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과 함께 행복하기 2

아르놀피니의 결혼식

by 메아스텔라meastella
반 아이크1.jpg 얀 반 아이크(1390-1441), 아르놀피니의 결혼식


이 그림은 얀 판 아이크의 <아르놀피니의 결혼식>(1434)이다.

개인적으로 사연이 있는 작품이다.

나의 결혼식 청첩장에 사용되었던 그림이기 때문이다.

유학시절 세미나 시간에 이 그림을 처음 접했을 때, 생각했었다.

만약 결혼을 하게 된다면, 이 그림을 청첩장으로 써도 좋겠다고.

오랜만에 보고 싶어서 그때 썼던 청첩장을 찾아봤더니 찾을 수가 없다.

결혼생활 14년 동안 이사만 4번을 다니다 보니, 어디다 뒀는지 도저히 기억이 안 난다.

이삿짐 어디엔가 들어 있을 텐데...


당시 예비신랑과 함께 이 그림을 컴퓨터로 '조작'해서 사용했었다.

그 청첩장을 들고 지도교수님을 찾아갔을 때, 'genial' 이라며 아주 좋아하셨더랬다.

전혀 예상치 못한 '작품' 속에서 우리를 발견하셨기 때문이다.

어딜 바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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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에서 퍼온 사진


이 두 부분을 바꿨다.

거울 속에 우리 두 사람의 얼굴을 넣었고, 거울 위 화가의 서명을 우리 이름으로 대체했었다.



Johannes de Eyck fuit hic 1434 --> Jixxxx et Mixxxx fuerunt hic 2004
(진X 과 미하X이 이곳에 있었다)



1434년 아르놀피니가 결혼 증명서로 제작 주문했던 그림이 570년이 지나 우리 결혼식의 초대장이 된 것이다.


이 작품은 미술사학자들 사이에서 많은 이견이 존재하는 작품 중 하나이다.

그림 전체에 퍼져있는 많은 상징성 때문에 서로 다양한 해석을 하기도 한다.

현재까지도 많은 가설이 공존한다.

우선, 그림 속의 주인공들은 누구인가? 하는 문제인데, 1997년 이전 까진, 이탈리아 출신의 상인 조반니 디 아리고 아르놀피니와 그의 아내 조반니 체마니 라고 해석되었다. 최근에는 그의 사촌, 조반니 디 니콜라오 아르놀피니 부부라는 의견에 더 힘이 쏠리고 있다.


방인듯한 실내공간을 배경으로 한 쌍의 남녀가 그림의 중앙에 서 있다. 남자와 여자는 손을 경건하게 잡고 있는데, 남자는 오른손을 가슴 언저리에 들고 무언가를 서약하는 듯한 자세를 잡고 있고 그의 왼손으로 여자의 오른손을 잡고 있다. 손바닥을 하늘로 향하게 펼친 여자는 왼손으로 드레스의 치마폭을 움켜쥐고 배위로 살포시 올려놓았다.

무표정한 표정의 남자가 얼굴을 정면으로 향한 반면 수줍은 미소를 살짝 드리운 여자는 시선을 아래로 두고 있다. 두 사람의 나이 차이가 좀 있어 보인다.

두 남녀가 서 있는 사이로 만들어지는 역삼각형의 구도 아래에 한 마리의 강아지가 서 있다.

마치 관람자들을 보고 있듯이 정면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반 아니크5.jpg 구글에서 퍼온 사진


이들의 뒤쪽에는 일반 가정에서 볼 수 있는 가구들과 소품들이 눈에 띈다. 여자의 뒤쪽에 자리 잡은 붉은 침대 때문에 이 곳이 거실이라기 보단 침실처럼 보인다. 남자의 뒤편에 열려있는 창문을 통해 따뜻한 햇살이 방안을 비추고 있다.

역시 두 사람의 팔이 만들어내는 삼각형의 구도내에 동그란 볼록거울과 황동 샹들리에가 자리 잡고 있다.

볼록거울의 위치가 관람자들의 눈의 위치와 거의 동일하게 보이는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닐 것이다.

그림의 왼쪽 아래 귀퉁이에 아무렇게나 벗어놓은 나막신이 살짝 거슬려 보인다. 화가는 왜 굳이 이렇게 그려 넣었을까? 궁금해지는 점이다.


이 그림은 그렇게 크진 않다. 60x82.2cm의 크기로 현재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 소장되어있다.

