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과 함께 행복하기 3

니콜라스 툴피의 해부학 강의

by 메아스텔라meastella
렘브란트1.jpg 구글에서 퍼온 이미지

렘브란트, <니콜라스 툴프박사의 해부학 강의>, 1632, 캔버스에 유화, 169,5 x 216,5, 헤이그, 마우리츠 하이스 왕립미술관



위의 그림은 렘브란트의 작품으로 남편이 좋아하는 그림 중의 하나다. 어린 시절부터 장래희망이 의사였던 남편에겐 어쩜 당연한 것일 수도 있겠다. 오랫동안 막연하게 상상만 했던 인체 해부를 막상 대학에 들어와 직접 해 보니 이 그림에서 보여준 것과는 많이 달랐다고 했다.


이들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무엇을 그린 것인지는 한눈에 알아볼 수가 있다. 그림 중앙에 빛을 받아 백지장처럼 하얀 시체가 놓여있고 그 시체를 8명의 남자들이 둘러 서 있다. 그림 전체에 깔려있는 흰색과 검은색의 대조로 아주 차갑고 어두운 느낌을 준다. 유일한 유채색인 붉은색이 관람자의 눈낄을 사로잡는다.

모자를 쓰고 있는 한 남자가 지금 시체를 해부하고 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의 옷 보다 짙은 검은색과 흰색의 목둘레 장식으로 강한 대비를 주며 무리들 속에서 두드러져 보인다.


해부학 강의임에도 해부실에서 볼 수 있는 다른 도구 등의 소품이 보이지 않는다. 또한 해부를 돕는 조수도 보이지 않는다. 오로지 시체와 인물만이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더욱이 인물의 배치와 빛의 명암으로 장면을 극적으로 재구성해서 '해부 행위'에 포커스를 맞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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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의 자세와 시선이 흥미롭다. 제각기 엉켜져 있다. 강의 내용을 따라 시선이 시체에 가 있는 사람도 있고, 질문이 있는 듯 강사를 쳐다보는 사람, 자세를 비스듬히 하고 곁눈으로 그림 밖을 보고 있는 사람, 강의엔 집중하지 않고 화면 정면으로 관람자를 보고 있는 사람. 제각각이다. 분위기는 조용하고 엄숙하지만, 소리 없는 움직임들을 통해 이 해부학 현장을 생동감 있게 보여주고 있다. 마치 우리가 지금 현장에 함께 있는 것처럼.


이 그림은 렘브란트가 26세 때에 암스테르담 외과의사들의 길드 조합으로부터 의뢰를 받아 그린 단체 초상화이다. 그림이 완성된 후엔 단체 기념사진처럼 그들의 길드 사무실에 걸어 놓았다고 한다. 17세기 당시의 네덜란드는 자연과학과 인체의 신비에 대한 관심이 아주 높았다. 이런 높은 관심 덕분에 일 년에 한 번 모든 대중들을 대상으로 한 공개적인 해부학 강의가 이루어졌다. 교양인이라면 인체에 대해 알아야 한다는 생각들이 전반적으로 퍼져있었기 때문이다. 이 '해부학 라이브쇼'는 시체의 썩는 냄새 때문에 겨울에 이루어졌었고, 관람자들은 이 흥미로운 현장을 보기 위해 한껏 차려입고 돈까지 지불하며 강의장에 입장했다고 한다.


그림 속 해부학 강의를 실시하고 있는 인물은 모자를 쓴 남자, 니콜라스 툴프박사이다. 원래 이름은 클라스 피터스존('피터의 아들 클라스라는 뜻)이었는데, 이후 툴프라는 성을 스스로 만들어 사용했다. Dr.툴프는 레이던에서 의학공부를 했고 암스테르담에서 성공한 의사로 이후엔 시 행정에도 관여를 했다. Tulp는 튤립의 네덜란드어이며, 이 꽃봉오리를 자기 가문의 문장으로 썼다고 한다.


해부되고 있는 시신에 대한 기록도 전해진다. 41세의 레이던 출신의 아리스 킨트라는 인물로 연쇄 노상강도죄로 사형선고를 받았고, 교수형에 처한 다음 날 그의 주검은 해부에 사용되었다고 한다. 렘브란트가 그린 왼팔 해부 그림은 해부학적으로 꽤 정확하다고 인정받고 있다. 대학교에도 다니고 라틴어도 배웠던 렘브란트는 해부학 책을 보고 고증을 철저히 했을 것이다. 시신 발밑에 <인체 구조론>이라는 책을 그려 넣은 것도 우연은 아니다. 당시 필수 교양서적이었다 한다.


단체초상화2.png 구글에서 퍼온 이미지
단체초상화1.jpg 구글에서 퍼온 이미지


렘브란트 이전에도 단체 초상화는 많았다. 하지만 당시의 그림들은 위의 그림에서 볼 수 있듯이 대부분 일렬로 쭉 줄 서진 모습을 하고 있었다. 마치 각각의 사진을 몽타주로 오려 붙여 놓은 것처럼, 거의 동일한 자세와 크기, 표정들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것이 렘브란트의 그림 속에서는 실제 순간을 포착하듯, 인물들이 더 이상 경직되어 있는 자세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움직임과 동작, 표정을 하고 있다.


이렇듯 기존의 틀을 깬 렘브란트는 이 그림을 계기로 26세라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큰 명성을 얻게 된다. 이러한 명성은 결국 예술가의 자아의식이 강화되면서 17세기 바로크 '네덜란드 황금의 시대'를 여는 중요한 인물이 되었다. 유화, 동판화, 드로잉, 자화상, 댓생 등 많은 작품을 남겼는데, 성서, 신화, 역사, 풍경, 풍속 등 광범위한 소재를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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