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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아 숨쉬는 그녀 Jun 12. 2020

타슈켄트에서 트빌리시

나의 첫 코카서스 여행 01

        

나의 실크로드 여행. 2018년 8월 17일부터 2019년 2월 16일까지 딱 6개월이었다. 중국에서 시작해 중앙아시아를 거쳐 중동, 아프리카까지 이어졌다. 코카서스 여행(조지아, 아제르바이잔, 아르메니아)은 9월 25일에 시작되었다. 파미르 여행을 마친 후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에서 항공편으로 카자흐스탄 알마티를 경유해 트빌리시로 입국했다. 코로나로 세계 여행은 꿈도 꾸지 못 하지만, 상황이 나아져 다시 여행할 수 있기를 바라며 그때의 여행기를 올려본다.      




서안에서부터 우루무치를 거쳐 파미르 고원을 함께 여행한 순심 언니 부부와 헤어졌다. 8월 21일에 만났으니 35일을 함께 여행했다. 두 사람은 한국으로 돌아가고 나는 혼자서 여행을 계속해야 했다. 두 사람의 배웅을 받으며 공항으로 향했다. 미터기를 사용하는 택시. 저렴했다. 요금은 16,800 솜. 공항세까지 합해서 20,000 솜이니 2천 원이 조금 넘는 금액이었다.     


택시기사는 젊은 청년이었다. 영어를 곧잘 하는 그는 공항으로 가는 한국에 대한 칭찬을 쏟아냈다.      


“와, 한국인이시네요. 한국은 세계 최고의 나라예요. 한국 물건은 다 좋다니까요.”     


사마르칸트에서도 그러했지만, 내가 만난 우즈베키스탄 사람들은 대체로 한국에 대해 우호적이었다. 택시 운전기사 역시 마찬가지였다. 한국에 대한 자랑스러움으로  시작된 이야기는 자신의 차, 대우차에 대한 자랑스러움으로 마무리되었다. 그러더니  여행자인 내가 자신의 나라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시험하기 시작했다. 우즈베키스탄에 대한 느낌이 어떠했나, 음식 맛은 어떠했나, 어디가 좋았나 등 공항에 도착할 때까지 쉬지 않고 물어댔다. 숙소에서 공항까지 가까워서 다행이었다. 나는 그의 솔직한 욕망에 최선을 다해 답해 주었다. “사람들이 참 말로 친절하더라. 호스텔의 아침 식사가 훌륭하더라, 레기스탄 광장의 음악회는 잊을 수가 없다, 시장의 수공예품이 훌륭하더라......”라고 해주었고, 그는 환한 웃음으로 답해 주었다.      

사마르칸트. 레기스탄 광장의 열린 음악회.
사마르칸트에서 타슈켄트 가는 길. 목화농장.
사마르칸트 . 게스트하우스. 아침식사.

공항은 생각보다 규모가 작았다. 굳이 두 시간 전에 도착할 필요가 없었다. 나는 조지아 여행 자료를 읽으며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드디어 출발. 1시간 30분의 비행 끝에 환승 공항인 알마티에 도착했다. 비행기에서 내려 공항 건물로 걸어가는데 눈 덮인 텐샨 산맥이 확 들어왔다. 처음 알마티에 도착했을 때(9월 5일)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파미르 고원은 9월 중순 이후에는 눈이 쌓여 통행이 어렵다던 말이 실감 났다. 9월 초에도 폭설로 유르트가 무너졌던 파미르 고원이 한순간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그리운 파미르. 언제 또 갈 수 있을까?      


우루무치에서 육로로 카자흐스탄으로 입국했고, 또 육로로 키르기스스탄으로 이동했기에 알마티 공항은 처음이었다. 규모가 아주 작았다. 보딩 시간까지 세 시간 정도는 기다려야 했다. 출발 층이 1층이었는데, 앉을자리가 없어서 2층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가 내가 있는 곳이 2층이라는 사실을 잊었다. 보딩 시간이 다가오는데, 사람들이 별로 없어 이상하게 느껴졌다.  불현듯 내가 있는 곳이 2층이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갑자기 마음이 급해졌다. 1층에 내려가니 수속이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비행기를 놓칠 뻔했다.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스타나 항공. 새 비행기라서 아주 깔끔하고 무엇보다 좌석 간격이 넓어서 좋았다. 창가 자리. 옆 좌석에는 26살의 안과의사가 앉았다. 회의 차 트빌리시에 간다고 했다. 자신의 영어가 형편없다며 앞으로 영어공부를 더 해야겠다던 그는 우즈베키스탄에서는 의사의 월급이 적어서 유럽에서 일하고 싶다든가,  인도에서 좀 더 공부하고 싶다든가 하는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내가 여행 중이라고 했더니, 자신은 첫 해외여행이며,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는 설렘을 고스란히 드러내었다. 승무원이 따뜻한 물수건을 나누어주자 왜 따뜻한 물수건을 나누어주는지 묻기도 했다. 기내식이 제공될 예정이라고 했더니 놀랬다. 기내식을 사진으로 찍으며 친구들에게 보여줄 거라고도 했다. 자신은 이슬람이지만 가끔 친구들과 술을 마시기도 한다며 음료를 화이트 와인으로 선택해 함께 마셨다. 내가 가진 론리 플래닛 조지아 편을 살펴보며 조지아의 음식에 관심도 보였다. 자신은 트빌리시에서 할 일이라고는 회의밖에 없다며, 혹시라도 시간이 되면 함께 저녁을 먹고 싶다고도 했다.     


