빠듯한 살림살이에도, ‘여행으로 세상을 물려주자’라는 것이 우리 부부의 생각이어서 지출의 우선순위는 여행이었다. 그랬기에 여행지는 중요한 역사적 유산이거나 문명의 발상지거나, 교육적으로 의미가 있어야만 할 것 곳을 선택했다. 20년 넘게 60여 개국을 여행하며 발리는 한 번도 머릿속에 들어있지 않았다. 내게 발리는 신혼 여행지, 휴양지였다. 그런데 발리에서 한 달을 보내고 온 지금, 나는 발리 홀릭에 빠졌고, 또다시 발리로 떠날 순간을 꿈꾼다.






“중심도시는 덴파사르(Denpasar). 인구 4,225,000명(2014). 면적은 5,780 km². 인도네시아 영토이면서도 인도네시아를 능가할지도 모르는 인지도를 자랑하는 섬. 신혼여행지로 명성이 높아 발리로 신혼여행 간다고 하지 인도네시아로 신혼여행 간다고는 하지 않는 곳. 호주와 가까워 호주인들이 바글거리는 곳. 한국의 여름에는 서늘한 건기가 되고, 한국의 겨울에는 푹푹 찌는 우기가 되는 곳. 시원한 발리 여행을 원한다면 여름에, 뜨거운 여행을 원한다면 겨울에 갈 것.”


마일리지로 보너스 항공권을 구입할 때 발리는 동남아시아로 분류된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래서 막연히 가까운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착각이었다. 적도 남쪽에 위치해 있었다. 게다가 겨울이 여행의 최적기라고 생각한 예상과 달리 여름이 최적기였다. 하지만 이미 항공권을 구입했으니 뜨거운 여름을 즐기는 수밖에. ‘우기라고 해도 비는 스콜성으로 내렸다 그치기를 반복하는 편이어서 큰 문제는 되지 않는다.’라는 정보를 보며 좋은 쪽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드디어 출발!


43A. 비상구 좌석이어서 좋아라 했는데 똑바로 앉지도, 다리를 뻗을 수도 없는 자리였다. 비상문이 튀어나와 있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자리였다. 게다가 옆자리 부부는 알콩달콩 먹여주고, 안아주고, 토닥거려 갑자기 혼자라는 걸 느껴야 했다. 영화라도 보며 시간을 보내리라 생각했는데, 화면의 질이 좋지 않아 집중할 수도 없었다. 이 영화 저 영화 뒤적거리고, 신문을 읽고 또 읽고, 잡지를 보고 또 보아도 착륙시간은 멀었다. 게다가 바로 옆은 화장실. 사람들이 오가며 열어젖히는 커튼 사이로 나오는 강렬한 불빛. 난생처음으로 보너스 항공권을 이용해 국적기를 탔는데 저렴한 경유기만 못하다는 생각을 하며 보낸 7시간이었다.


저녁 5시 40분에 출발한 비행기는 새벽 12시 40분, 발리 시간으로 밤 11시 40분에야 도착했다. 생각보다 입국 수속 시간이 많이 걸렸다. 공항을 빠져나오기까지 한 시간. 새벽 한 시가 가까워 오는 시간. 발리에서는 여행 앱 클룩으로 공항 픽업 서비스를 예약하면 편리한데, 불행히도 픽업 서비스 예약은 밤 11시까지 가능했다. 한국에서 출발 전 예약해둔 에어비앤비 숙소에 공항과 숙소 간 교통편을 문의했더니 Blue Bird 택시를 이용하라고 한다. 그러면서 가짜 Blue Bird 택시도 있으니 구별하는 법을 사진으로 보내주기도 했다. 그렇지만 택시 역시 가격을 흥정해야 한다고. 새벽 한 시에 택시와 씨름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 아득했는데, 나보다 하루 일찍 도착한 산들이가 고민을 해결해 주었다.


“엄마, 내가 이용한 클룩 차량 아저씨가 엄마 마중 나가기로 했어. 요금은 숙소에 도착하면 내가 지불하기로 했으니까 걱정 말고 와. 공항에서 환전 안 해도 돼.”

“엄마, 유심카드도 두 개 구입했으니까 엄마는 공항에서 안 사도 돼. 공항에서 와이파이 되니까 도착하면 바로 카톡으로 연락해.”


새삼 딸내미가 고마워지는 순간이었다. 공항에 들어서자마자 무료 와이파이에 접속하니 산들이의 메시지가 와 있다.


“엄마, 아저씨가 벌써 도착해서 기다리고 계신대. 사람들 나가는 곳으로 쭉 따라서 나오면 피켓 들고 있는 사람들 보이거든. 그곳을 지나서......”


대부분의 공항에서 무료 와이파이를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은 암만 생각해도 좋다. 유심 카드를 구입하지 못해도 정보 검색이 가능하고, 연락도 할 수 있으니. 즐거운 마음으로 공항을 빠져나오니 여행객의 이름이 적힌 팻말을 든 사람들의 줄이 어마어마하다. 결국 몇 번의 카톡 끝에 운전기사와 만났다. 집에 와서 짐을 풀고 나니 거의 새벽 두 시, 한국시간으로 새벽 세 시에 가까운 시간이었다.


“엄마, 힘들지. 이것 마셔. 날이 더워서 갈증 날 것 같아서 시원한 음료 준비해놨어.”

“엄마, 내일 아침 10시까지 서핑하러 가기로 예약했으니까 일찍 자야 돼.”

“엄마, 그랩이 진짜 좋네. 배달음식도 시켜먹을 수 있고......”


겨우 하루 일찍 도착했을 뿐인데도 산들이는 마치 현지인처럼 온갖 정보들을 알려준다. 예전에는 내가 딸아이의 보호자였는데, 지금은 딸아이가 나의 보호자가 된 듯했다. 발리에서의 첫날. 다음날 아침에 갈 서핑에 대한 두려움과 설렘을 가득 안고 잠자리에 들었다.


식당 안내 현수막이 줄지어 선 숙소 앞 골목.


하루에 몇 번을 오가도 싫증나지 않던, 쿠타 해변으로 가는 골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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