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살아 숨쉬는 그녀 Aug 25. 2019

칭다오, 서점이 아름다운 도시

실크로드를 찾아서 04

       

“낭독하는 사람은 많나요?”

“아니요, 별로 없어요. 낭독 한번 해보실래요?”     


낭독 무대. 잔교서점(栈桥书店)에는 매일 저녁 7시 30분부터 8시까지 책을 낭독을 할 수 있는, 멋진 무대가 마련되어 있었다. 그랜드 피아노와 의자, 마이크, 빔프로젝트까지 갖춘 그곳에서는 누구든지 30분 동안 서점에 있는 책의 낭독자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지금껏 순례한 서점에서는 한 번도 보지 못한, 환상적인 공간이었다. 실제로 낭독하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누구든 주인공이 될 수 있는 무대를 만들어두고, 그 가능성을 열어놓은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되었다.      

칭다오에는 매력적인 서점이 많아 서점 순례만으로도 즐거웠다. 잔교서점 역시 그중의 한 곳이었다. 서점은 잔교로 오가는 사거리에 있어서 신호를 기다리며 횡단보도에 서면 누구나 볼 수 있는, 눈에 확 띄는 곳에 있었다. 서점 순례를 즐기는 나는 호기심에 한 번 들렀다가 칭다오에 머무는 내내 아침저녁으로 ‘참새가 방앗간을 드나들듯’ 들렀다.      


3층 규모의 서점은 카페와 문구류 판매를 겸한 지하 1층, 책 판매와 카페를 겸한 1층, 어린이책, 과학, 예술, 도시를 주제로 한 책을 주로 판매하는 2층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었다. 내가 들를 때마다 책을 고르거나, 여기저기 앉아서 자유롭게 책을 읽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해양도시의 매력을 마음껏 느낄 수 있는 서점이기도 했다. 한적한 어촌이던 칭다오가 독일의 조차지가 되면서 큰 항구로 변한 역사가 묻어났다. 파도치는 바다를 모티프로 갈매기가 날아다니는 천장, 물결 모양의 서가, 칭다오 맥주를 연상하게 하는 스크린, 배의 갑판을 떠울리게 하는 서점 곳곳에서는 파란 물감이 묻어나는 것만 같았다. 책장을 기웃거리다 보면 마치 미지의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배에 올라탄 듯 가슴이 두근거려 오기도 했다.      

잔교서점의 인상이 하도 강렬하여 중국인 친구에게 이야기했더니 잔교서점은 칭다오의 서점 문화를 선도하는 곳이라고 했다. 지역주민과 여행객들을 배려할 목적으로 운영되는 서점은 신간 발표회, 작가초청 북 콘서트, 연극, 음악공연도 하는 복합문화공간의 역할을 한다고 했다.      

아무런 정보 없이 들른 칭다오에서, 우연히 알게 된 잔교서점의 매력에 빠진 나는 칭다오의 다른 책방들도 방문하고 싶은 충동이 생겼다. 칭다오에는 작은 책방들이 많았다. 구시가지의, 늘 관광객들로 바글거리는 독일성당 앞 골목에 있는‘칭다오서점青岛书房’을 방문했다. 칭다오서점은 1901년에 지어진 4층 건물 전체를 서점으로 이용하고 있었다. 건물 앞에는 건물의 역사를 알려주는 표지석이 있었다.      


1층은 주로 책과 문구류를 판매하고 있는 곳이고,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는 청도의 역사를 볼 수 있는 사진과 자료를 전시해 놓고 있었으며, 2층에는 인쇄할 때 사용했던 활자와 고서, 청도서점 건물의 역사를 볼 수 있는 자료를 진열해 두었다. 벽면 한쪽에는 서점을 다녀가는 사람들이 메모를 남겨놓도록 메모판을 두었는데, 켜켜이 붙여놓은 메모에서 이곳을 다녀간 사람들의 숨결이 느껴졌다.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가족의 평안을 빕니다.”     


여기저기 쓰인 메모를 읽으며, 같은 공간을 공유한 다른 이들의 추억을 엿보며 나 역시 한 귀퉁이에 나를 남겨두고 싶기도 했다.      


도서관 열람실처럼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었다. 조용히 책을 읽는 사람들 틈에 앉아 낯선 중국어를 마주하며 책장을 넘겼다. 창밖으로는 칭다오의 변화를 지켜보며 꿋꿋이 서 있는 성당이 보이고, 바람에 나부끼는 나뭇잎이 푸르고, 하늘도 안겨 왔다. 서점 바깥에 마련된 테이블에서 맥주 한 잔, 차 한 잔을 마시며 책을 읽거나 이야기를 나누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건물 앞 표지석과 2층에 전시된 건물의 역사를 알려주는 자료를 살펴보니 서점은 원래 독일인 가족이 자신들이 살 목적으로 1901년에 지은 건물이었다. 이후에 건물주가 독일로 가면서 이 건물은 조선인 민영찬에게 팔렸고, 다시 칭다오의 부유한 상인에게 팔렸다는 건물의 내력을 알 수 있었다. 한때는 독일인의 가정집이었다가, 조선인들이 머무는 집이었다가 상인의 집이었던 이곳이 지금은 무수히 많은 사람의 발길이 닿는 곳이 된 셈이다. 칭다오에서 역사가 깊은 건물에 한때 조선인 가족이 거주했다고도 하니 구한말, 일제강점기의 혼란스러운 역사가 느껴지기도 했다.      


호스텔에서 만난 중국인 친구에게 아름다운 서점을 발견한 기쁨을 이야기했더니, 그 친구 역시 서점을 좋아하는 이였다.     


“너도 서점을 좋아하는구나. 나도 그런데. 혹시 시간 되면 다른 서점에도 가볼래?”

“물론이지.”

“좋은 친구라는 이름을 가진 서점이 있는데, 정말 예쁜 곳이야. 아마도 네가 간다면 반할 곳이야.”   

  

호스텔의 친구가 알려준 양우서방(良友书房)은 너무도 예쁜 북카페였다. 갤러리도 겸하고 있었다. 건물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되어 보이는 키 큰 나무들이 줄지어선 가로수 그늘에 자리 잡은 곳이었다. 1901년에 지어진, 우체국으로 사용하던 건물이었다. 4층 건물 중 1층과 4층을 북카페로 이용하고 있었는데, 오래된 나무 틈새로 시간이 켜켜이 느껴졌다.      


나는 그곳에서 복숭아 차를 시켜 오래 앉아 있었다. 종업원은 물잔이 빌 때마다 물을 채워주며, 필요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지 이야기하라며 친절하게 대해주었다. 사람들이 계속 드나들어도 조용하고 한적한, 참으로 마음에 드는 공간이었다. 나는 좋은 친구라는, 이름도 아름다운 양우서점에서 일기를 쓰고, 사진을 정리하고, 글을 쓰면서 하루를 마무리했다.      


다음에 또 칭다오를 방문할 기회가 온다면, 그때는 잔교서점에서 낭독의 즐거움을 누려보고 싶기도 하다. “기쁨, 슬픔, 비탄, 감동, 공감.... 낭독은 당신의 영혼을 풍부하게 해줍니다.” 라는 문구가 인상적이던 그곳에서 영혼을 나눌 기회를 가져보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칭다오, 잔교에서 만난 사람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