자신의 고향은 사마르칸트에서 좀 떨어진 페르가나라며 아주 아름다운 곳이라고 자랑했다. 특히 직물이 유명하다며 다음에 우즈베키스탄을 여행하게 되면 꼭 방문해 보라고 권했다. 한국 사람들은 얼마나 여행을 하느냐, 어떤 나라를 가봤느냐, 연봉은 얼마인가, 연금은 언제 받는가 등 아주 현실적인 질문을 했다. 예전의 우리가 아메리칸드림을 꿈꿨듯이, 이곳 사람들 중에도 한국에 대해 비슷한 감정을 가진 사람들이 더러 있었다. 이 친구 역시 마찬가지였다. 나는 한국의 상황을 말해주었다. 연봉 수준만 본다면 우즈베키스탄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이지만, 단순히 겉으로 드러난 것만 가지고 비교할 수 없다고. 그 사회의 경제지표를 알아야 한다고. 한국 역시 경제가 어려워 대학을 졸업해도 취업이 어렵고, 경쟁은 치열하고, 세금도 많이 내야 하고, 집값도 비싸고, 교육비도 많이 들어가서 살기가 힘들다고 말해 주었다.


나는 중앙아시아를 여행에서부터 궁금해했던 이슬람의 결혼 풍습, 우즈베키스탄의 결혼 풍습에 대해 물어보았다. 여자들은 보통 18살에서 22살, 남자는 25살에서 27살 정도에 결혼한다고 했다. 대체로 부모님이 정해준 반려자를 택하는데, 결혼 후에도 부모님과 함께 살아야 하므로 부모님이 매력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을 배우자로 맞이하는 것이 좋다고 했다. 언제까지 부모님과 함께 사는지 물었더니 부모님이 돌아가실 때까지 함께 살아야 한다고 했다. 내가 깜짝 놀라자, 부모님과 함께 사는 것은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특히, 아이가 생기면 아이들의 교육은 조부모들의 몫이라며 그래서 가정이 잘 유지된다고도 했다. 우즈베키스탄은 여전히 가부장적 사회인 모양이었다.      


“신부는 수를 놓으면서 신부수업을 해요. 신붓감이 수놓은 방석은 그녀의 성격을 보여주지요. 부지런한 사람인지, 게으른 사람인지 알 수 있어요. 그래서 촘촘하게 수놓은 방석을 가진 신붓감 은 부지런한, 좋은 신붓감으로 점 찍혀요.”     


사마르칸트에서 만났던  가이드의 말이 떠올랐다. 중앙아시아를 여행하면서부터 그러했지만, 이슬람 사회에서는 여성들의 노동력으로 집안이 유지되고 있는 것 같았다.  

사마르칸트. 벼룩시장. 한 땀 한 땀  여인들의 손끝으로 만든 것들.
사마르칸트. 벼룩시장. 오랜세월 여인들의 손때가 묻었던 것들.

드디어 트빌리시 도착. 그와의 이야기 덕분에 비행시간이 짧게 느껴졌다. 조지아는 우즈베키스탄과 두 시간의 시차가 있었다. 도착시간은 밤 9시 40분. 좋은 이야기 친구가 되어준 청년과 작별하고 환전을 하고 유심을 구입해야 했다. 15달러와 남은 우즈베키스탄 돈을 조지아 돈으로 환전했다. 1달러 2.6 겔. 유심은 35 겔. 구글 맵으로 숙소 위치를 파악했다. 충분히 시내버스로 이동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공항 건물에서 100m 정도 떨어진 곳에서 출발하는 37번 시내버스를 타면 숙소가 있는 자유 광장까지 40분 걸린다고 했다. 버스비는 0.5 겔. 우리 돈 250원 정도이니 거의 공짜였다.      


예약해 놓은 숙소는 Pushkin 10 Hostel. 부킹 닷컴에서 평점이 높은 곳이었다. 버스 정류장에서 300m 정도 거리, 도로변에 위치한 3층 건물이었다.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무거운 가방을 들고 계단을 올라가야 했다. 계단으로 올라오는 소리를 들었는지, CCTV로 확인했는지, 직원이 부리나케 달려 나와 짐을 들어준다. 정말 친절했다.      


4인실 도미토리. 2층 침대. 침대마다 가림막이 있고, 천장이 높아서 불편하지 않았다. 그리고 공용공간이 아주 넓었다. 화장실, 샤워실, 부엌 등 다 마음에 들었다. 창밖을 야경을 내다보며 트빌리시의 첫날밤을 맞이했다.      

택시, 비행기 두 번, 버스를 이용하며 찾아온 트빌리시. 내가 밟은 또 하나의 도시. 첫인상이 나쁘지 않다. 중앙아시아에서 느끼지 못했던 자유로움이 나를 반겼다. 또 어쩐 즐거운 일들이 나를 반겨줄지 기대되었다.

조지아. 트빌리시.  Pushkin 10 HosteL에서 바라본 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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