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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아 숨쉬는 그녀 Jun 14. 2020

트빌리시를 즐기는 법
       - 호스텔의 친구들

나의 코카서스 여행 02

…‥.

    

나의 실크로드 여행. 2018년 8월 17일부터 2019년 2월 16일까지 딱 6개월이었다. 중국에서 시작해 중앙아시아를 거쳐 중동, 아프리카까지 이어졌다. 코카서스 여행(조지아, 아제르바이잔, 아르메니아)은 9월 25일에 시작되었다. 코로나로 세계 여행은 꿈도 꾸지 못 하지만, 상황이 나아져 다시 여행할 수 있기를 바라며 그때의 여행기를 올려본다.      


나의 여행 이야기가 담긴 『상파울루에 내리는 눈』을 읽은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것 중의 하나가 여행지에서 사람을 만나는 기술이었다. “그렇게 많은 친구를 어떻게 만났어요? 무슨 비법이라도 있나요?”라는 질문이 많았다. 대체로 자신들은 유명한 관광지의 특정한 공간이나 중요한 유적지를 숙제처럼 보고 온 것에 비해, 나는 어떻게 현지인이나 여행자와 친구가 될 수 있는지 물었다. 다른 사람에게는 없는, 사람을 사귀는 특별한 기술이 내게 있을 턱이 없다. 차이점이라면 여행법일 것이다.      




나는 여행할 때 대체로 30% 정도만 계획을 세우고 나머지는 비워둔다. 여행지에서 일어나는 우연을 즐기기 위해서다. 그러다 보니 친구를 사귈 기회가 많아졌다. 이번 여행에서도 그랬다. 대략적인 여행 코스만 잡아두어 유연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했다. 모든 것을 정해두어 아쉬움을 느낀 경험이 많았기에 출발하는 항공권과 첫 여행지의 숙소만 정해두었다. 적당하게 채운 냉장고에 음식을 더 보관할 수 있는 것처럼, 여행에도 여유가 있으면 일정을 자유롭게 조절할 수가 있다. 마음에 드는 곳이 있으면 이틀 머물 것을 사흘로 또는 일주일로 기간을 늘려도 된다. 또 어떤 도시는 가볍게 건너뛸 수도 있다. 호스텔에서 마음이 맞거나 일정이 비슷한 친구를 만나면 함께 여행하는 기회를 가질 수도 있다. Pushikin 10 Hostel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빠듯한 예산으로 6개월을 여행해야 했기에 저렴한 호스텔에 묵어야 했지만, 호스텔에서는 세계 각국의 친구들을 만나는 즐거움이 있다. 사실 50이 넘은 나이라 젊은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을지 걱정도 되었다. 첫 여행지였던 칭다오에서 친구와 일정이 어긋나 8인실 도미토리에서 묵었던 경험이 그런 걱정을 싹 없애 주었다. 그곳에서 나는 그저 한 사람의 여행자였다. 같은 방을 쓰는 친구들과 스스럼없이 친해졌다. 그때의 경험이 나를 자유롭게 했다.     


 4인실 도미토리에서의 아침. 불가리아, 필리핀, 독일에서 온 아가씨들이 룸메이트였다. 다들 시원스러운 성격이었다. 호스텔에서 만난 친구들과는 대체로 여행 일정 이야기로 안면을 튼다. 그러다 마음이 맞거나 일정이 비슷하면 함께 여행하기도 하고, 또 다음 여행지에서 만나기도 한다. “여행기간은 얼마나 돼? 이곳에서는 얼마나 머물 거야? 어디가 좋았어? 다음 여행지는 어디야?…‥.” 이번 룸메이트들도 마찬가지였다. 세 친구 모두 조지아,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을 묶어서 여행한다고 했다. 조지아가 여행지로 핫플레이스라고도 했다. 필리핀에서 온 친구는 아르메니아로 떠날 예정이었고, 불가리아에서 온 친구는 며칠 후에 아제르바이잔으로 떠난다고 했다. 독일 친구는 와이너리 투어에 갔다 올 거라며 돌아와서 참가 후기를 말해 주겠다고도 했다.      


