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인 남편
내 남편은 독일 사람이다. 대학에서 만나 사랑하고 결혼했다. 마누라가 이쁘면 처가의 말뚝을 보고도 절한다고 했던가? 이 남자 이 말을 그대로 실천하고 있다. 누구나 한국과 인연을 맺으면 쉽게 빠져 버리는 한식에 대한 무한한 사랑. 이 남자 또한 다르지 않다. 그의 한식에 대한 사랑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
독일의 겨울 날씨는 참으로 우울하고 침침하다. 특히 이 전 유학시절, 이런 날씨는 괜히 집 생각이 더 나게 만들었다. 한 번 집 생각나면, 공부도 잘 안되고 '내가 여기서 지금 뭐 하나?'... 그랬다. 이런 우울한 마음을 달래기 위한 내 나름대로의 처방이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된. 장. 국.이었다. 마늘 넣고 진하게 끓인 된장국 한 그릇이면 말끔히 치료되었다. 그 당시 나에게 된장국은, 어릴 때 아픈 배를 쓰다듬어 주시던 엄마의 따뜻한 손이었고 향수를 달래주는 고향의 그리운 냄새였다. 끓을 때의 그 콤콤한 냄새가 코 속으로 서서히 춤추며 들어올 때, 우울한 마음도 스트레스도 말끔히 사라졌다. 그리고 조금 후 이 향기가 온 집안을 가득 채울 때, 마음속은 행복감으로 충만했다.
지금은 사랑하는 남편과 예쁜 두 아이, 이렇게 넷이서 함께 있으니 이 전처럼 그런 외로움에 젖진 않지만 그래도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끓여 먹는다. 추운 겨울에는 물론 수시로. 그러다 보니 남편도 자연스럽게 된장국의 깊은 맛을 알게 되었고 점점 더 즐기게 되었다. 남편의 식성은 한국 사람인 내가 봐도 놀랄 정도로 한국적이다. 이 전 나를 알기 전부터 인터넷을 뒤져 직접 김치를 담아 먹을 정도였으니까! 고기 먹을 때 함께 싸 먹는 쌈장도 정말 좋아한다. 이 쌈장에 밥을 비벼 먹기도 하고 어떨 땐 빵 위에 발라서도 먹으니 그 사랑을 가히 짐작하고도 남는다. 남편의 식성이 이렇듯 한국적이니 우리 집의 저녁은 거의 한식이다. 식재료를 원하는 대로 구할 수 없으니 이 곳에서 구할 수 있는 것으로 이 것 저 것 새로운 시도를 많이 한다. 그러다 보니 국적 불명의 음식들이 대부분이다. 퓨. 전. 음. 식. 이라고나 할까? 아무튼 음식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는 거의 없다고 봐야겠지? 한국음식을 좋아하는 많은 외국인들이 다른 것은 다 먹어도 아직 된장은 썩 좋아하진 않는다고 한다. 된장국이 먹고 싶으면 신랑 눈치 때문에 조심해서 먹는다는 한국인 아내도 있다. 이전 유학시절 알게 된 한독 가정의 어느 분은 남편이 아예 한국음식을 싫어해서 몰래 숨어서도 먹었다고 했다. 그 점에서 본다면, 난 복 받은 거다. 오히려 남편의 주문으로 된장국을 끓일 때가 더 많다.
그날도 그랬다. 원래는 된장국을 끓일 생각이 없었다. 그 날의 메뉴는 이탈리아식이었다. 남편 퇴근시간에 맞춰 간단하게 모든 준비를 해 뒀다. 이탈리아식은 한식에 비교해 본다면 준비시간이 그렇게 많이 필요치 않다. 물론 '내 마음대로 이탈리아식'이긴 하지만. 이탈리아 빵, 촤바따에 올리브기름 뿌려 오븐에 넣고, 기름에 살짝 볶은 채소에 방울토마토, 각종 허브 넣고 조금 더 볶다가 생선과 함께 알루미늄 코일에 둘둘 말아 오븐에 넣고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음식이 다 되면 식탁에 예쁘게 세팅하고 거기다 포도주 한 잔 곁들이면 그만이다. 많은 사람들이 생선에는 백포도주를 마시지만, 남편과 나는 적포도주를 더 좋아해서 우린 생선 음식에도 이 걸 마신다. 이렇게 저녁을 준비해 두었다. 드디어 남편이 퇴근해 왔다. 그런데 하는 말,
'며칠 동안 된장국을 먹지 않았어. 오늘은 된장국이 많이 그리워.
끓여 줄 수 있어?' 하는 거다.
'엥? 음식 준비 다 되었는데... 이게 무슨 소리?'
이 남자 원래 음식 투정 않고 주는 대로 맛있게 잘 먹기 때문에 여간해서는 특별히 주문하는 것이 없다. 그러던 남편이 된장국 먹기를 희망한 거다. 그러니 안 해 줄 수가 없지. 서둘러 감자 깎아서 물에 넣어 불 위에 올려놓고, 된장 풀어 마늘 넣고, 준비된 다른 재료가 없으니 양파 반 개 썰어 함께 끓여 된장국을 뚝딱 만들어 냈다. 된장냄새가 온 부엌을 가득 채웠다. 그러자 남편은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그래~ 이 냄새야~~!' 하며 마냥 좋아한다.
'나~ 참~누가 한국사람인지......'
식탁에 음식을 다 차려 놓고 식사를 하려고 보니, 아주 재밌는 식단이 되어버렸다. 이탈리아식 생선 음식에 독일산 붉은 포도주, 거기다 한국의 된. 장. 국! 남편 먼저 된장국을 한 수저 뜨고 나서 '으~~~ 음~~~ 이 맛이야!!!' 한다. 이렇게 우린 그날 행복한 저녁식사를 했다.