이 작품을 처음 접하게 되면 아마 모두들 입을 떡 벌리며 탄성을 지을 것이다. 도저히 붓을 이용해 손으로 그렸다고는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세밀하다. 놀라우리만치 사실적이고 정밀하게 표현된 각각의 사물들.

거기에 못지않은 화려한 색채를 통해 전해지는 질감의 느낌은 마치 CG 작품을 보는 듯하다.

또한 작품의 구성과 구도는 도저히 작은 작품의 스케일이 아니다.

두 사람이 걸치고 있는 값비싼 모피와 드레스의 섬세한 터치를 통한 부드러운 감촉, 강아지 털이 주는 또 다른 부드러움. 만약 실제로 만진다면 그 질감을 손 끝에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을 것만 같다.


<아느롤피니의 결혼식>에는 많은 상징들이 숨어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당시 플랑드르 사람들의 관습을 알고 있으면, 이것들을 해석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일반적으로 이 그림은 두 사람의 결혼서약 장면이며 이 것을 증명하는 일종의 '결혼 증명서'로 해석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 그림이 결혼서약 장면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가 있을까? 한 번 살펴보자.

이때 사용한 것이 상징물들이다.


반 아이크4.jpg 구글에서 퍼온 사진


관객의 시선이 제일 먼저 가는 그림의 정중앙에 거울과 황동 샹들리에를 그려 놓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화가의 철저한 계획 아래에 만들어진 구도인 것이다.

자세히 보면 샹들리에엔 단 하나의 촛불이 켜져 있다. 플랑드르 지방의 오랜 관습으로 결혼식에 촛불 하나를 밝히는데, 이는 <혼례의 촛대>라고 해서, 비록 인간이 아무리 많은 죄를 지었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사랑으로 새롭게 태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결혼식이라는 과정을 통해 신이 두 사람에게 보내는 무한한 사랑을 의미한다.


천장에 매달려 있는 샹들리에의 아래에 둥근 볼록거울이 보인다. 이 둥근 거울은 다양한 그림들이 빙둘러 10개의 작은 원으로 장식되어있다. 예수의 수난 장면을 그려 넣은 것이다. '10'이라는 숫자는 기독교적인 문맥 내에서는 '완전함'을 상징하기도 한다. 왜 얀 판 아이크는 굳이 결혼서약식의 그림에 예수 수난사를 그려 넣었을까? 예수의 수난사는 종종 결혼생활에 비유되기도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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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에서 퍼온 사진


화가는 크기가 몇 cm도 되지 않은 작은 면적의 거울에 온 방안을 다 그려 넣었다. 더욱이 우리가 볼 수 없는 우리들이 지금 서 있는 곳의 모습도 집어넣은 것이다. 그저 놀랄 따름이다. 우리가 볼 수 없는 남녀의 뒷모습과 또 다른 두 명의 사람을 함께 그려 넣음으로써 다분히 평면적일 수 있는 그림에 공간을 집어넣었다. 이 모든 것을 표현하기 위해 화가는 똑똑하게도 볼록거울을 선택했다.


그림 전체의 색감을 지배하고 있는 붉은 천으로 둘러져있는 침대는 성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해석하는 이들도 있다. 이 모티브는 이후에도 많은 그림들에서도 볼 수가 있는데, 붉은색은 순결한 처녀의 초야를 상징하기도 한다.

침대 머리맡에 조각되어 있는 작은 나무인형은 임신을 원하는 여성들의 수호성인인 성 마가렛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 옆에 달려 있는 솔은 비르가(Virga)라고 하는데 당시의 풍속에 따르면 수태와 건강을 기원하는 물건이다. 임신과 관련된 상징적인 장치는 또 다른 곳에서도 볼 수가 있다. 바로 신부가 입고 있는 드레스의 색이다. 녹색은 다산을 의미하며 당시 유행하던 색이라 한다. 그리고 신부의 배가 불룩한 것을 가지고 임신상태네, 아니네 하는 이견들이 있는데, 역시 그때 유행하던 복식이었다고 보는 견해가 월등히 많다.

거울 옆에 걸려있는 투명한 수정 묵주는 이 투명함이 연상시키듯 순결을 의미하고 신부가 신랑으로부터 받던 당시 유행하던 결혼선물이라 한다.


