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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아 숨쉬는 그녀 Aug 28. 2019

칭다오, 문화의 거리

실크로드를 찾아서 05

“문화의 거리, 그런 곳도 있어요?”     


“네, 칭다오 맥주 박물관 근처라는데, 지도에서 찾을 수가 없어요.”

“문화의 거리는 어떤 곳이지요? 처음 듣는 곳이에요.”

“중국의 전통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곳이래요. 주말마다 벼룩시장도 열린다고 해서 한번 가보려고요.”     


이방인들이 그 도시를 더 잘 아는 경우가 있다. 나 역시 내가 사는 부산을 다 알지는 못한다. 내가 관심 가진 곳만 알고 있다.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다는 부산의 핫 플레이스에 가보지도 못했다. 그래서 나보다도 부산을 찾는 관광객들이 그곳은 더 잘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호스텔의 직원들 역시 마찬가지여서 내가 ‘문화의 거리’에 관해 물었을 때 제대로 아는 이가 없었다. 오히려 그들이 내게 되물었다.      


“사실, 저는 칭다오를 잘 몰라요. 이곳이 고향이 아니에요. 아르바이트로 일할 뿐이에요. 그래서 칭다오의 유명한 관광지에 한 번도 가보지 못했어요.”

“그럼, 손님들이 질문하면 어떻게 해요?”

“손님들의 질문은 대체로 비슷하잖아요. 유명한 관광지의 교통편이라든지 중요한 정보만 알려주면 되니까 괜찮아요. 저도 다음에 호스텔 일을 그만두게 되면 칭다오를 여행하고 싶어요.”     


호스텔을 드나들며 내가 다녀온 곳의 이야기를 들려주면 맞장구를 쳐주던 그들은 칭다오의 유명한 관광지를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고 했다. 칭다오에 사는 그들은 일로 바빠서 칭다오를 여행하지 못하고, 칭다오 바깥의 나는 칭다오를 여행한 셈이다. 이 도시에 살고 있는 이들은 익숙한 도시의 일상을 살아가느라 바쁘고, 여행자들만 호기심으로 낯선 곳을 기웃거리고 있는 셈이었다. 나는 언젠가 그들도 칭다오의 좋은 곳들을 여행하기 바란다는 말로 인사를 나누고 호스텔을 나섰다.      



여행하며 거리 이름을 눈여겨보곤 했었다.      


나라마다 특색 있는 거리 이름들이 많았다. 혁명일이나 독립일을 기념하여 거리 이름에 날짜를 붙인다든지, 작가나 음악가 등 예술가의 이름을 붙인 곳, 외교 관계를 맺은 나라나 도시 이름을 거리에 붙인 곳들이었다. 그래서 그런 거리를 걸을 때마다 거리 이름에 얽힌 역사와 이야기를 머릿속으로 떠올리곤 했는데, ‘문화의 거리’는 어떤 느낌일지 궁금했다. 내가 사는 곳에는 없는 거리 이름에 매혹되기도 했고, 주말마다 골동품을 판매하는 노점이 열린다는 여행서의 문구가 나를 유혹하여 큰 정보 없이 문화의 거리를 찾아 나섰다.     

 

이른 아침이어서인지 거리는 한산했다. 가게들은 아직 문을 열지 않은 곳이 많았고, 길거리에 전을 펼쳐놓은 사람들도 별로 보이지 않았다. 괜히 왔나 싶기도 했다. 근처 편의점에서 차 한 잔을 마시면서 시간을 보내고 천천히 둘러보기로 했다. 그런데 시간이 좀 흐른 후에 본 문화의 거리는 완전히 딴 모습이었다. 하나둘씩 문을 여는 가게들에서는 중국의 오랜 역사가 묻어나는 온갖 그림, 서예 도구, 레코드판 등을 팔고 있었다.       




길거리에 전을 펼친 곳 역시 마찬가지여서 갖가지 물건들이 즐비했다. 내게는 의미 없어 보이는 돌멩이가 가득 쌓인 곳, 표주박 무더기, 누군가 착용했을 목걸이와 팔찌, 반지, 또 누군가의 내력이 담겨있을 시계, 누군가의 빛나는 한순간에 함께 했을 찻잔들. 내게는 잡동사니로만 보이는 물건 앞에서 물건을 고르느라 골똘히 고민에 빠진 사람도 보였고, 한 집안의 내력을 통째로 펼진, 마치 인생 전시장 같은 느낌을 주는 곳도 있었다.      


중국판 ‘응답하라 1994’ 시리즈를 만든다면 유용하게 쓰일 것들도 많아 보였다. 아마도 이 물건들과 더불어 살았던 사람들을 이것들을 보면서 자신들이 살았던 시대를 반추하지는 않을까?    오래된 사진, 옛날 돈, 책, 그림 등의 옛 물건들을 파는, 1km나 되는 긴 거리를 오가며 나는 길거리에 펼쳐진 물건들이 이곳에 놓이기까지의 사연을 생각해보기도 했다. 물건의 임자를, 지금 내 앞에 전을 펼치고 앉아 있는 사람의, 또 앞으로 이 물건을 사용하게 될 사람들을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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