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서핑을 생각하며, 발리!

발리에서 나이를 잊다 01

by 살아 숨쉬는 그녀


2020년 1월 2일부터 1월 30일까지 발리에서 한 달을 보냈다. 발리 여행은 나를 찾는 여행이었다. 쿠타 해변에서 서핑을 배우고 우붓에서 요가를 했다. 50대의 적지 않은 나이라 두려웠으나 서핑을 하고 요가를 하는 순간은 나이를 잊었다. 서핑 보드에 몸을 맡기고 파도와 호흡하던 순간, 요가 매트 위에서 거친 호흡으로 땀방울을 흘리던 순간, 나는 그저 나였다. 엄마도 딸도 며느리도 교사도 아닌, 오로지 나로서 존재했다.






“산들아, 엄마도 서핑하고 싶네. 저 사람들 보니까 너무 멋지다. 나도 할 수 있을까?”

“충분히 할 수 있지. 한번 해보면 되지. 다음에 같이 할까? 나도 해보고 싶은데.”

“엄마는 나이가 많으니까 할 수 있을지 걱정이야.”

“할 수 있을 거야. 해보는 거지.”


2년 전 겨울. 딸 산들이와 송정 바닷가에 갔다가 서핑하는 사람들을 보았다. 바람이 쌩쌩 부는 추운 날씨에 서핑 슈트를 입고 파도와 싸워가며 보드에 몸을 맡긴 사람들이 멋있어 보였다. 더 나이 들기 전에, 언젠가 나도 꼭 서핑에 도전해보리라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서핑은 내 버킷리스트 중의 하나로 자리 잡았는데, 이번 겨울방학에 기회가 왔다.


2019년 2월. 6개월의 휴직이 끝나갈 때, 치앙마이의 한 시골에서 고3 담임으로 배정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2년 동안 고3 담임을 하며 너무 힘들어서 6개월의 무급 휴직을 신청하고 여행 중이었는데, 또 고3 담임이라니. 휴직한 해를 제외하면 3년째 고3 담임이어서 억울하기도 하고 화도 났다. 그럴 때, 보너스 항공권으로 남프랑스를 여행하겠다는 각오로 20년 동안 모은 대한항공 마일리지가 소멸된다는 항공사의 문자를 받았다. 3월까지 사용하지 않으면 마일리지가 사라진다는.


보너스 항공권으로 여행할 수 있는 곳을 예약해야 했다. 그때 떠오른 곳이 발리였다. 3학년 담임이라 겨울이 되어야만 시간이 날 것 같았고, 겨울에 갈 수 있는 여행지로, 또 서핑을 할 수 있는 곳으로 발리가 최적이었다. 그래서 ‘서핑하는 발리’를 꿈꾸며 항공권을 예약하고는 바쁜 학교생활로 여행에 대한 생각은 잊고 있었다.

1, 2학년들은 12월 23일에 방학이 시작되었지만 고3은 12월 31일이 방학이었다. 수시 전형으로 대학 입학이 정해진 학생들도 있었지만 정시전형에 응해야 하는 학생들도 있어서 정시전형이 끝나는 12월 31일까지 학교에 출근해 상담하며 생활기록부를 마무리하느라 여행 준비는 꿈도 꾸지 못했다.


그럴 때 구원자가 나타났다. 대학 졸업을 앞둔 산들. 디자인 공모전으로 2학기를 바쁘게 보냈던 산들은 기말고사를 친 후 취업 준비 전까지 휴가가 필요하다며 발리 여행에 동행하고 싶다는 의사를 보내왔다. 졸업하고 취업한다면 함께 장기 여행할 기회가 없을 것 같아 딸의 졸업 선물이라고 생각하고 함께 발리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산들이 역시 출발 일주일 전에 여행을 계획한 터라 급하게 항공권을 준비해야 했다. 다행히 저렴한 홍콩 항공권을 구입했다. 35만 원. 홍콩에서 1 박해야 하는 스케줄이었는데, 12월 31일에 홍콩 시민 총궐기 시위가 예정되어 있던 터라 아마도 항공권이 싼 모양이었다. 좀 위험할 것도 같았지만 시위 노선을 검색해서 시내가 위험하면 공항에서 노숙하겠다는 생각으로 출발했다.



드디어 겨울방학. 31일까지 학교에 나가 아이들과 상담하고 자료를 정리하며 바쁘게 보냈기에 여행 준비는 1월 1일 단 하루. 결국 한밤중에야 여행 가방을 쌌다.


책 세 권

노트북

수영복, 운동복, 속옷과 입을 옷

샌들

구급약

미숫가루

화장품


발리는 여름이라 특별히 준비할 것도 없었다. 제일 중요한 수영복과 래시가드만 준비하면 될 터. 동행자와 시차를 두고 출발하니 좋은 점이 많았다. 나보다 먼저 도착한 딸아이가 놓치고 간 것과 필요하다고 알려주는 것들을 챙겨서 출발했다. 먼저 도착한 사람이 필요한 정보들을 주니 마치 여행이 아니라 누군가의 집을 찾아가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노포동 버스터미널에서 인천공항으로 직행하는 버스가 한 시간 간격으로 있었다. 부산에서 인천공항까지는 5시간 30분. 휴게소에서 두 번 쉬고는 바로 공항 터미널. 아주 편리했다. 해외여행을 갈 때 주로 부산에서 출발하는 항공기를 이용했기에 인천공항은 낯설었다. 그래서였을까. 셀프 체크인을 하면서 탑승권을 뽑지 않고 오는 바람에 안내방송으로 호출되기도 했다.


“덴파샤르 행 *** 손님께서는 안내방송을 듣는 즉시 안내 데스크로 와 주십시오. 다시 한번....


그래도 일찍 도착한 덕분에 비상구 좌석을 얻을 수 있었다. 처음에는 일반석이 배정되었다. 좌석 변경이 안 될 거라고 지레짐작하고 포기하려고 했었는데,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좌석 변경을 요청했더니 가능했다. 그동안 차곡차곡 쌓아둔 마일리지가 고맙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새해 꼭두새벽부터 떠나는 여행길. 발리에서는 또 어떤 멋진 순간들을 맞게 될까. 서핑을 잘할 수는 있을까? 무모한 도전이지 않을까? 올해는 뭐든 두려움 없이 도전하리라 마음먹었으니, ‘한번 해 보는 거지 뭐.’‘라는 생각으로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화려한 원색이 아름다운 마을, 친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