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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끝에서 나를 만나다, 메테오라

그리스 03

by 살아 숨쉬는 그녀


“사하라 사막 한가운데, 마추픽추 꼭대기, 대서양이 시작되는 포르투갈 로카 곶, 하늘에 이를 듯한 메테오라 수도원. 더 이상 내달을 데 없는 세상 끝에 서면 그곳에 이른 사람을, 또 다른 인연을, 그리고 아직 만나지 못한 나를 만난다.”


아득한 바위 끝에서 세상과 단절한 채 자신의 성을 쌓고 살아가는, 오직 기도의 힘으로 아득한 심연에 존재하는 자신의 본질 혹은 신과 만나며 달과 바람과 친구 한다거나 단순함의 극치로 살아가는 사람들. 그곳에 이르렀다가도 세상 속으로 돌아오는 우리와 달리 자신의 성채를 영원의 공간으로 삼은 사람들이 사는, ‘하늘의 기둥’이라 불리는 천공의 성 메테오라(Meteora) 가는 길은 쉽지 않다. 그리스 중부 테살리아 지방 북서부에 위치한 메테오라는 거대한 사암 바위기둥 위에 세워진 수도원들을 이르는 이름으로 바위들의 평균 높이는 300m이며 가장 높은 것은 550m에 이른다. 아테네에서 직행 기차를 타도 네 시간이 걸리는 칼람바카(Kallambaka)에서 하룻밤을 묵어야 만날 수 있는 메테오라 여정은 고독과의 치열한 싸움 끝에 자신을 만나듯 택시나 버스 투어를 마다하고 걷기 시작하면 지중해의 강렬한 햇볕과 더위로 아득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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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접근하기 어려운 봉우리, 절벽 꼭대기에 세워진 메테오라 수도원은 비옥한 평원을 내려다보는 바위 숲의 요새로 서 있다. 이곳의 역사는 9세기부터이나 14세기 비잔틴 제국의 쇠퇴와 오스만 투르크족의 공격으로 그리스 정교를 지키기 위해 수도사들이 모여들면서부터 본격적인 공동체가 시작되었다. 몇 곳에 불과하던 수도원은 점점 늘어나 24곳으로 규모가 커졌고, '메갈로 메테오로' 즉 '거대한 메테오로'라 불리며 강력하고 부유한 수도원으로 발전해 나갔다. 일반인들은 쉽게 접근하기 힘든 곳으로 로프로 된 그물을 늘어뜨리고 접을 수 있는 나무 사다리를 이용해야 도달할 수 있었고, 각각의 수도원은 저마다 재산과 농작물, 양이나 염소 떼 등을 관리하며 독립적으로 운영되었는데, 지금은 여섯 곳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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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테오라 오르는 길에 처음으로 만나는 니콜라스 아나파사스 수도원(Moanstry of Nicolas Anafasas)은 크레타 출신 성화가의 아름다운 프레스코화로 유명하며, 수직 절벽 위에 지어진 루사노 수도원(Moanstry of Roussanoa)은 현재는 수녀원으로 운영되고 있다. 주위와 떨어져 우뚝 서 있는 암봉 위에 홀연히 나타나 방문객들의 탄성을 자아내는 트리니티 수도원(Monastry of Holy Trinity)은 종교의 위대한 힘을 절로 느끼는 곳이다. 수도원으로 오르는 계단이 길에서 한참을 내려가야 나타나기 때문에 지금도 가장 방문하기 힘들다. 수도사의 이름을 딴 발람(Varlaam) 수도원은 모든 성인들에게 헌정되어 모든 성인들의 수도원(Monastry of All Saints)이라고도 불리며, 성 스테파노스 수도원(Monastry of Agios Stefanos)은 쉽게 차를 타고 갈 수 있는 곳으로 내부가 잘 복원되어 방문객이 끊이지 않는다. 좁은 수도원의 지형을 잘 살린 정원이 아름답고 내부는 화려한 성화들로 장식되어 있는데, 출구 벽에 걸린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액자의 문구는 수도원 생활에 ‘기도의 힘’이 얼마나 중요했을까를 짐작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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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실의 후원을 얻어 조성된 메갈로 메테오른(Megalo Meteoron) 수도원은 규모가 확장되어 가장 큰 암봉 위에 자리 잡은 수도원이다. 전성기에 300명의 수도사가 있었다는 큰 규모답게 내부에는 잘 꾸며진 정원, 교회, 식당, 지금은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는 병원이었던 건물이 있으며, 내부에는 정교한 성화(icon)들로 장식되어 있다. 특히 전망대에서 보는 풍경이 아름다운 곳으로 20세기에 들어와서야 암벽을 일부 통과하는 터널과 지그재그 계단을 만들어 359계단을 올라가야 입구에 들어설 수 있다. 지금도 볼 수 있는 건물 중앙에 매달린 그물은 예전에 사람이나 물건을 도르래로 끌어올린 흔적이라고 하니 말하지 않아도 세속과의 단절감, 고독감 등이 가슴에 와 박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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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끝에 이르는 길에서 또 다른 인연을 만난다. “너 정말 예쁘다. 내가 처음 만나는 한국인이야”라며 자연스럽게 말을 건네는 아주머니는 그리스가 고향이지만 호주로 이민을 갔다고 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수만 명의 그리스인들이 고국을 등지고 새 삶을 찾아 호주에 정착하였고, 지금 또다시 경제위기를 피해 호주로 떠나는 그리스인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전한다. 종교적 신념을 지키기 위해 수도사들이 이른 바위 꼭대기에서 또 다른 세상의 끝으로 밀려간 사람을 만난 셈이다. 과거나 지금이나 자신이 살던 곳을 떠난 사람들은 무엇을 지키고 싶은 걸까? 그녀는 세상 끝에 이른 수도원에서 무엇과 만나고 있는 걸까?



“끝내 발 디디며 서 있는 땅의 끝,

그런데 이상하기도 하지

위태로움 속에 아름다움이 스며 있다는 것이

땅끝은 늘 젖어 있다는 것이

그걸 보려고

또 몇 번은 여기에 이르리라는 것이”

- 나희덕, ‘땅끝’ 중에서



메테오라에 이르는 작은 문을 가진 산동네 칼람바카. 우리가 묵은 게스트하우스 주인아저씨는 자신의 문을 활짝 열어 놓는다. 당신이 머무는 동안은 당신이 주인이란다. 걸림이 없다. 산 아래서도 자신만의 수도원을 짓고 있는 걸까? 고즈넉한 어둠이 내린 마당에서 여행자를 위해 들려주는 아저씨의 나직한 전통악기 부주키(Bouzouki) 연주를 들으며 내 속에 이르는 길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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