열려 있는 창 너머 붉은 열매가 달려있는 나무가 보인다. 너무 작아서 잘 보이지는 않을 텐데, 체리나무이다. 이 나무를 통해 계절을 알 수가 있다. 아마 6월 정도 되었을 것이다. 6월이면 한창 더워지려는 계절인데, 왠지 남녀가 입고 있는 털옷과는 맞지가 않다. 그럼 왜 화가, 아니 이 두 남녀는 이 복식을 하고 있을까?

이를 통해 주인공의 높은 경제적 수준을 보여주기 위함이라 추측한다. 예를 들면, 신부가 하고 있는 목걸이, 팔찌 등의 장신구나 정교하게 만들어진 황동 샹들리에, 바닥에 깔려있는 오리엔탈적인 카펫, 남자의 뒤편 낮은 가구 위에 있는 오렌지, 창문을 화려하게 꾸며주는 스테인드글라스 등. 일반 서민으로서는 도저히 꿈꿀 수 없는 그런 고가품인 것이다.


이 모든 것을 종합적으로 볼 때, 이 그림은 결혼서약식을 보여주는 것이 맞다. 보다 더 직접적으로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은 바로 두 남녀의 자세이다. 결혼식에서 중요한 의식 중 하나인 남녀가 서로 손을 잡는 행위와 엄숙한 표정으로 오른손을 위로 향하게 들고 선서하는 듯한 남자의 자세가 바로 그 이유다.

여기서 한 가지 이견은 왜 남자가 오른손이 아닌 왼손으로 여자의 손을 잡았나 하는 점인데, 당시에는 남자와 여자의 신분 차이가 많이 날 경우 이런 식의 '왼손 결혼식'을 했다고도 한다.


이 신랑 신부 발아래에서 우리를 뚫어져라 보고 있는 강아지는 고대로부터 '신의'를 의미한다. 강아지가 여자 쪽을 향하고 있다고 해서, 남편에 대한 아내의 정절이라고만 해석하는 이들도 있는데, 이는 맞지 않다. 결혼의 신의, 정절은 두 사람 모두에게 해당하는 덕목이다. 그래서 강아지가 비록, 머리는 여자 쪽을 향하고 있지만, 그림의 중앙, 즉 두 남녀의 중앙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이 덕목이 더 힘을 받는 것은 이들이 서 있는 공간이 신성한 곳이기 때문이다. 이 신성함은 무심코 벗어 놓은 듯 놓여있는 신발을 통해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는 성경구절과 관련이 있다.

구약 성경 출애굽기 편에서 모세가 시내 산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장면이 나온다. 하나님은 '이 곳은 성스러운 장소이니 신발을 벗으라' 명하신다. 신발은 매우 세속적인 물건으로 이 신발을 벗는다는 행위는 그 세속적인 것을 버리고 경건한 마음을 갖는다라는 것을 의미한다.

예술가의 상상력으로 그려진 그림의 왼쪽 가장 아랫부분에, '무질서'하게 벗어 놓은 신발을 통해 관람자들은 이 신성한 장소로 안내되는 것이다.


서양미술에서 그림을 읽을 땐, 글을 읽는 것처럼 왼쪽에서부터 읽어 들어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 의미에서 얀 판 아이크는 그 형식을 잘 따르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이 작품이 우리 결혼식의 청첩장으로 '간택'된 또 다른 이유는, 둘 사이의 평등한 관계를 보여주는 두 사람의 크기와 위치 때문이다. 어느 한쪽으로도 치우치지 않는 두 사람 각각의 공간이 그것이다. 가정 밖의 역할을 강조하듯 활짝 열려있는 창문 쪽에 서 있는 남자와, 가정 안의 영역을 암시하는 침실 앞에 서 있는 여자.

당연히 이런 역할분담이 현대의 부부상엔 그렇게 어울리지 않을 수도 있다. 남녀의 일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며, 당연 결혼생활에 있어서 부부의 일은 공동의 일이다. 그럼에도 자연이 선물한 남녀 고유의 역할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런 의미로 우리 부부에겐 큰 의미가 있는 그림이다.

서로의 역할에 충실하며 신성한 결혼생활을 신의로 이끌어가길 기원하는 이 그림이 마음에 꼭 들었다. 결혼 당시 다짐했던 우리 부부의 맹세를 다시 한번 상기해 본다.


이 그림을 통해 14년 전의 나를 만나게 되어 행복한 저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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