“진. 트빌리시 첫날이지? 그러면 프리 워킹 투어에 참가해. 나 어제 갔다 왔는데, 정말 좋아. 12시에 시작하니까 일단 투어에 참가해서 트빌리시를 전체적으로 파악한 다음에 하고 싶은 것을 하면 돼.”

“진, 여기 목욕탕 체험도 할 수 있거든. 꼭 해봐. 너무 괜찮더라고…‥.”     


나보다 먼저 도착한 친구들은 자신들의 트빌리시를 브리핑하기 시작했다. 일단, 프리워킹 투어를 다녀올 것, 카즈베기에서는 무조건 1박 이상은 할 것, 와이너리는 투어로 다녀와도 되고, 시간적인 여유가 있으면 시그나기나 텔라비에서 할 것, 아르메니아에 가려면 기차보다는 버스를 타고 갈 것,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은 관계가 안 좋으니까 두 나라를 한꺼번에 여행하려면 조심할 것…‥.


친구들 덕분에 나의 조지아 여행 스케줄이 정해진 셈이었다. 단지 같은 방에 머물렀을 뿐인데도 온갖 정보를 말해주었다. 나의 여행 일정에 불가리아가 있다는 것을 안 친구는 소피아에 오면, 자기를 꼭 방문해달라고 했고, 필리핀 친구 역시 필리핀에 오면 자기를 찾아와 달라고 했다. 호스텔에서는 국적, 나이, 직업, 성별 등이 중요하지 않았다. 단지 여행을 좋아하는 친구로만 존재했다. 나는 “진”이라 불리는 한 여행자로 섰다. 그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룸메이트들과 함께

12시에 시작하는 프리워킹 투어까지는 시간적인 여유가 많아서 느긋하게 아침을 즐기고 도시를 한 바퀴 돌아보기로 했다. 호스텔에서는 아침식사도 제공했다. 팬케이크, 과일, 음료를 마음껏 즐길 수 있었다. 재료를 사 온다면 요리도 할 수 있었다. 상하이에서 온 청년이랑 같이 아침을 먹게 되었는데, 그 역시 이미 조지아 여행을 마쳤으며, 아르메니아로 갈 예정이라고 했다. 조지아에 열흘 넘게 있을 것이라고 했더니 부럽다고 야단이었다. 바쁜 직장생활에 짧게는 일주일, 길어야 10일 여행을 떠나온 친구들에게 무급 휴직을 하고 6개월 계획으로 여행을 떠나온 나는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며칠 묵으려고 했는데, 문제가 생겼다. 1박만 예약한 터라 전날 밤에 도착하자마자 2박을 더 연장하겠다고 스텝에게 말해두었는데, 스텝이 예약 처리를 하지 않은 것이다. 밤 사이에 누군가 예약 사이트에서 예약을 하는 바람에 빈 방이 사라져 버렸다. 스텝은 정말 미안해하며 다른 숙소를 소개해 주었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었다. 제대로 예약 확인을 하지 않은 내 잘못도 있었다. 같은 방 친구들과 밤에 만나기로 약속도 해놓은 터라 당황스러웠지만, 페이스북 메신저로 사정을 알리고 숙소를 옮기기로 했다.      


“환전할 때, 잘 살펴야 해요. 환율이 좋은 것처럼 적어놓았는데, 알고 보면 수수료가 높은 곳이 있어요.”     


스텝은 환율이 좋은 환전소를 알려주고, 주의사항도 알려준다. 정말 그의 말 대로였다. 환율이 아주 좋은 곳처럼 보였지만 높은 수수료 때문에 오히려 환율이 안 좋은 곳도 있었다.      


호스텔에 짐을 맡겨두고 시내 구경에 나섰다. 편안한 밤을 보냈고, 맛있는 아침을 먹었고, 좋은 친구들로부터 환대받았고, 유익한 여행 정보도 얻었으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호스텔 문을 나서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아침에 본 호스텔 바깥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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